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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와 뜻, 소리글자와 뜻글자

말소리와 뜻, 소리글자와 뜻글자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9.01.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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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사람이 만든 4대 발명품은 수레바퀴, 화약, 종이, 나침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과 번성을 도운 가장 결정적인 출발점은 말과 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말은 서로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고 더 효율적으로 말을 이용하려 글자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의 모든 글은 말을 적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즉 글은 말소리를 적기 위하여 만든 것이지 말의 뜻을 적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개념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사람들은 표의(表意)문자와 표음(表音)문자 혹은 이를 한국말로 풀어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나누었다.

뜻글자로 분류하는 한자를 살펴보면 여섯 가지의 방법으로 만들었다. 분류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모양을 본뜬 상형자가 대략 백 자 정도 되고 추상적인 숫자나 방향 등을 나타내는 지사자는 이십 자 정도이다. 상형자와 지사자를 모아 새로운 뜻을 만들어낸 회의자도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개략적인 뜻과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이 결합한 형성문자이다. 나머지 전주나 가차문자는 한자를 만든 방법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이렇게 보면 한자의 대부분은 형성문자로 사람들이 문자를 보았을 때 뜻을 짐작하기란 대단히 어렵고 단지 글자를 읽는 방법만 뚜렷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주방(廚房)이라는 낱말을 이루고 있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과 戶는 ‘지붕’과 ‘문’을 나타내는 부분이고 �(주)와 方(방)은 소리를 적은 부분이다. 한자에서 형성자는 최대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도록 글자를 조합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는 �와 寸의 결합으로 북을 손으로 치고 있는 모습이고 方은 네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이니 이를 보고 의미을 짐작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상에 지붕과 문을 보고 불을 써서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집의 한 부분이란 뜻을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즉 주방이란 말은 논리적 추론의 방법에 의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소리와 뜻의 관계를 외워서 사용하는 말일 뿐이다. 이런 한자를 두고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거의 없는 주장이라 하겠다. 반면 훈민정음은 해당소리를 발음할 때 혀의 움직임과 입술, 이, 목구멍의 모습을 본떠 다섯 가지의 발음 방법 중에서 순수한 소리를 가진 ᄀ, ᄂ, ᄆ, ᄉ, ᄋ을 찾아내고 여기에 획을 더하는 방법으로 거세지는 기운을 나타내어 ᄏ; ᄃ, ᄐ, ᄅ; ᄇ, ᄑ; ᄌ, ᄎ; ᄒ으로 확장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는 어려우나 하늘, 사람, 땅을 본떠서 가운뎃소리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니 훈민정음은 분명 상형과 지사글자이고 회의의 방법으로 소리값을 갖는다.

이렇게 보면 글자를 만든 방법에서는 한자와 훈민정음의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한자는 그림을 그려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일찌감치 포기하고 소리를 적기 위한 글자로 방향을 바꾸었고 훈민정음은 상형의 방법을 취하여 글자를 만들었으나 처음부터 소리를 적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자는 뜻을 적기 위한 표의문자이고 훈민정음은 소리를 적기 위한 표음문자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번져나갔고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이를 따져보지도 않고 일반적인 사실처럼 여기고 있다. 몇 되지도 않는 지사나 회의문자의 수를 두고 한자가 뜻글자라 부르는 것은 정작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들은 대로 되뇌이는 소리이다.

더 심각한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는데 ‘한자는 뜻글자라서 의미가 깊고 훈민정음은 소리글자라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자나 훈민정음이나 모두 소리를 적어놓은 글자일 뿐이고 실제적인 의미는 말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별다른 뜻을 가지지 못한 주방이라는 글자를 한국말로는 ‘부엌’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부’는 ‘불’을 의미한다. 불을 쓰는 곳이라는 말로 짐작되고 집에서 불을 쓰는 곳은 부엌이다. 한자나 훈민정음이나 글자가 담고 있는 뜻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그 글자가 상징하는 중국말이나 한국말이 뜻을 담고 있을 뿐이다.

지구상에 사람들이 발명한 말과 글은 그야말로 문화적 다양성의 표상이다. 사람들은 말에 세상을 담고 자신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말속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쌓여온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다만 글자는 효율성 측면에서 평가가 가능할 뿐이다. 예를 들어 한자는 아주 오래전에는 일정한 생활경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쉬운 그림이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새로운 개념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회에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호미를 들고 할 일과 굴삭기를 이용할 일이 따로 있듯 한자는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부적절한 도구일 뿐이다. 중국인들도 스스로 많은 글자를 간단히 고쳐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형성문자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는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대쪽에서도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 펼쳐지기는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었으니 한국말도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허나 세상에 모든 말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원활한 의사전달을 위해 만든 말이 비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사람들은 말을 배워 사용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했을 것이고 현재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모습과 같이 어지간한 사람들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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