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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12.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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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여신, 가믄장아기.

장주식 작가

‘골짜기는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노자는 말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골짜기로 모든 것이 모여들고 골짜기에서 모든 것이 나가니까요.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도 어느 골짜기에 있지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골짜기에 있고요. 그러니 만물이 생산되고 자라는 곳이 골짜기입니다. 산봉우리도 골짜기가 생산했다고 해야겠어요.
그런데 만물의 어머니인 골짜기가 불쾌해지는 경우가 있답니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건 요즘 한참 유행하는 3D애니메이션과 관련한 이론인데요. 사람과 닮은 로봇을 보고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심리를 말합니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보고 왜 불쾌감을 느낄까요? 골짜기에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신이 있어 ‘곡신(谷神)’이라고 부릅니다. 이 곡신의 자리를 인간이 차지했기에 불쾌한 걸까요? 그것보다는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불쾌감일 듯합니다. 곡신의 다른 이름은 ‘현빈(玄牝)’인데 그윽한 암컷이라는 뜻입니다. 암컷이 낳는 자연스러운 생산이 아니라 뭔가 작위적인 생산, 이기심이나 욕망을 앞세운 생산에 대한 불쾌감이 아닐까 합니다. 골짜기를 그윽한 암컷이라 하여 여성과 동일시하는 바탕은 수용성이라고 봅니다. 비판에 앞서 일단 수용하는 미덕이 여성성입니다. 여성성은 남성에게도 있습니다. 물론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있지요. 판단이 빠르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건 남성성이 가진 미덕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균형을 이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민간신화인 <가믄장아기>의 한 대목을 볼게요.

[마지막으로 막내 가믄장아기를 부른다.
“귀여운 막내야.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잘 사느냐?”
“하늘님도 덕이고 지하님도 덕이고 아버님도 덕이고 어머님도 덕입니다만 내 배꼽 아래 선그믓 덕으로 먹고 입고 잘 삽니다.” “뭐?”
어머니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혀를 쩟쩟 차다가 아버지 강이영성이 소리쳤다.
“이런 못된. 불효막심한 애를 봤나. 넌 이 집에서 나가거라.”]

가믄장아기는 자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신입니다. 부모가 가진 위력에 전혀 눌리지 않고 ‘나는 내 배꼽 아래 선 그믓 덕’에 산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그믓’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배꼽 아래에 있는‘운명을 관장하는 선’이라고도 하고‘황금’으로 보기도 합니다. 무엇으로 보든 그믓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뜻한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가믄장아기는 부모에게 쫓겨나지만 조금도 기가 죽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낯선 집에 들어가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밝히고 작은 마퉁이를 남편으로 선택하여 부부가 됩니다. 마지막에는 자기를 내쫓고 장님이 되어 거지로 떠도는 부모를 집에 모셔들어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줍니다.
가믄장아기는 마치 노자가 말하는 곡신처럼 면면히 이어져 마르지 않는 생산성을 닮았습니다. 가믄장아기가 하는 행동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부모덕으로 산다고 의존성을 보이는 두 언니를 하나는 청지네로 만들고 하나는 용달버섯으로 만들어버리는 단호함. 관습에만 얽매인 두 형과 달리 타자를 잘 받아들이는 포용성을 지닌 작은 마퉁이를 남편으로 맞이하는 안목. 자기를 내 버린 부모도 끌어안는 포용성. 이 모든 것들은 그윽한 암컷이자 하늘 땅의 뿌리라고 부르는 곡신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믄장아기는 우리 민간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신들 가운데서도 정말 빛나는 별입니다. 한마디로 포용의 여성성과 과감한 남성성을 한 몸에 조화롭게 갖고 있는 여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삶은 신화라고 합니다. 내 안에 면면히 살아 숨 쉬는 여신, 가믄장아기를 잊고 있었다면 이제 되살려 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삶의 신화를 써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덕경 6장 : 谷神不死(곡신불사)하니 是謂玄牝(시위현빈)이라. 玄牝之門(현빈지문)은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이라. 綿綿若存(면면약존)하여 用之不勤(용지불근)이라.> 골짜기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그윽한 암컷이라 한다. 그윽한 암컷에겐 문이 있는데 이를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어지고 이어져 늘 있으니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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