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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로 배우는 인문학

한국말로 배우는 인문학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12.17 10:50
  • 수정 2018.12.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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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큰 강이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사시대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강가에 처음 자리를 잡은 첫 번째 배경으로는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강이나 바닷가와 같이 평평한 지형을 따라 이동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산을 넘어 빠르게 가로질러간다는 것은 수풀이 우거져 가능한 일도 아니었고 길을 잃을 위험이 있었으며 또 커다란 산짐승이 있어 이를 피하기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는 강에서 먹을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강에서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선사시대의 강에는 물고기가 꽤 많았겠지만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는 일도 옛날 사람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여 아이들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조개나 다슬기를 최우선적으로 채취하여 먹기 시작하였다. 강의 패류 중에서 오늘날까지도 한국사람들은 재첩국과 다슬기국을 먹고 있다. 태고적부터 먹어온 다슬기는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다슬기와 함께 올갱이, 배틀이 등의 이름이 전해져 온다.

강바닥이 돌과 자갈로 이루어진 상류의 강원과 충북에서는 올갱이라고 부르고 모래나 흙으로 이루어진 하류에서는 배틀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같은 것을 보고도 달리 부르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쌓인 사람들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슬기는 ‘다슬다’에서 온 말로 보인다. ‘다스리’가 되지 않고 ‘다슬기’가 된 이유는 ‘슬’이 아니라 ‘슳’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슳다’는 오늘날 ‘쓸다’의 뜻으로 톱으로 나무를 쓰는 것과 같이 문질러 닳아 없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슬기는 강바닥을 쓸고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다. 말소리가 비슷한 ‘슬다’는 알을 많이 낳아 놓는 것을 뜻하는 말이니 ‘다스리’였다면 번식을 아주 잘하는 생물이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은 이름에는 ‘올갱이’가 있다.
다슬기를 강원과 충북지역에서는 올갱이라고도 불렀는데 이 말은 오롯이, 올곧다, 올바르다, 오로지와 같이 모두라는 뜻을 가진 ‘올’과 고갱이, 알갱이, 질갱이, 빨갱이와 같이 핵심적인 부분을 말하는 ‘갱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말이 분명하다. 강바닥에 올갱이는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아주 풍부한 생물자원임이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강원도와 충북과 인접한 경기지역에서는 올갱이를 배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말이다. 배틀이는 ‘배틀다’에서 온 말이다. 의미는 같고 소리가 조금 다른 말로는 ‘비틀다’가 있는데 이는 옛날에는 ‘뷔틀다’로 표기하였다. ‘비비다’와 ‘틀다’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므로 ‘배틀다’와 ‘비틀다’는 비비면서 방향을 바꾼다는 뜻으로 배틀이는 강바닥을 비비고 다니면서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는 놈이다. 과연 고운 흙이 퇴적된 얕은 강바닥에서 배틀이가 지나간 자국을 보면 정말 딱 맞는 이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남한강가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길거리에서 올갱이를 삶아서 신문지로 만든 고깔에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강에 들어가 올갱이를 잡아서 삶아놓으면 바늘로 끊어지지 않도록 꺼내는 일도 품이 많이 들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그러한 수고에 비하면 먹는 양은 충분치는 않았다. 소라나 골뱅이 같이 몸이 곱았기 때문에 새뱅이나 골뱅이처럼 ‘올뱅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어디든 지역문화라고 하면 먹거리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남한강에서 사는 강원도와 충북사람들은 지금도 올갱이국을 먹는다. 충주댐 하류지역에서도 올갱이를 잡기는 하지만 강물을 보면 쉽게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여주지역은 이포, 여주, 강천보로 인하여 물이 정체되고 깊어지면서 배틀이를 채취할 수 없게 되었고 지역문화로서 배틀이는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올갱이국을 먹으려면 남한강의 상류를 따라 올라가 영월쯤에서 먹으면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강을 망치면서 생태계의 변화가 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강에 처음 자리를 잡고 살던 때부터 전해온 사라진 음식문화의 가치는 무엇으로 보상을 해야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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