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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경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주협의회장“평화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위에 알리고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

1970년대 가톨릭농민회부터 살얼음판 걷듯 여주 농민운동 시작
29일, 남북통일 주제로 마당극 ‘선달 배비장’ 공연 진행

[편집자 주] 북한 핵문제로 경색됐던 세계정세가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북 그리고 북미간의 대화가 급진전되면서 비핵화 논의가 진전되고 남북 경제협력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의 재개가 논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호는 민경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주협의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여주신문TV>, 팟캐스트<여주라디오>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박관우: 안녕하세요?

민경학: 예. 안녕하세요.

박관우: 회장님은 농민운동을 오랫동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 가톨릭농민회부터 여주의 농민운동이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이야기 부탁드려도 될까요?

민경학: 가톨릭 농민회는 그 당시 농민들이 농업에 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새마을 운동이 한참 벌어져 농민들이 새마을 운동만 하면 잘사는 줄 아는 시기였습니다. 또 정부가 하는 일에 반기만 들면 탄압이 아주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무래도 세상이 농민들이 천시 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 가톨릭농민회를 알고 가입하게 되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관우: 여주농민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그 당시 군부독재 시절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당시 농민회 활동 어려움이 없었나요?

민경학: 가톨릭농민회 시절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긴급조치9호가 발령 났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감옥 구경을 못했는데 그 뒤로 가톨릭농민회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나서 위상변화를 하면서 가톨릭 농민회가 우리나라의 농민운동을 담보할 수 없다며 가톨릭 농민회는 새 생명 운동 쪽으로 가고 남아 있는 회원들이 남아서 농민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박관우: 지금 말씀하시는 새 생명운동이 한 살림 비슷한 건가요?

민경학: 친환경농업 같은 거지요.

박관우: 초대 농민회 회장 시절에 군사정권시절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민경학: 그때 군사독재시절이었습니다. 탄압이 심했지만, 그때는 그래도 덜할 때고 과거는 더 심했는데 농민들이 그때 만해도 좀 깨이고 농업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끼니까. 농업운동에 관심이 많아지고 그때는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잘 조직이 되어있었고 활동이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학생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각 지역의 농민운동을 도와주었고 여주에서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여주로 와서 농민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의 뿌리를 두지 않은 학생들이 내려와서 실패를 한 적이 있는데 여주에서는 여주출신들이 남아서 운동을 한 것이 아마도 여주농민운동이 잘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관우: 전국농민회에서 경기도를 대표하는 경기도연맹 초대 의장도 맡으셨습니다. 그 당시 여주농민회가 세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민경학: 지금도 경기도에서는 여주가 가장 세고. 인정을 받습니다. 92년도에 여주군 농민회를 창립하고 그해 7월에 경기도 농민회를 창립하게 됩니다. 농민회가 창립되고 나서 우루과이라운드라는 회담이 있었습니다. 그 반대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박관우: 농산물 같은 경우는 보호무역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와 지금의 쌀값 차이가 많은가요?
민경학: 오히려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더 싸졌습니다. 그때는 농사를 지어도 기계보다 사람이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힘은 들어도 소득은 높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기계가 하는 일이 많아져 기계생산비가 만만치 않아서 농사를 많이 지어야 합니다.

박관우: 농업기계 값이 어마어마하던데요?

민경학: 농업기계 중 콤바인 같은 경우는 몇 억씩 하는데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도 않고 그렇다 보니 쉬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관우: 민주평통 지역협의회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민주적으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모임인가요?

민경학: 헌법이 정한대로 헌법기관입니다. 헌법기관이고 통일정책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의한 기관입니다. 말은 평화통일이지만 과거에 보면 이명박 정권 들어서 이런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그때만 해도 반공이었습니다. 지난 일 년 만해도 남북관계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요즘에 4.17 선언 이후에 갑자기 많이 변했습니다. 위원들도 미처 그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박관우: 민주평통이 여주에서 담당해야 할 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요?

민경학: 지역주민들과 소통을 통해 통일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인데 지금까지는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을 하는 것이 말은 평화교육이라고 하지만, 땅굴교육, 천안함교육 같은 것들을 해왔습니다. 물론 안보도 중요하지만 국방이 허술하면 한쪽으로 기울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상태는 아닙니다. 안보문제는 국방부에 맡기고 평화통일을 하자는 단체는 평화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위에 알리고 평화통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나가고 연구해나가며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그런 활동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관우: 대내외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올 것에 많은 걱정이 되는 시점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남북경협과 통일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여주시청에 남북정상의 플래카드가 걸린 것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민경학: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분위기를 미처 지역사람들이 현실을 못 따라가 가지 않나 생각합니다. 과거 북한과 대화를 하다가도 정권이 바뀌니까 선언들이 무효화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정권이 바뀌니 또 속는 것 아니냐, 하는 것처럼 남북 간의 관계가 많이 진전이 됐는데도 믿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가 많이 변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실은 그 평화협상을 하는 것은 북한에서 먼저 나왔고, 북한의 발언권이 약하니 미국이나 큰 나라에서 대답도 하지 않으니 핵무기를 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서 북한이 요구하는 것들이 소위 말 빨이 먹힌다고 하니 중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간역할을 하면서 북미대화까지 연결을 했고, 북미관계도 속도가 느릴 뿐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평화협상만되면 남북관계가 상당히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 통일이야 금방 되지 않겠지만 남북이 경제협력만 된다면 지금 과거에 중국에 가서 실패했던 중소기업들이 북한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고 도로나 철도가 연결이 되면 우리나라가 유럽 쪽으로 진출하는데도 상당히 좋은 계기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지금 남한은 반도이면서도 섬나라 같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를 갈 때는 꼭 바다를 걸쳐서 가기 때문에 반도에서는 말도 안 됩니다. 통일이 되거나, 통일이 되지않더라도 남북관계가 좋아져 교류가 활성화 된다면 아마 남북경제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향상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관우: 29일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안내 부탁드립니다.

민경학: 평통이 하는 일이 주민들과 소통을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학생들을 상대로 교육하고 그런 일을 많이 했습니다.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일반인들과도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가볍게 마당극을 하나 준비해서 소통의 문을 시작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주제는 ‘선달 배비장’입니다. 통일을 서서히 접근하는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장소는 세종국악당이고 29일 금요일 늦은 5시 남북통일문제를 주제로 하는 공연입니다.

박관우: 마지막으로 시민여러분들께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민경학: 세상이 변화하는 만큼 사람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을 도와줬다고 하지만 그때 빨리 파악한 사람들은 사실 농민들이 속은 거였습니다. 그 도시와 농촌이 편차가 벌어질 때 농촌을 달래기 위해서 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라고 봅니다. 물론 그 정부를 믿고 새마을 운동을 한 분들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분들도 속았다는 생각을 하구요. 어쨌든 변하는 세상을 빨리 파악을 하고 대처를 하는 것이 우리나 모든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여주가 조금 어두운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관우 기자  pkw39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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