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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3. 배부르고 등 따스하여 행복한 보통 사람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3. 배부르고 등 따스하여 행복한 보통 사람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11.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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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포틀래치’라는 게 있습니다. 아메리카 북서부 태평양 연안 인디언 부족이나 시베리아 부족들 사이에 행해지던 관습입니다. 포틀래치는 ‘재물파괴잔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기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그동안 모아 온 재산을 한꺼번에 소비해 버리는 일이거든요.
잔치를 열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배불리 먹입니다. 자기가 힘들여 쌓은 부를 한 순간에 다 베풀어 버리는 거죠. 사람들을 실컷 먹이고도 남은 재물이 있으면 불 지르거나 부셔서 없애 버립니다. 집단 우두머리 같은 경우엔 비싼 모포를 수백 장 쌓아놓고 태워버리고 신성한 화폐인 동판을 조각내서 바다에 버리기도 합니다.
한 순간에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요즘 우리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풍습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할까요? 당연히 까닭이 있습니다. 재물을 파괴한 대가로 얻는 사회적 지위와 명망 때문입니다. 지위나 명망 추구도 일종의 탐욕이라 할 수 있지만 순기능도 분명 있습니다.
노자가 말하는 ‘얻기 어려운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 말라’는 말과 맥이 통합니다. 사람들이 다투어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면 세상은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현대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빈부격차가 심하고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행복지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라진 포틀래치 풍습이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된 곳이 있습니다. ‘이치코타니’라는 건데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는 ‘재물파괴경연’입니다. 둘 또는 여러 패거리가 춤을 추다가 번갈아가며 자기 재물을 파괴하는 놀이입니다. 이 배틀에서는 상대보다 더 비싼 재물을 파괴해야 승리자가 된답니다. “흥. 이 따위 물건은 아무것도 아냐. 난 이런 건 없어도 아무렇지 않아. 난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거죠. 이런 행위는 포틀래치와 많이 닮았습니다. 귀한 재물을 파괴함으로써 얻는 건 주변의 선망과 명망이니까요. 조금 왜곡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재물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의는 인정할만합니다.
사람들이 끝없이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할 때 파괴되는 건 자연입니다. 재물은 자연에서 나오니까요. 그러므로 부의 축적은 ‘인위적인 행위’가 자꾸만 일어나야 되는 것이죠. 노자가 주장하는 ‘무위’ 곧 자연스러운 행위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일입니다. 인위적인 행위는 또한 ‘재물과 부를 욕망하는 마음’과 ‘그것을 이루려는 단호한 의지’가 필수입니다. 어떤 재벌은 이렇게 말했다지요. “부를 얻기 위해선 사람을 죽이는 일도 해야 해.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이야.”
이게 재벌들 성공신화라는 건데요. 욕망하는 마음과 단호한 의지가 잘 겹쳐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합니다. ‘욕망하는 마음을 비우고 단호한 의지를 약화시켜라. 대신 배를 채우고 뼈를 단단하게 하라.’

배와 뼈는 살아있는 우리 몸을 은유합니다. 마음과 의지는 추상적인 그 무엇이며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상상 속 무엇입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뼈가 튼튼할 정도면 충분히 평화롭습니다.
얼마 전에 중국 배우 주윤발이 전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죠. 한국 방송인 김제동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웅이 본색을 드러냈네요. 주윤발씨가 전재산 81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답니다. 이 소식은 많은 연예인들 어깨를 짓누르는 소식이 아닐 수 없군요.”
‘영웅본색’은 주윤발이 주연으로 출연해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입니다. 주윤발이 한 행동은 포틀래치와 거의 흡사합니다. 주윤발이 자기 재물을 다 파괴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연예인들 어깨를 짓누른다고 표현한 김제동의 말도 포틀래치가 갖고 있는 힘과 똑 같습니다. 포틀래치를 받은 사람은 더 큰 포틀래치로 답례를 해야 하는 의무도 있으니까요. ‘경쟁적인 재물파괴’인 포틀래치는 현대 부자들이 하는 ‘경쟁적인 기부 행위’와 같습니다. 포틀래치가 지닌 순기능을 현대사회에 잘만 적용한다면 인류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재물을 흩어 빈부격차를 없애버리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을 없앨 수 있습니다. 모두가 고르게 가난할 때 오히려 사람은 평화롭습니다. 부를 쌓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보다 고르게 가난한 인류사회가 훨씬 낫다는 것이죠.

주윤발이 기부를 약속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 울림을 줍니다.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죠. 내 꿈은 행복해 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윤발이 한 말은 노자3장 이야기와 맥이 잘 통합니다.‘잘난 사람을 숭상하지 말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탐욕을 비우고 스스로 무지하다는 겸손함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라.’ 이 노자 말이 곧 주윤발의 ‘행복한 보통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참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죠.
잘난 사람을 떠받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보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도둑질 하지 않는다. 욕심낼만한 걸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
그리하여 성인은 이렇게 다스린다. 마음은 비우고 배는 채우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단단하게 한다. 늘 사람들이 무지무욕으로 살게 하며 지혜롭다는 자가 함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한다. 마침내 ‘함이 없는 함’으로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도덕경 3장 : 不尙賢(불상현)이면 使民不爭(사민부쟁)하고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면 使民不爲盜(사민불위도)하고 不見可欲(불견가욕)이면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이라. 是以聖人之治(시이성인지치)는 虛其心(허기심)하고 實其腹(실기복)하며 弱其志(약기지)하고 强其骨(강기골)하며 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하고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하여 爲無爲則無不治(위무위칙무불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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