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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로하는 인문학- 자손만대로 이어지는 말

한국말로하는 인문학- 자손만대로 이어지는 말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8.06.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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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누’는 ‘아래’의 뜻인데 오늘날 남아 있는 말이 없다. ‘누누’도 없고 남자가 자신보다 손아래인 여자를 부르는 이름인 ‘누이’가 있지만 사실 옛날에는 ‘누의’로 사용하던 말이다. 다만 ‘누’와 ‘이’로 보이는 ‘뉘’가 있는데 ‘자손에게 받은 덕’이라는 뜻이다. 이제 부족하지만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뉘’가 들어간 말들을 모두 찾아보면 ‘뉘엿거리다’, ‘뉘엿하다’, ‘뉘엿뉘엿’과 같이 해가 지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있는가 하면 ‘뉘우치다’도 있다. 이 말은 15세기 문헌에는 ‘뉘읓다’로 남아 있는데 ‘뉘우츠다’로 변형이 되었다. ‘츠다’는 평안북도에서는 ‘파서 헤집어 놓다’의 뜻이고 평안도나 함경남도에서는 ‘치르다’의 뜻인 것으로 보아 ‘치다’의 변형이다. 즉 이 말은 ‘자손에게까지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뜻이다.

‘누’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누다’는 똥이나 오줌을 몸 아래로 내보내는 것을 뜻한다. ‘누이다’의 축약형은 ‘뉘다’로 누게 하는 것이나 몸을 눕히는 것을 말한다. 활용된 말로는 ‘눌다’와 ‘누르다’가 있는데 ‘눌다’는 밥이 솥 바닥에 눌러 붙는 것(누룽지)을 말할 때 사용한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장작이나 농작물을 쌓는 것을 말한다. ‘누르다’는 물체에 힘이나 무게를 아래 방향으로 주는 것이다.

‘누’의 뜻을 가진 활용형은 ‘눅’, ‘눕’, ‘눌’이 있다. ‘눅다’와 ‘눅눅하다’는 어떤 이유에서 숨이 죽어 무르거나 부드러워지는 것을 말한다. ‘누비다’는 ‘눕이다’에서 온 말로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실로 박아 고정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이리저리 거리낌 없이 다니는 것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누리다’는 ‘눌이다’에서 온 말로 자손에게 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영어에서도 succeed는 아래로(suc-) 내려가는(ced) 것으로 ‘성공적인 것’이고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눌이’인 ‘누리’는 단순히 공간상의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으로 이어지는 시간상의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만 누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로써 더듬어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의 뜻이 또렷하면 우리의 자손은 조상이 담아 놓은 지혜를 활용하여 만대를 ‘누릴’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금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죗값이 대대로 굴레가 되어 ‘뉘우치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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