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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로 하는 인문학-혀로는 무엇을 하나?

한국말로 하는 인문학-혀로는 무엇을 하나?

  • 기자명 최새힘  작가
  • 입력 2018.05.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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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우리는 이미 ‘혀’를 맛을 보는 기관으로 알고 있어 ‘혀’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혀다’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이 말은 오늘날 ‘켜다’와 ‘세다’로 분화되었다. ‘켜다’는 (1) ‘기지개를 켜다’와 같이 팔다리를 뻗는 ‘헤다’의 뜻과 (2) ‘물, 불, 톱, 악기, 누에고치를 켜다’에서와 같이 ‘이끌다’, ‘당기다’의 뜻이 있다. 뒤의 것은 ‘헤다’의 결과로 한 발 더 확장된 의미이다. 옛날에는 ‘혀다’라고도 하였다. 나머지는 (3) ‘세다’와 ‘헤아리다’로 분화되었는데 15세기에는 주로 ‘혜아리다’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혀다’의 뜻이 잘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관련된 말의 뜻을 또렷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우선 ‘혀’는 ‘혀다’의 두 번째 뜻을 따라 맛을 이끌어 음식을 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썰물’은 ‘혈믈’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끌거나 당기는 물’로 풀이할 수 있다.

‘혜다’는 ‘세다’와 ‘생각하다’로 이해할 수 있는데 ‘혀다’에서 가장 확장된 뜻으로 뻗어나간 세 번째 뜻과 같으므로 ‘혜’는 ‘혀’와 ‘-이’의 결합인 ‘혀이다’임이 분명하다. ‘헤다’가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므로 몸을 움직여서 수를 헤아렸거나 힘들지만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세다’와 ‘헤아리다’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끝내고 보니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첫째, ‘헤다-혀다-혀다-혜다’를 살펴볼 때 의미가 넓게 뻗어가면서 발음이나 모양도 복잡하게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천과정이 다른 뜻을 가진 말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한국말이 발달해 온 일반적인 경로로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거꾸로 이것은 유사한 소리와 의미를 가진 조각들을 모을 수 있는 바탕이 되고 논리적 전후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원리가 될 수도 있겠다.

둘째, 한자를 만들 때 사용했던 기본글자는 몇 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림으로 그려서 나타낼 수 있는 사물 정도에 불과하나 한국말에서는 ‘헤’와 같이 가장 밑바탕이 되는 말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를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조적으로 그림문자권에서는 문자가 빠르게 보급되고 의미는 쉽게 전달되었겠지만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개념은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모든 말은 소리에 뜻을 담았다. 다만 글자가 발명된 이후로 글자가 소리를 나타내는지 혹은 뜻을 나타내는지에 따라 그 문명이 겪은 경험은 완전히 다른 길이었을 것이다. 오늘에 와서 그 길을 거꾸로 되짚어 가는 일도 판이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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