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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⑧

<여주와 강변칠우>여강은 알고 있다. 강변칠우 사건 그 내막⑧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7.07.3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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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밤새 역적으로 바뀌다.

 

성흥환(전 한국문인협회 여주지부장)

그리하여 의금부도사 지휘로 많은 포졸들이 박응서 집을 찾아내어 수색하고 은덩이를 회수하는 동시에 혼자 있던 행수 박응서를 맨 먼저 포도청에 가두었다. 이날 응서는 취조 심문을 받았는데 그는 처음에 사람을 죽일 생각이 없었으나 은덩이를 보고 욕심이 생겨 양반들이 자기네를 천대하므로 이놈의 세상 한번 뒤엎어 볼 마음에서 자금을 모으려고 한 짓이라 했다.

여기서 정항은 처음에 딱딱거리며 다그쳐 묻다가 무슨 실마리를 얻었는지 부드럽고 순한 말로 문초를 하면서 ‘내가 만약 너 같으면 이러이러하게 진술을 하여 죽음만은 면할 것 같은데 참 아쉽다 죽는 게 바보지.’하고, 혼자 말로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인지 박응서는 서자 일당을 자세히 열거하면서 모의한 사실과 탈취한 죄상을 모두 털어 놨다.

[서양갑 나이 32세 여주에 사는데 키가 작으며 얼굴은 둥글고 귀가 큽니다.

심우영 나이 38세 여주에 사는데 키가 좀 크고 수염이 적습니다.

허홍인 나이 40세 여주에 사는데 키가 작고 얼굴이 흰편입니다.

박치인 나이 40세 정도 얼굴이 크며 종묘 담장 밖에 삽니다.

이경준 나이 40세 남짓 얼굴이 야위고 허리가 구부정합니다.

박치의 나이 35세 얼굴이 크고 이마가 넓습니다.]

이렇게 응서의 진술에 따라 포도청에서는 이들의 신상기록을 작성했다.

이튼날 포도대장 한희길은 포졸들을 인솔하여 또 다시 여주로 내려와 이곳 관아의 협조를 얻어 서양갑 일당을 체포하고 서울로 압송해 포도청에 모두 가두었다.

그런데 박응서 무리가 살인강도로 구속된 것이 소문이 나니까 사대부들 개중에는, “이 사람들은 명가의 자제들인 만큼 그런 짓을 할리가 없다.”하며, 구해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한희길도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남이공(南以恭)과 박이서(朴彛敍)가 마침 은상 집안과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그 사건의 실체를 자세히 알아 본 후 한희길과 정항에게 살인 사건을 재판하여 보고하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이이첨(李爾瞻)이 응서의 진술과 서양갑 일당이 잡혀온 소식을 들은 것은 여러 날 후였다. 그는 영창대군이 늘 대비 곁에 있는 것을 매우 못 마땅히 여겨 온갖 간사한 꾀를 내서 대군을 죽이고자 하는 판에 박응서의 죄가 사형에 해당됨을 매우 기뻐하였다. 또한 이이첨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순간 어떤 계교가 머리에 떠올랐다.

‘재작년에 대수롭지 않은 것을 가지고도 옥사를 만들었는데 그 보다야 훨씬 그럴듯한 명분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들이 누구인가? 양반가에 글께나 한다는 아들놈들이 아닌가? 공초 방향을 역모쪽으로 몰아만 간다면 김제남(金悌男)과 영창대군 쯤이야.... .’

이첨은 김제남과 왕래하는 얄미운 사람들이며 사사건건 따지던 가시 같은 자들이 눈에 어른거리어 스쳐간다. 벌써 뻘건 핏빛이 눈에 어리며 피 비린내가 그의 코 밑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이첨은 곧바로 먼저 포도대장 한희길의 집으로 찾아가 허리를 굽혀 절하니, 희길은 이를 피하고 감히 받지 못하면서, “이게 웬 일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희길이다.

“영감님께서 저에게 절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하였다. 이첨은 말하기를,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복상이 많소. 오래지 않아 반드시 큰 공훈을 세울 것이니 지극히 축하할 만하오.” 하였다.

그리고 나서 한희길에게 묻기를, “자네가 큰 도적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그 실상이 어떤가? 하니, 지난밤에 심문한 사연을 그대로 알려 주었다.

그날 저녁으로 이첨은 그의 심복인 김개(金?)와 이창후(李昌後) 그리고 정항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모의를 하였다.

그런 후 이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의숭(李義崇)이라는 자가 은밀히 포도청 옥에 찾아가 응서를 후미진 곳에 있는 음식점으로 불러내어 밥이며 술을 권했다

응서는 그동안 여러 끼니를 거르고 불안하던 중 처음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오랜만에 따듯한 사람의 대접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먹기가 거의 끝나가자 이의숭은 입을 열었다.

“네 목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고 있으렸다?”

“아무렴요, 알구 말굽죠.”

“그래 죽을 각오는 되어 있는 게냐?”

“예 별수 없습죠.”

“도대체 몇 살인데 그렇게...”

“스물 아홉 살 먹었구만요.”

“그래 젊은 목숨이 아깝지도 않느냐? 살 구멍을 찾아 봐야지.”

“사람을 죽여 가망이 없는 줄로 알고 있구먼요.”

“음, 허나 지금 너를 살리고 싶어서 애쓰는 분이 계시니라.”

“예? 그분이 누구시옵니까?”

“음,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있는 게로 구나.”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나리!”

“네 죄는 참형을 당할 것이로되 상감께 글을 올려 역모를 도모하였다고 고발을 한다면 너는 살아날 뿐 아니라 부모에게 효가 되는 것이며 국가에 훈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너를 살리려고 하시는 분의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게 뜻대로만 된다면 얼자의 설음은 말끔히 씻어질 것은 물론 가문에 영광이 되는 게 아니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응서는 양갑이 등 여러 동지들을 생각할 때 도둑질의 사실 그대로 자복한 것을 부끄럽게 느끼고 있던 차 죽게 된 마당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불현듯 복받쳤다. 이때 저번 날 밤 취조 받을 적에 있던 포리 하나가 무슨 쪽지같은 것을 이의숭에게 전하며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살거렸다. 이의숭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그것을 응서한테 주며 말했다.

“이것을 잘 읽고 뜻을 깊이 이해하도록 하거라. 그래서 내일 의금부에서 문초할 때는 김제남과 영창대군을 대충 이름만 끌어넣어 말하고 정신이 어지러워 그러니 자세한 죄상은 글로서 써 올리겠다고 아뢰어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느냐?”

“예, 나리.”

글을 받아 쥔 응서는 옥에 들어 앉아 읽고 또 읽어 아주 외어 버렸는데 내용의 골자는 김제남의 사주를 받아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의금부에서 죄인 박응서를 불러다 문초를 했다.

“너는 어찌 살인 강도짓을 하였느냐?”

“소인은 강도가 아니라 거사를 위하여 자금을 모으려고 한 것입니다.”

“거사라니?”

“소인은 서양갑과 박치의를 두목으로 역모를 해온지 4년이 넘었는데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국구 김제남과 내통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모아 무사 300여명을 모집해서 야밤에 대궐로 들어가서 대비에게 수렴청정을 청하고 영창대군을 옹립할 계획이었습니다. 지금은 어지러워 그러니 자세한 역모의 죄상은 글로 써 올리겠나이다.”하며, 술술 일사천리로 진술을 하였다.

그리하여 반역의 진상을 자세히 써 올리도록 허락을 하였는데 정항, 김개 등의 역모 조작자들은 박응서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하여 글을 썼다. 그리고 서양갑과 심우영 등의 진술 내용도 미리 꾸며 요리조리 짜 맞추었다. 죄인 응서가 마치 처음 글을 짓는 것처럼 하나하나 암송해 내었는데 사람들은 김개가 응서에게 은밀히 전해준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이는 대체로 그 문체가 김개의 작품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개 스스로도 말하기를, ‘서양갑의 옥사에 있어 내가 가장 공로가 많으니 그 수공은 이이첨도 나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하였는데 이첨도 이를 인정하였다.

그 뒤에 남이공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응서가 도둑질 한 것을 자복한 것은 내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적에서 역적으로 변모된 것은 이이첨의 작품이다.’ 하였다. 이이첨은 본래 응서의 패거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그저 한희길을 통해 그 옥사의 정상을 얻어 들렀을 뿐인데 고변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스스로 공이 있다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가 응서를 유도해 역옥을 얽어 만든 자취야 말로 숨기기 어렵다 하겠다.

이이첨 무리들에 역모 조작의 음모를 전혀 모르고 있는 영의정 이덕형(李德馨)이 회계하기를, [삼가 죄수 박응서의 진술 내용을 보건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이 사람은 현재 행상인을 죽인 죄로 옥에 갇혀 자복했으니 사형에 해당되는 죄수라 할 것입니다만 이번에 상소한 사연이 더욱 놀랍기만 하니 즉시 국문하여 그 정상을 알아낸 다음 그 공초에 들어난 사람들을 은밀히 체포하여 철저히 국문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줄 아뢰오.]하니, 전교하기를, [박응서는 의금부로 옮겨 특별 감방에 단단히 가두고 경비원을 늘려 잡인을 엄금하라.] 하였다.

이쯤 되고 보니, 역모 사건이 틀림없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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