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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⑥

김성래의 6.25 참전 수기-잠들면 죽어!-⑥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5.07.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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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래(대신면 율촌리)
■ 제3장 군인이 되면서


“예!”
“그러면 지금부터 30분간 취침이다. 취침실시!”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육 중 단잠을 자 보았다.


정말 내가 야간 근무 중이라도 그와 같이 눈꺼풀을 고이고 자고 싶도록 힘든 일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부대배치가 되었다. 처음 배치된 곳은 9사단 30연대 2대대로 나는 대대 병기과 조수, 탁군은 대대 작전과. 김군은 7중대 연락병으로 각각 배치되었다. 나의 부대는 최전방 전투부대가 있는 강원도 정선이다. 제대로 걸려든 부대다. 하기야 전쟁 중에 전후방이 따로 있겠는가?


며칠 후 정선 좌측 산골짜기에서 야간 전투가 시작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났다. 우리 신병들은 대대에 있다가 다시 각 중대로 배치되어 나는 7중대 2소대로. 거기에서 김군을 만났다. 반가웠다. 전쟁 중에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후퇴 명령으로 어디론지 후퇴하는데 산등성, 들판, 냇가 차도가 아닌 오솔길, 동물들이 지나치던 작은 길로 적에게 발각되지 않는 차폐, 은폐물을 골라 무작정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간혹 옥수수 가리가 있으면 휴식시간에 잠시 피어 놓은 불에 옥수수 몇 개 구어 후퇴하면서 몇 알씩 입에 넣고 씹어 먹으면서 걷는 것이 전쟁 중의 후퇴였고, 그게 우리들의 일상사 이었다. 이렇게 후퇴하던 중 방어진을 구축하고 며칠 지낸 후, 공격을 감행, 정선에 재입성하여 다시 주둔하게 되었다. 그 때 그곳에서 교전한 적은 인민군 10사단으로 후퇴하지 못한 잔류병이라 한다.


이 잔류병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그 일대를 매일 수색과 잠복근무로 반복되는 전투를 하였다. 심지어 진부까지 계곡을 끼고 수색작전을 펴 이곳저곳으로 이동, 수색작전 중, 산골짝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밤을 지새우는데 초가집에 들어가 보니 나이 많은 아녀자들 몇 명과 아이들이 식사를 하며 검붉은 가루를 주는데 이게 도토리가루다.

 

처음 먹어보는 도토리 가루. 씁쓰름한 게 아무 맛도 없었다. 이곳의 주식은 강냉이와 감자, 도토리가 전부다. 강원도 산골이라지만 생활이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호롱불도 없고 벽 모서리에 관솔 받힘을 만들어 관솔을 쪼개 불을 피워 방을 밝히고 삼베작업을 하고 있었다.


삼을 쪄서 쪼개, 허벅지 맨 살에다 대고 손바닥으로 내어 밀어 길게 잇는 작업을 하는 것도 그곳에서 처음 보았고 삼베길쌈이란 게 힘든 작업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방에서 몇 시간 자고 나가보니 온 세계가 눈 천지다. 눈에쌓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세상이 하얗다.


눈 속을 헤치며 산에 올라 잠복근무를 하려고 개인호를 파는데 눈만 파내도 허리까지 차, 저절로 호가 되었다. 철모를 깔고 앉으면 앞이 겨우 보일 정도의 호가 되었다. 이런 작전을 계속하다가 다시 집결하여 이동한 곳은 바닷가 묵호항에서 조금 떨어진 산 밑 시골마을이다.


민가 한 채에 일개 분대씩 배치되어 토벌과 수색 작전을 하는데 기나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사월이다.

분대장이 전출 되어가는 바람에 분대장이 공석으로 되는 등 병력 보충은 시원찮고 부대 변동이 심했다.


얼마 후 이등중사·병장을 분대장이라 하며 소대장이 데리고 왔다. 인원 보충이 되자, 연대 군장검사를 하고, 넓은 운동장에 집결하여 연대장의 훈시를 듣고 수많은 차량이 우리 부대원을 싣고 어디론지 몇 시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인제부근 매봉산이었다. 그 매봉산 후사면(後斜面)에서 공격대기에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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