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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 아름다움의 추구, 그리고 자유

다양성 - 아름다움의 추구, 그리고 자유

  • 기자명 편집국
  • 입력 2004.12.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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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백일장에 참석해 심사위원으로 학생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시제(詩題)는 소나무, 선생님, 길을 비롯해 다섯 개였는데 가장 많이 쓰여 진 제목이 ‘길’이다. 쓰기에 가장 편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글이 하나같이 애 늙은이다. 처음 몇 편을 읽을 때는 길은 왜 과학화를 고집하며 곧고 빠른 직선만을 추구하는가. 꼬불꼬불 맴돌아 똬리굴처럼 돌아가는 길, 논틀밭틀 멋대로 휘어진 길도 있어야 낭만적이고 정겹지 않겠느냐하며, 현대문명을 질타하고 소외된 인간성의 회복을 내 비추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모든 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목소리다. 왜 학생들은 한결같이 아스팔트와 고속도로를 이를 갈며 외면하는 걸까. 제주도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김포 공항 가도(街道)를 새벽에 달린 적이 있다. 거침없이 뻗어나간 아스팔트, 한 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백색 유도선, 티끌 한 올 찾을 수 없는 청결함, 경쾌한 새벽 공기, 동트기 직전의 어둠을 밝히는 수천수만의 가로등, 그 가로등과,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 명멸하는 전기불은 지상의 별이다. 올버스 파라독스가 적용되는 지상의 별 사이를 헤치며 나는 유영(遊泳)한다. 수많은 별-가로등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몇 백 년 또는 몇 십 년 뒤, 나의 후손들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비행할 때의 기분이 이럴까. 후손들의 기분을 오늘 내가 자가용으로 미리 느낀다 해서 안 될 것은 없다. 이토록 여인의 하체처럼 거침없이 뻗어나간 아름다운 도로의 매료된 것은 나뿐일까. 아니면 백일장에 참석한 학생들은 아직 이런 도로를 구경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전 여행이 반경 50Km에 미치지 못했고, 칸트 또한 동 프러시아 주변에서 평생을 머물렀지만, 요즘 어린 아이들 부모 따라 해외여행에 동해안으로 서해바다로 조국 일주, 안 가본 곳이 없는 애들이니, 김포 공항 가도(街道)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선생님 농간에 놀아나는 아이들이다. 선생도 선생이라 자연보호가 중요하고 정적 이미지, 동양적 사고의 옹호, 획일적, 과학만능의 서구문명의 비판도 좋지만 y=ax의 직선의 좌표와 y=ax+bx+c의 포물선 좌표를 만족하는 방정식의 해가 왜 필요한지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현대는 과학의 세기이다. 문학을 한다고 오직 구태의연한 옛날식 사고에 머물러서야 언제 선진국 따라 잡겠는가.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학생들 또한 이조시대, 또는 고려시대에나 걸 맞는 골샌님이 아니고 뭐냐. 서구화 문명화 되면서 학교 체벌이 없어지고, 선생님 말씀에 엇가고, 서울에서 경주까지 수학여행 기차 칸에서 선생에게 자리 양보하지 않는 학생들이 글짓기 ― 백일장에선 왜 이리 착할까. 아니면 심사위원들이 케케묵은 구시대 안목이니 늙은 어른의 눈높이에 맞추자는 가긍함일까. 어느 해, 봄비 내리는 밤, 반상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도로(道路)에 개구리 떼가 자동차 앞뒤를 에워싸고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고, 겨울 출근길, 찬바람 몰아치는 도로 한 복판, 간밤에 자동차에 치인 우람한 똥개 한 마리 온몸 짓이겨진 자리에 머리만 귀 쫑긋 세우고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하염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북미(北美)이던가, 고속도로에 은행잎이 쌓여 달리던 자동차가 수 없이 전복하는가하면 1억 마리의 메뚜기 떼가 카나리아 제도를 공습하는 광경을 인터넷으로 보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관계는 이토록 다양하다. 다양성의 추구는 여성들이 한 수 위다. 여성의 고전미(古典美)는 ‘김지미’ 또는 ‘엄앵란’이 최고의 미인이라 무조건 전범(典範)으로 삼아 추종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어느 날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모든 여자들이 한꺼번에 아름다워진다. 생각을 고쳐먹고, 김지미, 엄앵란의 표정, 손짓과 발걸음, 목소리의 높낮음, 앉음새……, 따라하던 모든 행동을 거부하고,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며 톡톡 튀는 자기를 자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성의 추구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잃어버린 자유의 쟁취이다. 다양성의 시대 ― 카오스, 프랙탈, 나비효과, 포스트 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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