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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4.01.1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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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행 - 53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1779년 8월6일. 정조(正祖)임금이 영릉(寧陵)에 배알하러 왔다가 여주에 살고있던 김양행을 만났다. “내가 경을 보려는 마음이 목마를 때에 물마시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을 뿐아니라 이에 앞서 돈소(敦召)한 것도 여러 번이었으나 성의가 천박하여 멀리하는 마음을 돌리지 못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서로 만나니 내 마음이 기쁘다” 임금으로부터 이처럼 사랑을 받았던 신하가 김양행이다.
 

김양행(金亮行 1715-1779)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靜), 호는 지암(止菴) 또는 여호(驪湖).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金信謙)이고 어머니는 좌의정 이이명의 딸이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 사간원 정언, 장령, 집의, 호조·예조·공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정조 때 형조참판을 지냈다. 김양행이 대답하기를 “신이 본디 젊어서 고아가 된 까닭에 배우지 못하여 재주와 지식이 거친데 외람되게 초선(抄選)줄에 끼었으니 마음이 부끄러워 용납될 곳이 없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잇달아 돈소를 내리시어 사지(辭旨)가 간절하므로 신이 두렵고 부끄러우며 감격하여 계속해서 명을 어길 수가 없어 병을 조리하고 길을 떠나겠다는 뜻으로 앞서 아뢰었으나 평소에 앓던 병이 요즈음 또 더쳐서 아직도 움츠려 엎드려 있으니 황송하여 못견디겠습니다. …” 하였다. 이 임금과 신하가 청심루(淸心樓) 옆에 있던 행궁에서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임금이 말하기를 “유현(儒賢)은 나이가 몇인데 수염과 머리털이 다 희었는가?” 하매 김양행이 말하기를 “나이는 이제 예순 다섯인데 머리털이 다 희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앉으라. 내가 낯을 보고싶다.” 하매 김양행이 말하기를 “신도 천안(天顔)을 우러러 보기를 바랍니다.”하니 임금이 윤허하였다. 김양행이 몸을 펴고 서서 조금있다가 다시 부복하여 말하기를 “신이 오늘 천안을 우러러 볼 수 있었으니 내일 죽더라도 참으로 여한이 없습니다” 하였다.
 

김양행은 영조 34년 7월 홍계능(洪啓能), 송덕상(宋德相)등과 함께 초선(招選)되어 벼슬길이 열렸다. 성품이 온화하고 자량(慈良)하며 학문에 대한 조예가 정밀하고 심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벼슬에 뜻이 없었던 김양행은 여주에 머물며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고 그러던 중 이날에 이르러 정조임금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때가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 “…나의 목마른 사람같은 소망을 생각한다면 어찌 이토록 무심할 수가 있느냐? 시급히 소원하게 여기는 마음을 돌이켜 즉일로 벌떡 일어나 오라”는 임금의 간청에 못이겨 병든 몸을 일으켰던 김양행은 임금과 마주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죽고 말았다.
 

1779년 11월23일 형조참판 김양행이 졸하였다. 젊어서부터 경학에 힘쓰고 행실을 깨끗이 하였으며 대사헌 민우수(閔遇洙)에게 수업하였다. 벼슬보다 오직 학문연구에 전념하여 성리학과 예학 및 역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영조 무인년에 학문에 독실하고 실천을 힘쓰는 것으로 천거되어 대직(臺職)에 제수하였으나 응소하지 않았다. 찬선 송명흠(宋明欽)이 엄한 견책을 받았을 때에 상소하여 경계를 아뢰었는데 영조가 노하여 면직하여 서인(庶人)이 되었다.
 

금상이 즉위하여 여러 번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기해년에 임금이 영릉에 전알하였을 때에 김양행이 여주에 살았으므로 명을 받고 행전에 들어와 뵙고 거가(車駕)가 돌아올 때에 따라서 조정에 나왔다가 곧 돌아갔다. 이때 홍국영(洪國榮)이 권세를 부리고 날뛰었으므로 금문에 들어가는 자는 다 문안하였으나 김양행만은 돌아보지 않았는데 임금이 늘 말하기를 “풍의(風儀)가 청고한 것이 볼만하니 근세의 유자(儒者)중에 으뜸이라 하겠다” 하였다.
 

이우신(李友信)·민치복(閔致福)·박준원(朴準源) 등의 많은 학자들이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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