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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09.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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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영 - 37

   
▲ 조성문(여준문화원 사무국장)
효종 8년(1657). 모름지기 임금은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향상하고 또 새롭게 향상해서 시종일관 정성껏 천명을 따르고 민정을 살펴 치국해야 한다는 도리를 감고신성잠(鑑古愼成箴)이라는 이름으로 임금께 올린 이가 있었다. 임금이 답하기를 “대사성 조한영이 올린 잠(箴) 한편은 그 의미가 깊고도 원대하며 표현이 좋아 부지런히 싫증내지 않고 두세 번 읽어보았다. 어찌 유념하여 좌우명을 삼지 않겠는가. 그의 충성심이 이러하니 특별히 표범가죽을 하사하여 나의 뜻을 표시하라.”하였다.
 

조한영(曺漢英 1608-1670)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수이(守而). 호는 회곡(晦谷). 공조참판 조문수(曺文秀)의 아들로 대신면 보통리(甫通里)에서 출생했다. 5살 때 시경(詩經)을 읽어 신동이라 불리웠으며 이식(李植)에게서 한문을 익혔고 김장생(金長生) 문하에서 예학을 배웠다. 1627년 생원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1637년 정시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640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 수륙군(水陸軍)의 원병을 청하는 동시에 원손을 볼모로 심양(瀋陽)에 보내라고 요구하자 이를 극력 반대하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 이 사실이 청나라에 알려져 척화파인 김상헌(金尙憲), 채이항(蔡以恒)등과 함께 심양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으나 굽히지 않았다. 조한영이 임금께 올린 상소의 대강은 이렇다. “고금 천하에 오랑캐를 섬기는 신하가 되어 화를 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들의 요구에 따르다보면 백성의 힘은 고갈되고 국가의 형세는 기울어져 반드시 망하게 되니 그러기 전에 새로운 일을 도모해야합니다. 먼저 군신(君臣)이 강화도에 들어가고 바닷가 백성들은 섬으로 옮기고 산성 백성들은 산성으로 대피시키며 각 도의 방백으로 하여금 요해처를 굳게 지키게 하소서. 또한 별도로 대장을 선발하여 남한산성과 강도에 주둔케하고 삼남과 영동, 영북에 장수들을 파견하여 형편대로 대처케 하소서. 그러면 적이 적은 군사로 쳐들어온다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많은 군사를 일으키면 명나라가 배후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한 나머지 저들이 필시 진퇴유곡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들에게 설욕하여 원수를 갚게 되는 길입니다.”
 

조한영은 1642년 심양에서 의주감옥으로 옮겨졌다가 풀려났다. 김상헌과 함께 심양 감옥에 있을 때 감옥의 네 벽에 서리의 두께가 한 자를 넘었다. 조한영은 추위를 이겨내며 고요히 지내면서 김상헌과 시를 주고 받았는데 이때의 시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 설교록(雪?錄)이다. 조한영은 때때로 고향 여주를 생각하며 심양에서의 혹독한 고난의 때를 이겨냈다.
 

여호일우춘응만(驪湖一雨春應晩) 여강에 한줄기 비가 내린 뒤 봄이 곧 저물어 가고
낙진강화독엄문(落盡江花獨掩門) 강가의 꽃들이 떨어져 사라지니 홀로 문을 닫아거네
 

효종이 즉위하면서 헌납, 암행어사, 대사간, 대사성, 이조참의 등을 지냈고 현종 때 형조참판으로 있다가 1669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정언 이옥(李沃)이 조한영을 탄핵하였다. “신이 들으니 우윤 조한영이 경기감사로 있을 때 신씨(申氏)의 산(山)에 관한 송사를 결단해 주고는 바로 상중에 있던 계집을 첩으로 삼았다고 합니다.”하였다. 이일로 사관은 “조한영이 단정치 못해 청의가 천하게 여겼다.”고 적고 있다. 조한영은 한성부우윤겸 하흥군(夏興君)에 봉해졌고 1670년 8월 26일에 죽어 고향에 묻혔다. 1709년(숙종35)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785년(정조9) 여주유생 이성익(李聖翊)이 호란당시의 3학사와 김상헌은 향사(享祀)를 받고 있으니 조한영도 그의 고향집 부근에 있는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추배(追配)하기를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1826년(순조26)에 이르러서 고산서원에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배향되었다. 묘는 대신면 장풍리(長豊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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