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08.19 09:45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두표-33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북벌은 우리 여주가 문화입군(文化立郡)을 위해 소중히 갈고 닦아야할 화두(話頭)의 하나다. 영릉(寧陵)과 대로사, 이완 대장묘를 잇는 절묘한 삼각 코스는 대륙으로 향한 북벌의 의지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이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육사생도들이 정기적으로 이완 대장묘를 참배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웠다고 하는 사실은 여주가 갖고 있는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효종대왕이 재위 10년 동안 일구월심으로 주창한 북벌의 핵심인물들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원두표다.
 

원두표(元斗杓 1593~1664) 본관은 원주(原州). 호는 탄수(灘叟 ), 탄옹(灘翁). 원계군 원유남(元裕男)의 아들이며 인조반정의 공으로 원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시호는 충익(忠翼).
 

원두표의 어머니가 그를 잉태하고 태몽을 말씀드리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태어나면 종묘사직을 바로잡을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가 태어나니 기골이 장대하고 모습도 특이하였으며 점점 자라남에 엄연하고 의지가 남보다 강했으며 호걸의 기상이 있고 훤칠하여 큰 뜻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야사를 통해서도 원두표의 기지와 배짱을 읽을 수 있다. 반정을 일으키기 직전에 여주로 귀양와 있던 이원익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코를 골고 자는 척 하면서 짐짓 잠꼬대로 이원익의 의중을 떠보았다든지, 아버지를 모실 명당을 얻기 위해 지관을 일부러 골탕을 먹였다든지, 사형장에서 망나니의 칼을 피해 한강으로 뛰어든 뒤에 물 속을 기어 도망한 것이라든지, 반정군에 앞장서서 도끼로 돈화문을 부순 이후 ‘도끼정승’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원두표의 인물 됨됨이를 짐작케 한다.
 

원두표가 본격적으로 북벌계획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효종 4년 7월21일 병조판서에 임명되고 부터다. 원두표는 김자점의 낙당(洛黨)과 대립되는 원당(原黨)의 영수였으므로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김자점이 죽고난 뒤 정국을 이끌 적임자이기도 했다. 이때 효종대왕은 이완을 어영대장에 임명하는데 이는 문무를 조화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원두표에게는 국방정책을, 이완에게는 그 실행을 맡긴 인사였다.
 

효종 5년 2월 11일, 원두표의 건의로 인조 때 없어졌던 영장(營將)제도가 부활되었다. 각도의 지방군대를 관할하기 위하여 설치한 진영(鎭營)의 장관을 영장 또는 진장(鎭將)이라고 하는 바, 이들은 정3품 당상직으로 8도에 46인, 강화부에 5인등 51명으로 구성되었고 지방의 군비확장 사업을 담당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효종 6년 9월 29일 장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량진에서 효종대왕은 1만 3천여명의 조선 군사들이 펼치는 열무식(閱武式)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효종대왕과 원두표의 밀접한 관계는 원두표의 신도비에 잘 나타나있다. 「… 상께서 모든 유생들이 항상 답답하여 정사를 논할 사람이 없어 하시더니 여러 대신들을 살피던 중 오직 공만이 큰일을 책임질 만하다 하시고 마침내 군사의 일을 공에게 맡기고 도성의 보루마저 겸하여 관장토록 하시고는 때때로 혼자서 밀실에 불러들여서 더러는 술을 권하시며 후원에서 조용히 일을 의논하시며 사관에게 명하사 이를 기록하지 말도록 하셨으며 표범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패도를 하사하시니…」
 

또한 효종 6년 1월 17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 이때 상이 중원(中原)이 오래도록 어지러운데 피폐(皮幣)만을 일삼고 눈앞의 편안한 것을 꾀하며 세월을 보낼 수 없다하여 성지를 수리하고 군사를 단련하여 스스로 강해지는 방책으로 삼으려했다. … 번번히 연석(筵席)에 임하면 원두표 등과 강론하고 계획하되 해가 기울어도 피곤해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원두표는 북내면 장암리(長岩里) 산 1-4에 잠들어 있다.

<본지에 게재되는 모든 외부기고의 논조는 여주신문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