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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주의 새 청사

새 여주의 새 청사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3.07.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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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섭(본지 객원논설위원, 현대수필로 등단, 저서(목화솜 모정), 고려대학교 졸업)
우리 여주는 2013년 9월23일 시로 승격되어 비약적으로 발전 할 계기가 마련되었다. 내 고장 발전을 위해 온 군민이 모두 팔 걷고 나선 결과이다. 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군민은 힘을 모으고 뜻을 합쳐 세계 제일의 행복도시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시로 승격되면서 할 일이 태산 같이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시 청사를 터 좋은 곳에 바르게 건축하는 문제이다. 내 조상께서 수 백 년 살아 오셨고 내 후손이 대대로 살아가야 할 여주시 청사는 어떤 곳에 자리 해야 할까. 개인도 집터와 음택(陰宅 묘소)자리를 잘 잡아 자손만대 번영을 바라고 부귀공명을염원 할진대 수십만 백성을 거느리는 관청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이웃 고을 이천을 예로 들자.
 

예전에 이천시는 이천도호부로 여주 목에 속하여 여주목사의 지휘를 받았다. 그러나 이천군 구청사는 설봉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는 명당 터였으며, 신청사역시 보기 드문 길지이다. 지금의 이천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여주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이 여주시가 새로운 청사 터를 잘 잡아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고장은 광주산맥, 태백산맥, 차령산맥이 ‘그’자 모양의 분지를 이루어 기후가 좋고, 강이 흐르며 형성된 토사퇴적층으로 토양이 비옥하다. 온갖 기상조건과 풍광이 좋다는 건 모두 아는 일이고, 우리 여주인들의 자랑거리이다.
 

여주의 강북 땅은 백두대간 오대산에서 출발한 장대한 산줄기가 수 백리를 달려 남한강에 막혀 펼쳐놓은 명당판세이다.
 

오대산 산줄기가 우두산을 세우고 대신면에 싸리산, 북내면에 봉미산을 세워 청룡백호를 삼은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지세를 만들어, 천리 대 강이 감싸 안는 대 명당으로 서울에 버금가는 대 길지이다.
 

실학자 淸潭 李重煥(1690~1756)선생은 전국을 직접 답사하여 쓰신 지리서, 택리지에 평양, 춘천과 함께 여주가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江村)이라고 하였다.
 

여주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도 지정문화재, 향토 유적 등 수백 점이 산재하여 문화유적이 제일 많은 문화지역이다. 국도가 사통팔달하고 고속도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개 군에 IC가 여섯 개나 되는 곳은 여주가 유일하다. 우리 여주는 무궁무진 발전할 가능성이 넘쳐나고 청사진이 화려한 곳이다.
 

풍수학을 알 리 없는 선사시대부터 자연의 보호권을 찾아 좋은 자리에 생존 본능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살아 온 곳이 여주이다. 구석기시대(연양리 유적), 신석기시대(돌화살촉, 토기조각), 청동기시대(흔암리 선사유적)부터 살아 온 우리의 조상을 보면 알 수 있다.
 

풍수의 기본은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는 배산임수에 있다. 양택 논리에 삼우택(三憂宅)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세 가지 근심스러운 집이란 뜻이다. 전고후저(앞은 높고 뒤가 낮은 집), 후면강수(집 뒤에 강이나 호수가 있는 집), 북향향택(북향집)이 그것이다.
 

지금의 여주군청은 두 가지 나쁜 점을 겸하고 있다.
 

첫째, 전고후저로 세종로는 앞이 높은 지세이고 둘째, 후면강수로 청사 뒤는 십여 길 낭떠러지, 한강이 세차게 흘러가니 배산임수는 고사하고 물길마저 상충(相衝)하는 화패지지(禍敗之地)이다. 도읍이 바로 서야 나라가 융성 발전하고 관청이 바로 앉아야 시민이 편안하고 고을이 번창한다. 지금의 여주군청자리는 조선조 말 세도가 안동김씨 김병기의 별장이었다가 대원군이 빼앗아 관아가 되었다니 풍광 아름다운 것과 풍수학적 명당논리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길의 논리에 면궁(面弓)과 반궁(反弓)이라는 말이 있다. 면궁이란 활시위를 당겼을 때 활을 잡은 사람 쪽으로 둥글게 휘어진 물길로 부귀 공명할 터전이요, 반궁은 그 반대지역이다. 남한강이 감싸 안은 길지, 면궁 처는 강북 일대이고, 물길의 충살을 받는 반궁 처는 강 건너 남쪽이다. 남한강이 지역을 관통하면서 만들어 낸 자연현상이다.
 

따라서 시민이나 여주시가 무궁무진 발전 하려면 새 청사는 여주 땅의 지세로 보나 풍수학적으로 보나 강북 쪽에 자리해야 한다. 서울 경복궁터에 버금가는 큰 기운이 모인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손 대대로 여주에서 살아 갈 우리 모두의 후손을 위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청사를 짓고 싶은 마음에 짧은 풍수지식을 읊어 보았다.


<본지에 게재되는 모든 외부기고의 논조는 여주신문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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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 2013-07-31 18:07:39
가뜩이나 경제사정도 좋지않은 현 시점에서 청사건립을 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요 왜 저자분이 오학쪽에 땅이 좀 있으신가봐요 이상해괴한 논리를 드네요 그리고 여주가 발전하려면 능서쪽이나 가남에서 진입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죠 강릉이나 원주를 보더라도 서울로 진입하는 나들목 쪽으로 발전을 하고있죠 원주시청이나 강릉시청 애기 입니다 덜떨어진 풍수지리로 혹세무민하지마시고 좀 똑바로 세상을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