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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역사속 여주인물을 소개합니다

  • 기자명 여주신문
  • 입력 2012.12.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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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거(惠居)-①

   
▲ 조성문(여주문화원 사무국장)
불교 의식중에 하나로서 수륙재(水陸齋)라는 것이 있다. 이는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과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를 말한다.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사생육도(四生六道)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하자 지공선사(指空禪師)에게 부탁하여 수륙재를 행한 것이 그 시초다. 우리나라에서는 971년 (고려 광종22) 수원 갈양사(葛陽寺 현 용주사터에 있던 사찰)에서 여주사람 혜거국사가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혜거(惠居 899-974) 본관은 명주(溟州). 천령군(川寧郡) 황려현(黃驪縣 여주의 옛이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증직된 박윤영(朴允榮)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예불과 경듣기를 좋아했던 혜거는 신라 신덕왕(神德王) 3년(914) 봄에 북내면(北內面) 우두산(牛頭山) 개선사(開禪寺)에 가서 오심장로(悟心長老)에게 출가하였다. 3년 뒤인 경명왕(景明王) 1년(917) 금산사(金山寺) 의정율사(義靜律師)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922년 선운사(禪雲寺) 선불장(選佛場)에서 승과(僧科)가 열렸는데 이때 등단하여 설법을 하던 중 천화(天花)가 휘날려 모인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미륵사 개탑(開塔)을 계기로 열린 이 선불장은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주관한 승과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거는 신라 경애왕(景哀王)의 초청으로 분황사(芬皇寺) 주지를 맡았고 이어서 경순왕(敬順王)의 명으로 영묘사(靈妙寺)의 주지로 옮겨 법석을 개최하고 계단을 정비하며 불탑을 장식하는 등 많은 불사를 베풀었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나서 혜거의 도덕과 불법을 흠모하여 세 번씩이나 초청하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종(定宗) 2년(947) 거듭되는 왕의 청에 못이겨 12월에 왕사(王師)가 되었고 이듬해 2월 홍화사(弘化寺)에서 전장법회(轉藏法會)를 주관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은 그에게 변지무애(辯智無碍)라는 호를 내렸다. 광종(光宗) 때에도 왕의 신임은 여전히 두터웠다. 혜거는 962년 왕명을 받고 광명사(廣明寺)에서 7일간 인왕반야회(仁王般若會 국가의 위기 때 열리는 호국적인 법회)를 주관하고 그 공으로 원명묘각(元明妙覺)이라는 호와 함께 많은 재물을 하사받았다.
 

968년(광종19) 6월의 일이다. 개경의 숭경전(崇景殿)에서 기우제가 열렸다. 혜거가 향로를 잡고 대운륜경(大雲輪經)을 외우자 잠시 후 홀연히 지렁이 같은 것이 정병(淨甁)에서 나왔으며 푸른 하늘에 구름이 덮이고 큰비가 쏟아지는 이적(異蹟)이 일어나 모든 사람이 경탄하면서 혜거를 신성시하게 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혜거는 이해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혜거가 은퇴할 때 왕은 조(租) 500석, 면포 60필, 유원다 100각, 기명(器皿)등의 재물과 500경의 전결을 내려주었다. 이후 혜거는 갈양사를 근거로 수원지방의 조계종풍(曹溪宗風)을 확장하면서 많은 문인을 양성하는 등 고려초기 이곳의 선종(禪宗)을 대표하게 되었다.


974년(광종25) 2월 15일 마침내 혜거는 대중을 모아 “근원으로 돌아간다(還源).”고 밝히고 입적하니 향년 76세, 계랍(戒臘) 61년이었다. 부음을 들은 광종은 좌승선 이경적(李敬迪)을 보내 상사(喪事)를 돌보게 하였고 3월 8일 다비(茶毗)한 뒤 사리 13과를 얻어 탑에 안치하였다. 혜거의 문인으로는 대선사 숭담(嵩曇), 대선사 보욱, 대선백 정관(淨觀), 대교석덕 충혜(忠惠)등 100여인을 헤아렸다. 이들이 스승인 혜거의 상장(上狀)을 올리자 광종은 이해 7월 홍제존자(洪濟尊者)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를 보광(寶光)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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