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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들이

이상한 나들이

  • 기자명 이상국(본사 객원논설위원)
  • 입력 2009.05.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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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싱글 정장을 빼입고 나들이 길에 나섰다. 글 쓰는 수필가라면 꽤 알아줬는데 요즘은 인터넷에 들어가 누구나 독자도 작가도 되는 세상이라 글쟁이도 식상해졌다. 그래도 그 게 뭔지 10년 넘게 군소리 않고 찾아가는 게 글쟁이 수필가들의 모임이다. 버스를 타려고 돌아서는데, “… 아저씨…” 들릴 듯 말 듯, 젊은 여자 종종 걸음 다가서는데 긴가민가하는 표정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 뒷좌석. 로열석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관광길에 나서거나 직장 버스에선 당연 최고령자 또는 지휘자의 지정석이다, 거기 앉아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펴들었다. 남학생이 버스 문을 잡고서서 “몇 시 차죠.” 묻는다. 당연히 대답해야 마땅할 사람에게 묻는 폼이다. 나는 아닌데. “거기 앞에 쓰여 있잖아. 9시.” 곱지 않은 표정으로 답하고 원고에 눈을 돌렸다. 어느 틈에 이 녀석 차에 올라 표를 내민다. 내가 자리를 잘못 앉았나. 확실히 3번 석인데. 내 차표를 보였다. “어. 아 닌 데…요.” 이 녀석 나를 버스 기사로 본 거다. 생각해 보니 차에 오르기 전 “아저씨”하고 부르던 여자도 나를 운전기사로 오인한 거다. 주위를 둘러본다. 잠바, 코트, 카디건, 등산복, 추리닝, 사파리…. 싱글정장은 어디에도 없다. 가끔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운전기사들뿐. 이 근엄하고 선망의 대상이며 존경받아 마땅해야할 복장이 언제부터 버스운전기사 유니폼으로 전락(?)해 버렸을까. 인간이 인간으로 온전한 대우를 받을 양이면 필수로 입고, 입어서, 입으면, 입어야할 이 한치 오차 없는 예의범절로서의, 세시풍속에 쉽게 물들지 않던 절도의 의복이 어느 틈에 어수선한 캐주얼로 자리를 내어 준 걸까. 나는 로열에서 그저 그렇고 그런 자리로 추락한 이상한 자리에 앉아 정장과 캐주얼이 도치된 이상한 세상에서 식상해진 수필가들의 이상한 모임으로 이상한 나들이를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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