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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려인 동포 이주노동자 ‘옥사나’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칼럼 고려인 동포 이주노동자 ‘옥사나’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 기자명 진재필 여주시외국인복지센터장
  • 입력 2022.05.1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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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필 /여주이주민지원센터 사무국장
진재필 /여주이주민지원센터 사무국장

겨울 추위가 맵던 지난해 12월 초였습니다. 카자흐스탄 출신 이주여성 두 분이 여주외국인복지센터를 방문해주셨습니다.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바로 걷지 못해 친구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한 눈에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청력마저 손상되어 대화도 필담(筆談)으로 나눠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몸이 아픈 외국인을 도와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냐’는 절박한 필담으로 대화가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신 ‘옥사나’씨는 여성 이주노동자로 스탈린 시절 강제 이주를 통해서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 동포 3세였습니다. 한국의 비자 중에 재외동포에게 입국과 취업을 일정하게 허용하는 특례조항이 있는데 이 비자로(F-4) 입국해서 20대 중반부터 10여년 넘게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져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 초 어지럼증이 심해지고 피부종양이 생겨 병원을 찾았는데 ‘신경섬유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미 뇌와 신체 곳곳에 종양이 퍼져서 당장 수술과 방사선치료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는데 당시에는 천만원이 넘게 드는 병원비를 마련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고 진통제로 버텼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지럼증이 심해졌고 시력과 청력의 손실은 물론 말도 어눌해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으로 번 돈은 이미 고향에 있는 가족들 생계비로 소진한 상태로 소극적인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카자흐스탄 동료들이 ‘죽더라도 딸이 있는 가족 곁에서 죽어야 하지 않겠냐’며 비행기 표를 마련해서 카자흐스탄으로 귀국을 시켜줬다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국을 돌아가 카자흐스탄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의료 수준이 열악한 현지 의료기관은 결국 치료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설상가상 투병이 길어지면서 이혼으로 좌절의 시간을 보내며 죽음만 기다리는 삶의 절벽 끝에서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딸 아이를 혼자 남겨놓고 죽을 수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병을 이길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아이를 위해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며 싸워보겠다’는 목숨을 담보로 한 결심이 그녀가 홀홀 단신 한국으로 재입국을 한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극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모텔 청소나 소규모 제조업체에 취업해 일을 했지만 균형감각마저 상실하자 더이상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카자흐스탄 동료들 숙소에서 임시 기거하며 진통제로 버텨왔다고 합니다.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일하면서 겪는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들을 대할 때면 무언지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연해주나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를 했고, 항일운동에 앞장서 왔고, 억척스럽게 삶을 일궈가다가 스탈린정권 하에서 모든 걸 잃고 강제 이주를 당한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십여년 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지도자분들이 고국 방문길에 센터를 찾아주셨습니다. 마침 환영장에는 센터를 이용하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십여명도 참석했습니다. 환영식에서 대표인사를 해주시던 백발의 고려인 작가분께서 눈물을 훔치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조국에 감사합니다. 저희가 역 이름도 모르는 낯선 땅에 던져졌을 때 겨울이 오고 있었고 살기 위해서 땅을 파고 동굴을 만들어 겨울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와서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을 걸 전해주고 친구로 맞아줘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도움으로 우리 고려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인정받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국에 와보니 우리 동포들이 그때 우리를 도왔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돕고 있는 걸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납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려인 동포 외국인노동자로 십여년을 일하다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옥사나씨에게 할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이 작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다 오히려 병이 들고 이혼을 당한 채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요.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여주시 ‘남한강 로타리클럽’과 ‘명성 로타리클럽’에서 고려인 동포의 병원비 마련을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일천만원의 병원비가 마련됐으니 돈 걱정 말고 치료에 집중해달라는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간 센터에서는 ‘푸른나눔재단’을 통해서 옥사나씨의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과 원주 기독병원에 내원하여 수 차례 검사도 진행했습니다. 의사선생님 소견으로는 뇌에 종양이 많이 생겼고 위치 또한 안좋은 상태의 큰 종양으로 완치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를 통해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계속 치료를 해가면서 현재 수준으로라도 삶을 유지해보자는 답을 주셨습니다.

이미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던터라, 어렵더라도 병원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함께 노력해서 현 상황을 유지해보자는 의견을 글로 적어서 보여줬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아이를 다시 봐야 하기에 오늘부터 더 힘내서 치료에 임하겠다고 꾹꾹 눌러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의지가 적힌 종이가 그녀의 눈물로 젖었습니다.

한 생명이 곧 우주고 한 사람이 곧 세계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함께해주신 ‘남한강 로타리 클럽’과 ‘명성로타리 클럽’의 모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너나없이 고난한 이주노동 과정이지만 고국의 친구를 위해 기꺼이 방을 내주고 끼니를 해결해주고, 또 병원까지 동행해주는 카자흐스탄 동료 분들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오늘도 병원 진료를 위해 옥사나씨가 센터를 방문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귓 속에 있는 섬유종의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 일정을 잡기 위해 함께 병원 예약이 되어 있는 날입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니 오늘도 필담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통역을 이어갑니다. 이번 치료를 잘 받아서 단 한번이라도 딸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녀의 글을 읽어주시는 통역선생님께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힘내서 치료받고 건강하게 카자흐스탄의 아이를 보러 가자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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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섭 2022-05-21 21:32:03
기고문중에서 추가 할 내용이 있어서
몇자 적습니다

처음 병원 치료비 도움을 요청 했었던
남한강 로타리 클럽과 명성 로타리 클럽에서 연락이 왔는데

두 클럽이 속해 있는
여주 지역 로타리 클럽 협의회에서 합동봉사로 논의 하였고

여주 로타리 클럽 ㆍ여강 로타리 클럽 ㆍ여흥로타리클럽ㆍ
가남로타리 클럽등이 함께 ㆍ 국제로타리 3600지구 내 여주지역
6개 로타리 클럽 봉사 모임인 여주지역 협의회에서 의논하여
3600지구 91개 클럽에 도움을 요청하여
몇개 클럽과 개인적 후원을 받아서
후원의 뜻을 모아서 합동으로 지구 보조금 봉사로
일천만원기금을 마련하였으니 병원비 걱정 말고 치료에
집중하여 힘써 달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라고
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주섭 2022-05-21 21:13:54
처음 도움을 요청했던

남한강 로타리 클럽과 명성 로타리 클럽에서 연락이 왔는데

여주 지역 여주 로타리 클럽 ㆍ여강 로타리 클럽 ㆍ여흥로타리클럽ㆍ가남로타리 클럽이 함께 ㆍ 6개 클럽이 후원의 뜻을 모아서 합동으로 지구 보조금 봉사로
일천만원기금을마련하였으니 병원비 걱정 말고 치료에 집중하여 힘써 달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