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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불효자는 갑니다 

여강여담- 불효자는 갑니다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10.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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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까지 막으며 이번 추석은 집콕하라했지만

고속도로는 막히고 놀이동산은 북새통, 인간은 풍선

조용연 주필

“제발 이번 추석은 고향에 내려가지 마라” “그게 불효가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그랬다. 역병이 돌면 제사도 건너뛰었다.” 정부는 줄기차게 귀성의 본능에다 대고 호소했다. 그래도 어쩐지 1년에 한 번 가는 고향, 이제는 부모님도 안 계신 고향 선산의 흙냄새라도 맡고 오는 게 차라리 나을 듯싶어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시혜로 주던 통행료 면제 보너스도 없지만 고속도로 위의 밀도는 높아져 속도는 반절로 줄었다. 고향마을 어귀에는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패러디한 고향 방문 자제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고향의 노인들이 붙였을 리 만무하지만 관청의 행정력은 동구밖 느티나무 아래까지 확실하다. 자식들과 함께 가는 선산길. 집집마다 골치 썩이는 벌초와 성묘까지도 헤아려 작년에 잘생긴 소나무 아래 조상님들을 다시 모셨으니 불효도 아니다. 바람까지 소소하니 선산은 코로나를 잊기에 충분하도록 상쾌한 둥지다.

말 잘 듣는 국민들이지만 3할은 정부의 ‘귀향 자제령’을 어겨버렸다. 사연도 각양각색이었을 것이다. 마스크 쓴 얼굴로라도 아들·딸 손등을 쓸어보고 싶은 고향의 부모님 얼굴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집콕을 못할 바에는 차로 이동하고, 고향 집만 들렸다오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스스로 판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텅빈 광화문광장과 북새통을 이룬 휴양지와 놀이동산은 슬프다

광화문광장은 이 명절 강요된 고요를 경험했다. 그토록 비난하던 명박산성은 더욱 견고한 업그레이드 버젼으로 등판했다. 원래 경찰의 산성 쌓기는 개구멍까지 막는 신기(神技)에 가깝다. 뚫리면 목숨이 위태로운 경찰지휘부의 경험적 지혜가 광장을 비울 수 있게 진화했다. 한 시절 법원까지 동원되어 ‘기본권 침해’라며 핏대를 세우던 논리는 코로나 위수령(衛戍令)에 숨어버렸다. ‘거기만의 집합은 안 된다’는 논리에 승복하지 못하는 대중은 대세에 밀린 채 뿔뿔이 흩어진다. 예방경찰의 반작용으로 “에라, 김에 놀러나 가자.”는 분위기는 휴양지의 콘도와 곳곳의 놀이동산을 북새통으로 만들었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다. “발 달린 짐승이 어딜 못가랴”는 원색적인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꼼지락거리는 존재다.’ 조회 시간에도 부동자세가 길어지면 졸도하기도 하고, 열중 쉬어를 오래 하고 있으면 온 데가 근지러워진다.

집에서보다 별다방에 앉아서 귀로는 노래를 듣고, 손으로는 볼펜을 돌려가며 화면을 검색하는게 공부가 더 잘 된다는 청년들에게 ‘집합금지명령’쯤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집콕하라’ 해놓고 고관대작의 가족은 해외로 요트 사러 갔다는 뉴스는 ‘강남에 반드시 살 필요는 없다면서도 저마다 강남에 기어이 집을 보유해야겠다’는 이 시대 지배엘리트의 모순적 복제판이다. “이왕 간 거 바로 귀국하라 하기도 뭣하고...”“내가 장관도 아닌데 뭐 어때?”라는 판단은 국제화에 조기 적응한 가풍에서야 뭐 별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이제 명절이 지나고 보름 이내에 코로나 성적표가 나올 것이다. 이건 정부로서는 꽃놀이패다.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면 “그 봐라, 정부 말을 안 듣고 광화문광장까지 몰렸더라면 더 창궐했을 게 뻔하다.”하고, 감염자 숫자가 줄어들면 “그 봐라, 광화문광장도 막고, 정부 말을 잘 들었으니 그나마 줄어든 거다.”라고 얘기할 것이다.

날이 쌀쌀해졌다. 세월은 간다. 콘도에서 제사 지내던 가족을 흉보던 옛 뉴스는 온라인 제사까지 등장한 비대면 시대에는 훌륭한 효의 발현이다. 그래도 만나야 한다. ‘내년 추석에라도 코로나 박멸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희망 섞인 전망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때도 코로나가 임차권을 주장하고 짐을 싸지 않는다면 나는 고향을 또 찾아갈 수밖에 없다. “불효자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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