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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 능도 참배합시다

효종대왕 능도 참배합시다

  • 기자명 이보택 언론인
  • 입력 2020.09.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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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택 / 언론

여주시 영릉로 269-12 위치한 세종대왕능과 효종대왕능은 작은 산등을 경계로 두분의 능침이 모시어져 있지만 영녕릉을 찾는 참배인 모두가 잘 알려진 세종대왕 능 참배만으로 돌아가 조용하고 아늑하게 잘 조성되어 있는 효종대왕 능은 늘 정막하고 쓸쓸한 능이 되어 안타깝다.

효종대왕은 북벌에 한을 품고 강력한 북벌을 계획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대왕이시다. 거기다 부왕(仁祖大王)이 삼전도 수항단(三田渡 受降壇)에서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예를 올리며 항복하는 치욕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사무친 복수를 노린 분이다.

효종대왕은 가장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으로 인질에서 8년만에 돌아와 형 세현세자가 갑자기 타계한후 인조대왕의 양위를 받아 1649년 제17대 대왕으로 즉위하시자 한에 사무친 강력한 북벌계획을 세우고 청나라 첩자 김자점을 파직하고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로 구성했다.

청나라를 정벌하려는 북벌계획의 신하로 스승이신 문신 송시열 청음 김상헌 등과 무신으로는 이완대장과 이어 유혁연 ‧ 원두표 등을 종용해 이들과 함께 성을 개축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하며 군재와 군비를 더욱 확층 시키는등 전력을 증강시키고 북벌에 만전을 다해 준비하시었다.

그리고 북벌의 선봉부태 어영청을 대폭개편 강화하고 사포부대를 조직 대국을 정벌할 양마를 기르고 군사들이 입는 융복의 소매를 짧고 좁게 줄여 간편하게 하고 군례 또한 국궁대신 공수 장궤로 바꾸고 대왕이 좋아하신 술도 끊으시고 심기일전 복수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세웠다.

그리고 10만의 군사를 10년 기한으로 군사훈련과 군량미를 비축하며 모진훈련을 했지만 청이 러시아를 치려고 나선정벌(羅禪征伐)계획아래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여 이로 인하여 차질이 되고 대왕께서 갑작이 승하 하시니 북벌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준비해온 군은 모두가 비통했다.

1659년 5월 4일 41세를 일기로 뜻을 펴지 못하고 애석하게 승하하시니 북벌계획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대왕은 총명하시고 문장이 일취월장하여 세인들을 항시 놀라게 하시고 효성 또한 지극하여 부왕께서 병세가 위독하실 때 손가락의 피를 입에 넣어 위기를 연장 시키었다.

또 대왕께서는 모후이신 인선왕후 상사 시엔 상청을 떠나지 않고 침식을 전폐하며 애통해 하시는 등 효행이 지극하여 효종(孝宗)이라 묘호를 올랐다. 한편 정조대왕은 송시열등이 북벌에 한을 그리며 대왕께 고한다는 얘기를 듣고 강변에 대로사를 건립 이들의 흔적을 알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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