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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장·단음 구별, 국어 실력의 문제다

한글은 같은 글자도 다른 뜻이 많아 장단음, 문맥으로 식별

어려서부터 낭독을 몸에 익혀 자연스레 구별하는 어문생활 필요

조용연 주필

지난 밤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가 화재(불)가 났다는 이야기를 단음으로 발음하자, 화제(이야기거리)가 되고 말았다. 큰 사고(事故,일)가 났다고 장음으로 발음해야 할 것을 단음으로 발음하자 사고(思考,생각)가 되고 만다. 80년대만 해도 “아나운서가 그것도 제대로 발음을 못 하느냐”고 비난이 빗발쳤지만 지금은 모두 덤덤해져 버렸다.

장단음을 비교적 정확히 구분하던 서울·경기 말에서조차 그 구분이 자꾸 희미해져 간다. 그 구별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하던 국어 어문 전문가들도 이제 오랜 주장과 무반응에 지쳐있는 상태다.

한 글자인 말(言·馬), 밤(栗·夜), 배(倍·梨), 눈(雪·眼), 굴(窟·石花)처럼 비교적 쉬운 것에서부터, 부자(富:者, 父子), 사과(謝:過, 沙果), 감정(感:情, 鑑定)의 2음절 단어도 있다.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는 양수리(兩水里)이니 장음으로 발음해야 하나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단음으로 굳어져버렸다. 사실 다 안다싶어 사전 찾기를 소홀히 하지만 국어사전에는 모든 단어가 장음인지 단음인지 콜론(:) 표시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실제 장단음 구별이 희미해져 간다고는 해도 여전히 아나운서에게는 철저히 교육을 하고 있고, 7~9급 공무원 국어시험에는 장단음 구별 문제가 나오고 있으니 한 두 문제로 당락이 결정되는 공시생들은 무조건 외워야 하니 죽을 맛이다.

장·단음의 습득은 낭독을 통한 일상 언어생활에서 익혀야

장·단음의 문제는 골치거리가 되어 버렸다. 한글이 24개 자모로 이리저리 조합을 이루는 과학적 구조로 배우고 쓰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한글전용을 주장하면 할수록 확장성이 떨어진다. 사람으로 말하면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단음의 구별은 어휘의 확장을 위하여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면서 장·단음에 대한 부호를 어떻게 넣을 것인지를 생각을 못 한 것인지 깜빡하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언어생활이나 문맥을 통하여 익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부호가 없기는 영어나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에 엑센트나 높낮이가 없는 게 아니다. 영어시험을 위해 얼마나 성가시게 외우고 익히길 반복하는가.

북경에서 한족 대학생에게 중국어를 배울 때 이야기다. 내가 연변에서 간행된 한어(중국어) 회화책에 성조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기에 성조를 좀 그려 넣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일사천리로 성조를 그려가기 시작했다. 외워서 하는 게 아니다. 몸에, 입에 붙어 있는 말에서 바로 추출하는 신공(神功)을 보았다.

초등학교 때, 국어 시간이면 선생님은 누군가를 지명해서 일어서서 읽어보라고 했다. 학생이 한글을 아는가를 시험하는 측면이 강했지만 그를 통해서 책 속의 말을 실제 입에 익도록 했다. 어느 한글학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가 격한 된소리, 소주를 ‘쐐주’로, 학과 대표를 ‘꽈대표’로 말하는 등의 경향은 ‘장단음 구별이 사라진 뒤에 나오는 불가피한 음운의 변화’라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생방송도 아닌 방송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장·단음의 실수를 연발해도 고쳐줄 사람이 없는 듯 보인다. 작가도, PD도 힘주어 배워본 적도, 중요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낭독만이 살길이다. 낭독은 묵독과는 달리 말맛을 몸에 익히는데는 절대적이다. 취학 전에 한글을 떼고 들어가는 시대니 ‘소리내 이어 읽기’ 등을 통해 문장의 뜻을 제대로 공유하기 위한 교육 현장에서의 읽기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사전을 들춰가며 단어마다 콜론(:)이 붙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한글 언어생활이 필요한 때이다. 공무원 시험을 위해서 달달 외우는 장·단음 구별만으로는 서로가 지쳐갈 뿐이다. 훈민정음 반포 574돌에 부쳐 다시 생각해 본다.

조용연 주필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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