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활약하던 투사, 어느 날 절필 선언하고 사라져
어느 날 갑자기 백발백중의 표창 던지기 선수 같던 SNS 전사 하나가 허무한 탄식을 하며 화면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글은 핵심에 꽃혔고, 표현은 피가 철철 흐르리만치 강렬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좌우 진영의 한편에 확실히 진지를 튼 그가 쓴 글이 분노의 화염에 휩싸이며 욕설로 변해갈 때 쾌감에 사로잡힌 추종자들은 높이 치켜든 깃발 아래로 더 몰려들어 ‘좋아요’를 눌러댔다.
그가 보수의 열혈전사로 훨씬 더 상대의 살 속을 깊이 찌르고, 창끝을 비틀수록 그 끝은 단단한 뼈에 닿았으리라. 현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대책 없이 견고하고, 그가 힘을 줄 때마다 그의 뇌수 또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한숨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을 때, 그는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분노가 쓸고 간 ‘번 아웃’이 그를 삼켜 버렸다.
전사는 휴식이 필요했다. 상대의 염탐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신경을 차단하는 자기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쟁 중에도 휴가는 가야 하는 항목에 들어 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공간과는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세계가 좋다. 그림, 사진, 목공이 정적(靜的)이라면, 등산, 운동, 오프 로드는 동적(動的)인 충전터가 된다.
잠도 자지 않으며 놀던 SNS 무대의 전사인 그가 온라인을 떠나 어찌 사나 찾아보니 확실히 그는 열혈의 전사임이 분명했다. 도봉을 오르며 암산의 기를 한 몸에 받고, 주체할 수 없는 정열을 드론과 시니어 모델 일에 쏟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맑았고, 근육은 훨씬 더 단단해 보였다. 공방 안에서 나무의 결을 쓰다듬으며 먹줄을 튕기는 그의 눈은 수도자처럼 형형했다. 빨간불이 들어왔던 그의 정신 탱크의 눈금이 서서히 차오르는 신호였다. 다행이었다.
‘시무 7조’의 상소와 하교가 달구는 세상
그러는 사이 ‘시무 7조’의 상소문 형식을 띤 글이 시대의 격전장 가장 높은 곳에 ‘방(榜)’으로 나붙었다. 피칠갑을 한 말과 글에도 꿈쩍 않던 혐정(嫌政)의 저잣거리가 공감의 횃불 아래로 모여들었다. 제각기 입장이 다른 반박에, 재반박에도 막말의 유혹을 참고 누른 흔적이 역력하다. 어느 시사평론가는 ‘천하 명문’이라 높이 샀고, 반대편은 ‘정의의 큰 뜻도 모르는 화려한 언어의 분식(粉飾)’이라고 칼끝을 숨긴 채 꼬집었다.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것은 속속들이 아프겠지만 피가 낭자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의 노예가 된 욕설과 비하의 댓글이 아니라 촌철살인의 풍자와 공감이 대결의 장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상소와 하교라는 왕조시대의 언로 형식은 이 시대의 성격 규정을 확실히 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백성은 오늘의 역사 현장에 살아있는 엑스트라이면서도 사극의 주체적 관객이 되어 버렸다.
시대는 얼마나 더 이 벼랑 끝 전투를 더 치러야 할지 모를 일이다. 배우이자 동시에 관객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혐오’로 현실정치에서 낯 돌리게 하지 않으려면 정책의 수정과 보완, 실축(失蹴)의 반성과 사과가 지금 힘 가진 이의 낯을 깎아 먹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현실과의 투쟁이 단축 마라톤이 아니라면 사이 사이에 휴식을 끼워 넣어야 한다. 배우든 관객이든 멀리 가려면 그 여백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몫이다. ”‘놀멘 놀멘’ 하라우“라는 말을 선친으로부터 배웠다는 가수 조영남의 말은 더구나 요즘에 딱 들어맞는 충고다. 그러고 보니 절필을 선언했던 그 전사는 SNS로 돌아와 가끔 정치 현실에 훈수를 두면서도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적어도 눈금 서너 개 충전은 된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