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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81. 쓸수록 쌓이는 역설!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81. 쓸수록 쌓이는 역설!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8.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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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여주 대신면 보통리에 가면 조성환 생가가 있습니다. 조성환은 1875년에 태어나 1948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73년 생애 가운데 37년간을 중국에 거주하며 해외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조성환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 장교입니다. 그 경력에 맞게 주로 군사 관련 일을 했습니다. 임시정부에서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최고 책임자였으며 군무부장 일을 오랫동안 했지요.

조성환은 1945년 12월 2일, 임시정부 요인 제2진으로 환국합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된 나라에 돌아온 것이죠. 이때 조성환은 가진 재산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보통리 일대 저택과 임야, 전답은 물론 여주 흥천면 율극리에 있던 임야도 매각하여 독립운동 자금으로 다 들어갔기 때문이죠. 그래서 귀국 뒤 서거할 때까지 살았던 서울 종로6가 낙산장도 남의 집이었습니다.

낙산장은 귀국한 임시정부의 내무부 정치공작대가 사무실로 쓰던 곳이었습니다. 이 낙산장에는 조성환 가족뿐 아니라 해공 신익희 가족도 같이 살았지요. 신익희도 빈털터리 독립운동가였으니까요.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은 쌓아 두지 않는 사람이다.”

성인은 쌓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 쌓일 틈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남을 위해 가진 것을 다 쓰고 다 주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였을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자기 재산을 다 쓰고 다 주었죠. 재산뿐이겠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목숨도 내놓았지요.

조성환은 스스로 ‘청사(晴簑)’라는 호를 지었는데요, 뜻풀이 시를 황성신문에 실었습니다. 조성환이 32살이던 1906년 10월 5일자 신문입니다.

여름엔 베옷 겨울엔 갖옷이 각각 마땅하지만(夏葛冬裘各適宜)

맑은 날 도롱이와 삿갓도 서로 어울린다네(晴天簑笠底相隨)

조성환 호가 있는 두 구절만 인용해봅니다. 청천(晴天)이란 ‘비가 내리다가 갠 하늘’이란 뜻입니다. 비가 개면 당연히 우비인 도롱이를 벗어야겠지요. 그러나 조성환은 오히려 맑은 날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쓰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 끝 구절에 이렇게 읊습니다.

“사람들아, 지금 소용없다고 웃지 마라. 예로부터 처신에는 저절로 때가 있으니.”

맑은 날 도롱이를 입은 ‘청사’는 그렇게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과 목숨을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에 바치는 처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1948년 청사가 서거한 뒤에 남은 가족은 쌀 한 톨 구하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청사 서거 뒤 부인과 양자 조규택이 신익희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합니다.

“집 한 칸, 쌀 한 톨이 없으니 앞으로 생계가 막연합니다. 방 하나와 삯바느질이라도 할 수 있게 재봉틀 한 대만 마련해 주십시오.”

이에 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와 국무총리 이범석이 의견을 내 모금을 합니다. 이때 모인 돈 150만 원과 재봉틀 2대를 이시영 부통령이 유가족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현재 여주 대신면 보통리 고택도 여주시에서 사들여 <독립운동가 조성환 생가>라는 표지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청사 조성환이 서거한 지 72년만입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위해 다 쓰지만 자기에게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다 주지만 자기에게 더욱 많아진다.”

이 말은 마치 청사 조성환의 삶을 보여주는 말 같습니다. 아니 청사뿐 아니라 일제시대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요즘 온 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난리입니다. 집을 많이 가진 사람은 두 채 세 채 가지고도 더더욱 소유하려고 온갖 수를 씁니다. 없는 사람은 몸 하나 편히 누일 집이 없어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과연 얼마나 더 가져야 욕망을 채울 수 있을까요? 과연 얼마나 더 고통 받아야 평화가 오는 것일까요? 하늘을 뒤덮어 오는 검은 폭풍우가 두려운 계절입니다.

<노자 도덕경 81장 : 信言不美(신언불미)하니 美言不信(미언불신)이라. 善者不辯(선자불변)하니 辯者不善(변자불선)이라. 知者不博(지자불박)하니 博者不知(박자부지)라. 聖人不積(성인불적)하나니 旣以爲人(기이위인)하지만 己愈有(기유유)하고 旣以與人(기이여인)이지만 己愈多(기유다)하노라. 天之道(천지도)는 利而不害(리이불해)하며 聖人之道(성인지도)는 爲而不爭(위이부쟁)이니라.>

믿음직한 말은 화려하지 않으니 번지르르 한 말은 미덥지 않다. 선한 사람은 말다툼이 없으니 이런저런 논리로 변명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지혜로운 자는 박식을 자랑하지 않으니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않다. 성인은 쌓아 두지 않는 사람이라 남을 위해 다 쓰지만 자기에게 더욱 있게 되고, 남에게 다 주지만 자기에게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면서도 해침이 없고 성인의 도는 다 해주면서도 다투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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