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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골목길 1 (목포1)·①

대중가요의 골목길 1 (목포1)·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8.0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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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종점, 목포는 항구다

노래의 산맥은 높고, 노래의 골짜기는 깊습니다.

여러 갈래로 분화하는 노래 속에서도 저자거리나 삶의 일터에서 불리던 노래, 이름하여 ‘대중가요’에 오래 발이 머물게 되는 것은 거기에 너무나 닮은 우리 삶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미스터 트롯>으로 촉발된 트로트 열풍은 뜻밖에도 ‘시대의 담론’이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저는 트로트가 주류인 옛 노래를 ‘대중가요’, ‘전통가요’, ‘아리랑 가요’ 등 어찌 부른다 해도 그 시절 우리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요의 높은 산 깊은 골짝을 다시 되밟아 가보고 싶었습니다. 흘러간 노래’라고 말하는 그 시절의 노래에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골드스타 금성’ 라디오 곁에서 익숙해진 음률이 있습니다. 경운기 운전대에 제 몸보다 더 큰 건전지를 이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고무줄로 칭칭 매달고, 유행가를 따라 부르고 외우던 우리가 있습니다. 노래의 지평은 끝 간 데 없고, 노래의 파도는 끝없이 출렁거려 어디까지를 대중가요의 범주로 자를 것인가에도 이러저러한 시각이 있습니다.

대중가요 안의 장벽은 절망할 정도로 견고한 ‘세대 차이’로 와 닿았습니다. 아니 ‘세대 외면’에 가까웠습니다. 월요일 밤 공영방송의 ‘가요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노래와 춤이 범벅이 된 아이돌의 노래는 어지러운 율동과 난해한 부호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거든요. BTS(방탄소년단)가 미국 대중음악의 정상에까지 바짝 다가서 있고, 세계적인 열풍으로 단 한 곡의 노래로도 10억 뷰를 돌파했다는 기록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 음악의 보폭과 질주를 따라가기에는 관절이 삐걱거리고 숨이 가쁩니다. 

노래에 관한 한,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추억의 굴레에 스스로 묶이고, 그리워하고, 애달파하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제목이 말하듯, 우리 대중가요가 걸어온 ‘골목길을 서성이는 여행’을 이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무릇 명곡의 탄생에 작사, 작곡, 가수란 삼박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가요의 무대 뒤편, 그 배경, 그 공간으로 가보려 합니다. 우리 가요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이기에 넉넉하게 가려 합니다. 특급열차나 고속버스도 타겠지만 때론 완행열차도, 시내버스도 타고 미니벨로 자전거를 타고 그 배경으로 날아가는 축지(縮地)법을 즐길 예정입니다. 

모쪼록 옛노래 한 곡, 트로트 신곡을 놓고도 세대를 넘어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자·손녀가 함께 즐기는 이 분위기가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조용연 여행작가

누가 뭐래도 목포는 항구다.  

부산이, 여수가 항구가 아닐 리 없지만 항구와 아귀가 딱 맞는 한 문장을 만들기엔 목포만 못하다. 노래 한 곡의 강렬한 힘, 그 정의(定意) 때문이다. 남진이 “눈물 얘긴 그만하자”고 하지만, 눈물 없이 어떻게 ‘오래된 목포’를 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목포의 노래들이 유달산과 노적봉, 삼학도와 영산강이란 삼각대 위의 견고한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락선을 타고 사랑과 함께 사라져 남이 된 님이 거나 돈 벌러 화물선을 타고 떠나간 님이거나, 항구의 님은 쓰라린 이별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눈물이 말라붙은 비릿한 항구를 ‘발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대의 저인망이 비켜 갔기에 오래된 목포는 근대사의 거리에 남은 적산(敵産)을 지킬 수 있었다.

남행열차의 종점,  목포역

이제 대중가요 110년의 역사를 찾아서 떠난다. 그 길은 수많은 갈래 길을 낳겠지만 목포를 첫 여정의 행선으로 정한 것은 조금도 망설임 없는 선택이다. <목포의 눈물>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목포 사람들은 이 노래를 ‘목포의 애국가’라고 부른다지만 이 노래야말로 일제의 그 어두운 시절를 견디게 해준 노래이자 ‘이천만 동포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제 호남선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가면서 고단하지만 촉촉한 서정에 한 번쯤 젖어보기는 틀렸다. ‘심야 열차’는 아예 없다. 서울역에서 빠른 열차를 타면 두 시간 남짓, 길어봐야 4시간이면 도착하는 목포다. 서울역에서 저녁 늦게 출발하는 호남선 KTX를 탄다. 비장미가 느껴지도록 부르는 손인호의 <비 내리는 호남선>과는 달리 김수희의 <남행열차>는 경쾌한 노랫말과 리듬이 몸을 들썩이게 한다. 노래방 벽면에 소위 잘 팔리는 노래 100곡에 언제나 당당히 들어있는 노래가 <남행열차>다. 김수희의 비음이 오기처럼 솟구치는 탄성(彈性)과 8군 무대의 관록이 버무려진, 그녀의 대표곡 반열의 한 곡조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그때 만난 그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자꾸만 멀어지는 데/ 만날 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2절 생략) (정혜경 작사, 김진룡 작곡, 김수희 노래, 1991년, 희 레코드)

착착 감기는 말맛과 같은 마디 안에 단어를 촘촘하게 넣어 불러젖혀야 하는 긴박감이야말로 야구장 담장을 넘는 제1의 응원가로 자리매김하기에 손색이 없다. 청춘들에게 더 이상 트로트는 비감어린 노래로만 눈물에 갇히지 않는다. 남행열차의 분기는 서대전에서 시작된다.

철도에서마저도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호남 사람들에게 호남선이 배경이 된 이유는 의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남행열차의 종점으로는 무역선 오고 가는 수선스러운 부산항보다는 남쪽 한반도의 끝, 눈물로 얼룩진 목포항이 어쩐지 더 절절하게 와닿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오래전 <남행열차>가 있었다. 원조 이난영의 노래다.

끝없이 흔들리는 남행열차에/ 홍침을 베고 누워 눈물집니다/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까닭에/ 떠나를 가며 가엾다 내 청춘을 누구를 주나/ 세상이 다 모르는 내 가슴속에/ 눈물을 가득 싣고 떠나가건만/ 사랑하는 까닭에 사랑하는 까닭에 /버린 내 사랑 야속한 추억만이 괴롭습니다. <남행열차>,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난영 노래, 1939년, 오케레코드) 

굳이 비교해 보자면, 북행열차의 노래는 우선 제목부터 선이 굵고 비장하다. ‘타관 천리 안개벌판’, ‘고량(수수) 수풀 파도치는 언덕’,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지평선’이 나오는 가사의 스케일이 다르다. ‘고향에 못살 바엔 타향이 좋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떠나가는 <울리는 만주선>(조명암/손목인/황금심)은 평안남도 순천과 평안북도(자강도) 만포진을 연결하는 <만포선 천리길>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만주 봉천(심양)땅에서 멀리는 흑룡강성 국경도시 치치하얼에까지 이르게 된다. 사랑과 청춘과 추억을 눈물로 노래하는 이난영의 <남행열차>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한국의 강> 여행과는 비할 바 없이 느긋하다. 우선 콤팩트하게 접을 수 있는 브롬톤 자전거를 동행으로 정했다. 강의 발원지에서부터 종착지까지를 완주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엄숙함도, 부담감도 노래와 함께 하는 이 여행에는 없다. 우리의 대중가요가 생겨난 공간적 배경과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길이니까, 조금이라도 자전거 타기가 부담스러우면 시내버스를 탈 수도 있고, 시외버스에 몸을 실으면 된다. 어쩌면 대중가요를 찾아가는 느린 여행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목포역에 내려 가까운 찜질방에서 샤워라도 하고 눈을 잠깐 붙이고 나서,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해장국집에서 빈속을 달래다 보면 날이 밝아 온다. 새벽 어시장이 열리는 선창을 찾아 금새 바다로 돌아가도 좋을 듯싶은 생선을 구경하는 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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