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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아라천·굴포천(김포·인천·부천)② <끝>

한국의 강-아라천·굴포천(김포·인천·부천)② <끝>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7.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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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 경인운하, 배가 없다

‘아라뱃길’에 배가 없다. 아라뱃길은 경인운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루 두 세 차례 유람선만 떠다닐 뿐 컨테이너선의 위용을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운하의 시발에도 종점에도 제풀에 지쳐 색이 바래 버린 하역크레인이 졸고 있다. 굴포천 유역 부평의 홍수와 서해 바다 간·만조 사이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경인운하는 허풍스런 토목공사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울은 항구’라는 가슴 벅찬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속 좁은 행정도 한몫한다. 한강에서 서해까지 달려갔다 돌아오는 자전거 행렬마저 사람이 만든 이 자연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라뱃길은 정말 억울할 게 틀림없다.

호수공원과 청라국제도시의 꿈

청운교를 건너서 아라뱃길인천터미널로 가서 인증스탬프를 찍고 강 남쪽 길로 다시 원점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나는 청라신도시로 향한다. 아라뱃길에게서 막내 국가하천이란 타이틀을 빼앗아 간 굴포천으로 가기 위해서다. (현재는 15개 구간이 국가하천으로 추가 승격) 운하를 마저 파지 못한 천 년의 꿈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2014년에 신설한,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을 지난다. 골프장을 도심에 품고 있는 한가함은 이곳이 한때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국내 최대 규모인 청라호수공원은 호반에 어우러진 아파트와 선형을 조화롭게 배치한 인공조경의 완성을 보여준다. 수로에서 카약 강습을 하는 풍경은 다른 신도시 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운하 3.6km가 선물한 여유다. 청라의 가치는 국제라는 이름을 붙여서라기보다 공항철도와 인천공항으로 이어지는 쾌속 교통의 중간 진입을 허락함으로서 더 높아져 간다. 인구 10만 명을 넘어선 청라신도시는 거대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청라’라는 이름이 주는 상큼한 맛도 한몫한다. 이은상 시인의 노래 ‘동무생각’(思友)의 청라언덕은 봄의 교향악과 함께 어우러지지 않던가. 대구 동산병원 뒤에 있는 그 언덕은 ‘대구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리는 근대문화골목의 한 역사가 되었다. 댕댕이 넝쿨, 푸른 담쟁이는 붉은 벽돌로 쌓은 성당을 타고 오르는 청아한 기품의 이미지를 만든다. 이 청라신도시는 청천저수지의 ‘청(靑)’과 나원리의 ‘라(蘿)’가 합해진 이름이다. 충남 보령 성주산과 홍성 오서산으로 둘러싸인 청라면과 같은 작명이다. 

원통이재(圓通峴)를 넘지 못한 굴포 운하

청라호수공원을 지나 원창교에서 심곡천을 건너 인천 북항으로 내려오는 길, 오른쪽은 갯벌을 메운 산업단지답게 넓은 벌판이다. 북항 입구를 지나 인천교 펌프장 사거리 부근에서 보는 바다는 죽은 바다다. 바로 인천제철 뒤편이다. 화수부두의 짠물도 인천제철과 동국제강이 들어선 매립지 옆에서는 빈사 상태다. 동명목재를 비롯한 대형목재공장들이 남지나해를 지나 끌고 들어온 몇 아름 직경의 통나무를 바닷물에 오래도록 짠물 처리하던 풍경도 이제는 사라졌다. 바닷물은 가좌IC 근방까지 영향을 미쳤다. ‘가좌’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는 대개 오지여서 개발이 늦었다.

가재가 많이 산다는 마을, 가재울, 가재리 이런 자연부락 명도 한자로 유식하게 옮기면서 가좌가 되었다. 인천의 가좌도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온 동네라고 토박이들은 전한다.

이제 굴포천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열우물 사거리에서 부평으로 넘어가는 원통이 고갯길(백운역 부근)이 아라뱃길을 천년의 꿈이라고 말하는 내력과 맞닿아 있다. 부평 갈산동에서 김포 고촌읍 전호리 한강으로 흐르는 굴포천은 지극히 완만한 경사로 장마철이면 부평 삼산 들판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런 환경이 운하에는 제격이다. 게다가 한양행 삼남의 세곡선이 안흥량을 거쳐 경기만으로 들어와서도 마지막 관문인 염하의 손돌목을 통과하기가 어려웠다. 거센 조류와 암초 가득한 해로에서 수 없는 배들이 뒤집혀 조정의 곳간이 비게 될 형편이었다. 고려 때 최 이가 안남(인천 가좌동 일대)에 첫 굴착을 하여 산 너머 굴포천과 연결을 시도했다. 다시 수 백 년 흘러 조선 중종 때 김안로가 굴포천과 김포 고촌면 평야 지대 운하 연결은 성공했으나 원통현(인천 북구 부평3동 일대)을 넘지는 못했다. 400m 구간의 암석층은 곡괭이와 삽으로 파낼 수는 상대가 아니었다. 경인선 전철 백운역 근처다. 

조병창(造兵廠)의 희미한 기억, 산업화의 전진기지 부평 들판

굴포천변에 ‘부평역사박물관’이 있다. 자전거로 가는 굴포천 물줄기가 10km도 채 안 되니 그냥 지나치면 밋밋하다. 부평의 근대사는 ‘일본육군인천조병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평은 금속류 군수물자 생산 거점이었다. 일제 강점기 놋주발까지 애국충정(?)의 이름으로 헌납한 쇠붙이 공출의 집결지도 부평이었다. 경성과 연결하는 신작로의 이름이 국방도로였고, 인천과 영등포를 연결하기에 ‘인영도로’라고 불렸다. 이를 박정희 대통령 때 확장해서 만든 ‘경인고속도로’가 우리나라 ‘제1호 고속도로’다. 경부고속도로의 역사와는 또 다른 1호의 의미다. 인천시민들이 경인고속도로를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일제 조병창의 부평 건설은 간이역에 불과한 부평역을 병참기지 주요 역으로 승격시켰다. 광복 후에는 미 제24군단 예하의 군수기지사령부(ASCOM24)로 군수의 혈통이 이어졌다. 후방 군수기지 주둔 미군은 후생사업에도 힘써서 전쟁 직후 고아원 지원처럼 의미 있는 일로 이 땅에 기여하기도 했다. 산업화의 전진기지로서 부평은 ‘새나라자동차’와 ‘신진자동차’의 맥을 이으면서 일제 조립일망정 코로나를 등판시켜 오늘날 자동차 생산수출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 혈통은 대우자동차, GM코리아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부평을 인천이면서도 인천과 다른 자생 도시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굴포천, 지하에 묻힌 구정물의 침출

굴포천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부평구청에서야 햇빛을 본다. 여기저기 손쉽게 복개하여 길을 만들고, 주차장으로 활용한 탓이다. 생활하수는 익명의 어둠에 얹혀 스며들었다. 굴포천은 전형적으로 썩은 하천 냄새가 진동한다. 환경단체까지 서둘러서 국가하천 승격을 환영하는 이유가 바로 지자체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도랑 수준의 하천관리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굴포천 수량 자체가 워낙 적다는 점이다. 배후에 큰 산을 끼고 있지 않으니 물을 품을 골짜기가 있을 리 없다. 우선은 복개천을 뜯어 원래대로 노출 시켜야 한다. 평소에 청계천처럼 지하철 용천수든 재처리용수든 간에 물을 리필하지 않으면 부평과 부천은 굴포천의 악취와 동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굴포천 하류에서 운하를 만들어 물과 함께 사는 도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판타지의 도시 부천의 꿈도 사라져버렸다. 상동유수지와 오정물류단지를 연결해 레저는 물론, 경인운하와 물류를 묶는 계획은 ‘운하 악몽’이란 가위에 눌려 버렸다. 어쨌거나 2016년 굴포천은 국가하천의 막내자리를 어렵게 꿰차고 앉았다. 강둑을 점령한 가시박과 가마우지 같은 외래종들이 배를 내밀고 점령한 이 땅을 구해내기 바랄 뿐이다.

한 바퀴 돌아보니 달리 보인다.  아라뱃길과 굴포천

굴포천이 아라뱃길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등대공원이 있다. 운하가 소란스러워도 사람들은 자전거길로 쏟아져 들어온다. 거기 해방이 있기 때문이다. 노점의 막걸리 한잔이 위법이라는 걸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팍팍한 한 주일을 달려온 노독을 푼다. 헬멧을 쓴 채 ‘노가리를 안주 삼아 노가리를 깐다.’고 스스로 말한다. 명태가 알을 많이 낳아 그 새끼인 노가리가 거짓말이란 뜻을 지닌 속된 표현이 된 것이라고도 하지만, 노가리는 ‘논 사리(論 事理)’ 즉, ‘사리를 논 한다’는 말이 음운변천 과정에서 어쩌다 시궁창 말이 되었다.

여전히 아라뱃길은 18 km중 14km가 굴포천의 방수로로 사용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명한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도 많다. 저렇게 많은 자전거가 무리 지어 오가는데 자전거산업이 불황이라니. 그나마 코로나19로 여럿이 달려도 혼자 가는 이 ‘거리 두기’로 강둑길은 상종가다. 자전거는 친환경 홍보에만 써먹지 마시라. 자연을 정비한 강둑을 달려가는 내내 무거운 마음은 새 가슴 탓인가. 비난 없는, 불도저 앞에 드러눕지 않은 국책 사업이 있었던가. ‘서울이 항구’가 되는 가슴 벅찬 판타지가 정지화면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여의도항에서 덕적도행 연락선을 언제든지 타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굴포의 이름값이 그리 비싼가 보다. 미완의 강 ‘태안굴포운하’도 천년을 잠들어 있는 걸 보면 사람이 파낸 강은 천년을 기다린 값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 알 림 =-=

아라천(아라뱃길)을 마지막으로 한강 수계의 국가하천에 대한 강마을 여행을 완주하였습니다.
<한국의 강> 여행 연작은 우리나라 5대강 수계(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를 중심으로 주요한 강을 따라 금수강산을 돌아보는 대장정입니다. 다음 주(1127호)부터는 강마을 여행은 잠시 쉬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대중음악계에 불고 있는 트로트 열풍과 관련하여 전통가요를 중심으로 전국여행을 떠날 예정입니다. 그 시절 그 노래의 무대와 노래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대중가요의 골목길> 여행에도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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