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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7.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데 보태기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7.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데 보태기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7.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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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책 『따뜻한 식사』를 발간한 출판사 ‘출판 스튜디오 껴안음’의 대표 심채윤, 강하라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출판시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완고한 시스템이다. 마치 견고한 방어막으로 싸인 거대한 성처럼 느껴졌다.” (<시사IN>, 667호)

견고한 방어막이나 완고한 시스템이란, 온 오프라인 대형서점의 판매 전략과 출판유통구조와 각 출판사의 책 출고 관행 등을 말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각 출판사에서 서점에 입고되는 책의 가격을 들 수 있습니다. 대형서점과 작은 동네 책방에 출판사가 공급하는 책 가격이 다릅니다. 보통 동네 책방에는 도서 정가의 80-85%로 들어갑니다. 이 경우 동네 책방은 정가로 책을 팔면 책값의 15-20%를 이윤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이 이윤으로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죠.

그런데 대형 온라인서점은 신간도 책값의 10% 할인을 기본으로 하고 더러는 5% 추가 적립 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대형 온라인서점은 출판사에 책을 정가의 85% 가격으로 들여온다면 남는 이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형 온라인서점은 동네 책방보다 훨씬 싼 값에 책을 들여오는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노자의 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데 보태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부족한 데서 빼앗아 남는 데에 바친다.”

노자의 이야기에서 ‘사람의 도’ 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러잖아도 부족해서 쩔쩔매는 사람의 뭔가를 빼앗아 풍족하게 남아도는 사람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노자는 당연히 하늘의 도를 말합니다. 하늘의 도는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의  도, 곧 자연스러움을 말하는 것이죠.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데 보탠다.’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마치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의 도는 이 자연을 거스른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데서 빼앗아 남는 데에 바치니까요. 위에 예로 든 대형 온라인서점과 동네 책방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대형 온라인서점에 동네 책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책을 공급하는 것이 노자에 따르면 자연스럽지요. 그래야 남는 데서 덜어 부족한 데 보태주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네 사람의 삶이라는 겁니다. 출판시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 살이의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당연히 수많은 문제를 잉태합니다. 가장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불평등이죠. 부가 편중되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온갖 차별이 발생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힘들게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호화롭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아주 견고한 방어막을 쌓은 드높은 성벽을 허물어뜨릴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말이죠.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노자는 당연히 제시합니다.

“하고는 기대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는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노자의 해법입니다.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나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자식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부모가 있군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 뭔가를 다 하고는 자식에게 기대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하지, 자식에게 기대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노자는 이러한 부모의 모습을 ‘하늘의 자연스러운 도’라고 본 것이죠.

‘공을 이룬다.’는 것은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작은 공, 중간 공, 큰 공. 공의 종류도 다양하죠. 작게는 셋이 밥을 먹고 났을 때 남 먼저 앞치마를 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공을 이룬 것이죠. 크게는 한 마을을 구하거나 한 나라를 구하는 공도 있지요. 작거나 크거나 어쨌든 공을 이루고 나서는 하늘의 도를 가진 자는 그 공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노자는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그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노자도 이런 항변을 예상합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조건을 달지요. 그건 ‘도를 잘 닦은 이’가 가능한 일이다. 라고 말이죠.

여기서 나는 생각해 봅니다. ‘도를 잘 닦은 이’가 되는 일은 쉽지 않겠구나. 혼자라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함께 도를 닦는다면 좀 낫지 않을까? 함께 도를 닦는 일은 함께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런 시스템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겠고요.

어쨌든 ‘도를 잘 닦은 이’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곳곳에 살고 있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은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노자도덕경 77장 : 天之道(천지도)는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로다! 高者抑之(고자억지)하고 下者擧之(하자거지)하며 有餘者損之(유여자손지)하고 不足者補之(부족자보지)하나니라. 天之道(천지도)는 損有餘而補不足(손유여이보부족)이나 人之道則不然(인지도즉불연)하여 損不足以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하나니 孰能有餘以奉天下(숙능유여이봉천하)리오? 唯有道者(유유도자)이리라. 是以聖人(시이성인)은 爲而不恃(위이불시)하고 功成而不處(공성이불처)하니 其不欲見賢(기불욕견현)이니라.>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구나! 높은 곳은 누르고 낮은 곳은 들어주며 남는 곳은 덜고 부족한 곳은 보탠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데 보태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부족한 데서 빼앗아 남는 데에 바친다. 그러하니 사람 중에 누가 과연 남는 것을 덜어 세상에 바칠 수 있으리오? 오직 도를 잘 닦은 이가 가능하리라. 그리하여 성인은 하고는 기대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는 머물지 않으니 스스로 어진 일 한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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