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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아라천·굴포천(김포·인천·부천)①

한국의 강-아라천·굴포천(김포·인천·부천)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7.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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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 경인운하, 배가 없다

‘아라뱃길’에 배가 없다. 아라뱃길은 경인운하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루 두 세 차례 유람선만 떠다닐 뿐 컨테이너선의 위용을 구경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운하의 시발에도 종점에도 제풀에 지쳐 색이 바래 버린 하역크레인이 졸고 있다. 굴포천 유역 부평의 홍수와 서해 바다 간·만조 사이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경인운하는 허풍스런 토목공사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서울은 항구’라는 가슴 벅찬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속 좁은 행정도 한몫한다. 한강에서 서해까지 달려갔다 돌아오는 자전거 행렬마저 사람이 만든 이 자연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아라뱃길은 정말 억울할 게 틀림없다.

아라뱃길, 짧지만 긴 강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서울을 떠난 자전거 행렬은 아라뱃길의 시점으로 몰려든다. 좀 더 원족을 나서자면 눈 밝은 사람은 한강 철책을 따라 하구 쪽으로 나아가겠지만 대부분이 편한 아라뱃길로 접어든다. 20km도 채 못 되는 아라뱃길은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한강처럼 아득하게 강 건너편이 보이는, 광대한 하구의 고립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인공의 물길답게 건조하지만 단정하다. 한강처럼 어깨를 부딪쳐야 할 정도로 은륜(銀輪)의 파도에 시달릴 일도 없다. 그저 다리 근육을 제대로 시험할 수 있는 직주로의 전개가 장쾌하다.

강둑으로 몰려나온 사람들은 이 풍경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아라뱃길, 경인운하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 강물이 없다지만 바다와 강의 충돌이 정치의 셈법이 더해져 와류를 이루는 대명사가 아라뱃길이다. 치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과 헛돈 쓴 거대한 토목공사라는 대립의 사잇길을 자전거는 시원한 풍경에 대한 경탄의 힘으로 달린다. 자전거에 속도가 붙을수록 이 무거운 주제는 더 빨리 달아난다. 오래도록 아껴 두었던 국가하천의 ‘쫑말이’ 아라천(아라뱃길)에 푹 빠져 서해로 향한다.

간첩들이 등대로 삼은 계양산 언저리

서울외곽순환도로가 가로지르는 귤현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강은 기역자로 꼬부라진다. 계양산의 위용이 강 건너에 듬직하다. 계양산은 산다운 산이 귀한 인천에서 강화도 마니산을 빼고 제일 높다. 무장간첩들이 한강의 조수(潮水)를 이용해 침투할 때, 목측(目測)으로 방향을 어림잡는 바로 그 먼 산이다. 인천사람들이 해맞이 행사를 열고, 반딧불이 축제를 어렵게라도 열 정도로 아끼는 산이니 꼭대기에 들어선 국방부 송신탑을 민간에 임대 해주고 있다고 줄기차게 항의하는 환경단체의 입장 또한 전혀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강가에 제법 큰 누각이 나타난다. 전통의 정원까지 낮은 기와 담장 안에 자리 잡은 모습은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았지만 멋진 설계다. 미려한 금강송에, 현판조차 붙이지 못한 누각이 갓 면도를 마친 청년의 파르스름한 구레나룻터 같다. 사람들 말마따나 “뱃길 있지, 공항철도 다니지, 영종대교 고속도로 지나지, 김포공항 비행기까지... 여기야 말로 교통의 종합전시장이 아닌가.”는 말이 허풍이 아니다.

계양대교 아래 ‘황어장터’가 첫 번째 휴식공간이다. 짧은 구간에 쉴 만한 간격은 아니지만 여름날 다리 밑 잠깐 정차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황어라는 이름이 새롭다. 모천회귀 어종의 대명사는 연어이지만 황어도 주로 바다에서 살다 알을 낳기 위해 강으로 돌아오는 잉어과 물고기다. 3월에나 잠깐 잡히는 물고기라 회와 매운탕으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서해를 황해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황어는 서해의 물고기라 하고 싶겠지만 섬진강에서도, 울진의 왕피천에서도 잡히니 아쉬운 설정이다. 비늘 빛깔이 순황색을 띠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어공원에서 목상교에 이르는 구간에 아라뱃길의 정취를 이국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풍광이 담겨 있다. 운하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현대 토목의 기술적 가치는 바로 이렇게 산허리를 정교하게 절단한 물길에 투영된다. 물길도 자전거길도 해발의 기준점에 맞혀져 있으니 아치형 목상교는 꽃메산 하늘에 걸려 상상을 자극한다. 차백성 세계자전거 여행가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 풍경화에 대한 진가는 단순한 프레임에서 절정을 이룬다. 저 물길 너머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입소문으로, 인터넷으로 세계의 자전거여행자들이 기어이 아라뱃길의 끄트머리 서해갑문에까지 가서 국토 종주 대장정을 시작하는 이유도 서해에서 남해까지라는 바다의 시원과 종착에 근거한다. 

수도권 쓰레기 매립과 울창한 수목원

시천교를 지나고 나면 이내 ‘수도권쓰레기매립단지’가 나타난다.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쓰레기를 연상하기 어려운 숲길이다. 난지도를 해발 100m에 가까운 산으로 만들고 난 서울의 쓰레기는 갈 곳을 찾아야 했다. 결국은 바다 쪽이다. 그래도 바다가 그 넓은 품만큼이나 관대하다.  쓰레기 처리를 둘러싼 서울과 인천의 갈등은 한때 반입이 중단되는 지경까지 갈 만큼 벼랑에 서기도 했다. 인천이 반발할 명분도 있다. 생활 쓰레기의 생산지는 서울이 42%, 경기 39%, 인천이 19%다. 경기도도 할 말은 있다. “원래 검단 땅이 김포 땅 아니더냐. 인천에 준 것인데 무슨 소리냐.” 싸우는 순간에도 쓰레기는 쌓인다. 그래도 쓰레기는 묻어야 한다. 배출된 쓰레기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어떻게 줄이느냐가 문제다. 제1매립장에서 제4매립장까지 최장 55년을 기준으로 만든 쓰레기매립장 중 제1, 제2 매립장은 임무 완료했다. 제3매립장도 2025년이 완료예정이니 수명이 다해 간다. 다행히 분리수거 등 쓰레기에 대한 국민 인식이 개선되면서 당초 2022년이면 끝날 거라던 제3 매립장 예상매립기한이 2044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시한폭탄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쓰레기는 옮겨진다. 하역→펼침→다짐→소독→복토 5단계를 거쳐서 세월을 기다린다. 제1매립장은 이제 공원으로 변했고 제2매립장은 공원화작업중이다. 난지도 쓰레기 더미의 하늘공원 변신은 성공사례로 적용되었다. ‘드림파크야생화단지’와 퍼블릭 ‘드림파크 골프장’이 들어섰다. 아마도 제4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레기 차량 행렬이 방향을 바꿀 때쯤이면 울창한 숲으로 변한 드림 지구는 쓰레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자전거길은 조금의 높낮이도 느껴지지 않는 평탄 연속이다. 강폭은 바다를 닮아가기 시작해서일까 펑퍼짐해져 푸근하다. 가는 세월이 아쉬운 매미 소리가 드세다. 자세히 들어보니 ‘맴~맴’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세~월 세~월’하며 우는 게 아닌가. 어찌 들어보면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88 서울올림픽 개최지를 선언하면서 서울을 ‘쎄~울’로 외치던 소리 같기도 하고.

자전거길 한가운데 서 있는 금강송, 중앙분리대를 소나무로 만들어낸 길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너무나 짧게 끝나 아쉽다. 아예 공간이 넉넉한 강둑엔 자전거만을 위한 녹색중앙분리대를 선물할 용의는 없는가. 너무 사치스런 드림(dream), 한가한 백일몽을 꾸고 있는 것일까.

경인운하 인천항, 역시 항구는 비어있다. 대형크레인은 붉은빛 광명단 도색이 바래 져 심해를 닮은 가을 하늘 코발트블루와 대조를 이룬다. 강 건너 컨테이너 대열도 단수가 낮아 보인다. 외국으로 다시 팔려가는 외제중고차만이 야적장에서 기약 없이 졸고 있을 뿐이다. 한강에서 아라뱃길을 달려오는 동안 배는 한 척도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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