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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임진강(연천·파주)②

한국의 강-임진강(연천·파주)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7.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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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강, 유빙도 얼어붙은 임진강

임진강이 이렇게 긴 강인 줄 몰랐다. 273km,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나라 9번째인 강, 남한 구간이 90km 남짓하니 2/3가 북녘땅에 흐른다. 분단의 상징 임진강은 기어이 건너야 할 강이다.  DMZ를 한반도의 대동맥으로 만들자는 구호도, 임진강 적벽 너머에 국제평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해마다 남북의 신년사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통일을 말한다. 이 겨울, 흐르지 못하는 강이 유빙으로 솟아올라 분단의 충돌로 얼어붙어 있다. 그래도 강바닥엔 봄마중 물이 흐르리라.

=조용필과 장파리 미군클럽 <라스트찬스>

자장사거리에서 자하리로 접어들면 질주하는 차량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 강가에 다가갈 수 있다. 리비교가 있는 장파4거리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장마루촌은 음식촌으로 변해 있다. 자전거를 소재로 조형물을 설치한 조그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라스트찬스>라는 간판이 도드라진다. 참게를 듬뿍 넣고 잡어탕을 끓여주는 매운탕 집 주인은 그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휴전 이후에 생겨나 70년대 초 주한미군이 대거 철수할 때까지 날리던 미군클럽이었다. 머나먼 이국땅에 파병된 미군들이 회포를 풀고 시름을 달래주던 흔적이 달리는 백마를 그린 벽화로 여전히 남아 있다. 클럽의 여급들과 양색시들이 거주하던 2층집은 세금폭탄을 맞을 까봐 겁먹은 주인이 잽싸게 허물어버려 흔적도 없다.  

=솟구치며 얼어붙은 유빙에 사로 잡히다

얼어붙은 임진강과 눈 덮인 임진강 적벽 풍경이 간절해 겨울로 잡은 여정이다. 수도권에서는 눈이 귀했으나 서부전선에 내린 눈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영농을 위해 철망문이 열려있는 리비교 아래 강둑길로 내려섰다. 길이 끝까지 연결되어 있으리란 확신은 없지만 임진강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설렘도 크다. 강은 거대한 빙판이다. 매끈한 빙판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유빙이 얼어붙은 난장(亂場)이다. 적어도 남한 땅에서 임진강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겨울강의 백미다. 얼어붙은 강물은 서해의 밀물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에 더는 버틸 힘이 없어진 얼음판이 고싸움처럼 들고 일어나 뒤엉겨 붙은 채 얼어버린 채로다. 날이 조금이라도 푹해지면 유빙은 기지개를 펴느라 ‘쩡 쩡’ 갈라져 신음소리를 낼 판이다. 자칫하면 미끄러지기 쉬운 강둑길인데도 겨울 강에 취했다. 지천에 막혀 되돌아 나오면서도 허비한 여정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은 쉬이 만날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임진나루와 율곡의 화석정

운천리 고갯마루에 올라서기 전에 화석정이 있다. 남진하던 임진강이 절벽에 부딪혀 회절하며 강물을 온몸으로 안는 자리다. 560년 된 느티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옛 1번 국도 터의 영화를, 의주까지 쫓겨 몽진하던 선조의 처량한 모습도, 남침하던 북의 탱크 행렬까지도.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 속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라는 말이 실감 난다. 마을 이름도 율곡리다. 조선조 최고의 학자인 율곡이 태를 묻고, 경세를 논하며 만년을 보낸 곳이니 자부심이 느껴질 만하다. 그러나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일까 신사임당의 명성 탓일까 율곡은 강릉 땅에서 이름값이 더 큰듯하다. 이미지란 그런 것이다.

=임진각과 통일로 가는 다리

임진각에 서면 대한민국이 섬나라인 게 실감 난다.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이 나라를 벗어날 수 없는 섬나라. 휴전선은 거대한 해협(海峽)이다. 좌로 가면 ‘자유의 다리’고, 직진하면 ‘통일대교’다. ‘평양’이라는 이정표가 공허하다. 바리케이드가 막아서서 U-턴 한다. 1,000여 마리의 소 떼를 끌고 당당히 고향 땅으로 향하던 정주영 할아버지의 기개가 새삼 존경스럽다. 평화의 공원은 겨울이라 쓸쓸하나 부서질 듯 서 있는 녹슨 철마 앞에는 중국 관광객들의 성조가 드높다. 날이 따뜻해지면 <DMZ 자전거 타기>가 시작된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통제된 강둑길의 속살을 흔쾌히 내어 줄 게다. 임진각 통문에서 통일대교를 거쳐 분단의 섬 초평도를 바라보면서 64초소까지 돌아오는 민통선 안 17.2km다. 

임진각에서 반구정(伴鷗亭)까지는 자전거길이 일부러 나 있다. 이쯤 해서는 온통 간판이 매운탕이고, 참게장이다. 황복은 구색이고 여전히 시가(市價)다. 반구정은 조선 세종조의 명재상 황희가 만년을 보낸 경치 좋은 영당(影堂)이다. 최근 황희에 관한 평전들이 눈길을 끈다. 그가 행정과 외교의 달인이자 경청의 명수인 것은 맞지만 청백리 황희는 과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뇌물 수수 건에다 아들, 사위의 처신 문제까지 그도 평범한 인간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이 가는 한 시대의 재상이다.

=‘동화경모공원’과 ‘헤이리 마을’

사목리에서 성동IC로 넘어가는 길은 자유로가 가로막아서 강을 보기가 어렵다. 낙하IC부터는 오금리 쪽으로 넓은 논이 펼쳐져 있지만 토끼굴에서 병사들이 막는다. 그나마 자유로를 따라가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길은 한가하다. 한때는 대북방송의 날카로운 스피커 소리가 이곳이 북한이 코앞에 있다는 걸 말해주었는데 이젠 자유로의 소음만 끈질기다.

임진강의 종점인 성동IC 근처에 오면 이름마저 탄현(숯고개)이라 붙었듯이 산세가 제대로 한번 뭉쳐 마침표를 찍는다. 여기에 분단의 한숨은 ‘통일동산’을 만들었다. 평생을 두고 온 고향을 그리다 피눈물로 생을 마감한 그야말로 ‘이북사람들’(실향민이라면 느낌이 덜하다)의 안식처 ‘동화경모공원’이 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혼조차도 ‘고향 바라기’를 하는 비탄의 언덕에 겨울바람이 세차다. ‘탄현산업단지’를 넘어서면 ‘파주음식마을’이 산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거대한 모텔촌을 이룬 욕망의 정거장이 산자락에 들어서고, 때로는 염치없이 큰길가로 나와 반짝이를 흔든다. 한글전용 속에 자란 ‘한자문맹세대’가 영어가 권력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경기영어마을’은 유행이 지나가자 간판을 바꿔 달고 비틀거리며 꾸려가고 있다. 인간의 욕망 뒤에 따라오는 공허는 예술과 사색의 여백으로 껴안아야 삭혀진다. ‘헤이리예술마을’이 그나마 큰 위안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하안(河岸) 단애(斷崖) 위에 솟아올라 북녘을 응시한다. 얼마나 외웠던 제원(諸元)인가. “김포군 하성면 시암리에서 북의 개풍군 관산포까지는 물 빠지면 1.5km에 불과한 거리입니다”라고. 통일전망대는 ‘자전거 사절’이다. 빤히 보이는 북녘 땅 ‘다시보기’를 포기한다. 간첩들이 한강을 건너면서 목표물로 삼았다는, 유서 깊은 심학산이나 바라보며 억지 홀대에 투덜거릴 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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