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자수첩- 대한민국은 짐승의 나라인가?

기자수첩- 대한민국은 짐승의 나라인가?

  • 기자명 이장호 기자
  • 입력 2020.07.13 10:45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상적 폭력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필요하다

이장호

직업상 시청이나 읍면 사무소 등 관공서를 드나들다가 가끔 마주치는 불편한 일들이 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일부 주민은 공무원이나 심지어 시의원에게 자신과 관련한 일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범위를 넘어 상대방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공무원의 행정이나 시의원의 시정 활동이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을 때 누구나 이에 항변할 수 있으나, 많은 경우 사실관계에 대한 석명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동을 보일 때 우리는 이것을 ‘폭력’이라고 부른다.

본인이야 억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항변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순한 주장을 넘어 과도한 행동을 하는 것도 엄연한 폭력이다. 더욱이 공직자에게 큰소리를 치며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지역사회에서 일정한 사회적 직책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읍면 사무소나 시의회에 가서 면장이나 공무원, 시의원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도 이런 행동이 반복되는 것은 소위 ‘지역사회 유지’라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제대로 제재를 가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막상 험악한 일을 당한 당사자에게 물어도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그 양반 원래 그래요. 별것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정말 원래 그런 사람의 별것 아닌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을 한 사람뿐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의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양쪽 모두 ‘폭력의 방관자’가 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23살의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문명사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함으로부터 자신의 생을 끊어야 했던 故 최숙현 선수의 일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경주시나 경주시체육회,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대한체육회가 처음 최숙현 선수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고 엄중히 처리했으면 이런 비극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에 아주 작은 폭력이 발생했을 때 ‘원래 운동선수 훈련은 그런 것이니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는 문명사회의 보편적 인권 의식이 있었으면, 최 선수의 잔혹한 생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군사독재와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대한민국이 권력의 폭압을 끊어내고, 민주국가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강력한 폭력 투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담은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가 더 위대한 힘을 발휘한 결과다.

식민시대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이뤄낸 간디는 ‘폭력은 짐승의 법칙이고, 비폭력은 인간의 법칙’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폭력을 ‘그 정도는 별것 아닌 일’로 보는 폭력의 방관자가 많아지면 대한민국은 짐승의 나라가 될 것이고, ‘절대 일어나면 안되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대한민국은 사람의 나라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