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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여주사람 최창석 도예가“천년 역사의 여주 도자기 자부심 지켜야 ”

33년간 도자기 만들기에 전념하며, 전통과 현대, 미래를 잇는 작품을 위한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여주시 가남읍 바우가마 최창석 도예가를 만나 경기도 여주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지역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에 고민하는 최창석 도예가를 통해 천년의 역사를 가진 여주도자기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인터뷰는 유튜브 <여주신문TV>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며, 지면의 발언 내용은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장호 오늘은 가남읍 안금리에서 도예공방 바우가마를 운영하고 있는 최창석 도예가를 만났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최창석 안녕하십니까?

=이장호 먼저 여주신문 독자와 시청자들을 위해서 본인소개를 직접 해주시지요.

=최창석 저는 도자기 만든지 33년차 되고 있고요. 가남 안금리에서 작업한지는 22년 되었습니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30년 넘도록 여주에서만 쭉 도자공부를 하고 수업을 하고 가남에서 뿌리내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장호 처음 도자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최창석 제가 1987년 27살 되던 해 한국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요동치던 해였는데 그때 여주에 있는 저희들도 마찬가지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여주에서 문화운동을 해봐야겠다 해서 친구들과 함께 풍물 보급운동을 하기 시작하다보니깐 그런 일들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한 상태가 아니어서 어렵더라고요. 

그 당시 여주에 도자기가 굉장히 호황이었어요.  선배님들 요장에 찾아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아르바이트 식으로 도자기를 하다가 싸리산에 있는 어떤 형님을 선배님과 같이 도자기에 관한 깊은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어요. 깊은 대화 속에서 저도 도자기를 통해서도 도자문화 운동도 제가 해야 할 중요한 분야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점차 도자기에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상태가 됐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도자기를 제대로 공부해서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도자기의 수업을 하게 된 상태가 된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도자기에 발을 딛게 된 계기였어요.

=이장호 아르바이트가 본업이 된 경우네요. 저도 그런 경우였어요.(함께 웃음)

공방이름을 바우가마라고 했을 때 전통적인 바위나 이런 걸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를 생각하게 되는데 둘 중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최창석 저는 사실 바우라는 닉네임(애칭)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만들어준 거예요. 그때는 아들이 무병장수하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흔히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바우를 닉네임(애칭)을 불렀던 것 같은데 어린 시절에는 그게 싫었어요. 어디 시장에 가다가도 어른들이 야~ 바우야 이런 게 싫었는데 바우야~ 바우야~ 불리던 이름이 제가 도자기를 하게 되고 호를 근사하게 짓는 사람이 많지만 나와 연관된 바우라는 이름은 생각해 볼수록 좋은 의미다 싶기도 하고요. 도자기도 사실 어떻게 보면 흙을 바우로 돌리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불에 구우면 그게 바우처럼 되지 않습니까? 단단하게... 용암이 굳어진 게 바우이기도 하고요. 그런저런 생각 끝에 바우를 만드는 가마 그런 의미도 될 수도 있고 바우가 운영하는 가마의 의미도 될 수도 있고 해서 여러 가지 중위적인 해석이 가능하겠다 싶어서 바우가마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장호 결국 작명은 부모님이 해주신 거네요.

=최창석 그렇죠.  그렇죠.

=이장호 요즘 특히 문화예술 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곤란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오픈스튜디오 하셨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최창석 일단 말씀하신 부분도 오픈스튜디오와 관련된 부분도 있지만 도자기 문화예술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예술가들이 굉장히 많죠. 특히 작년 가을에 돼지열병이 9월 하순쯤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면서 수도권의 모든 행사가 다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겨울철에는 아시다시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엄습한 상태 아닙니까? 문화예술을 통해서 생계를 만들어나가고 살아나갈 사람들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큰 어려움에 빠져있어요. 어려움이란 표현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그런 지경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주변에 보면 수십 년씩 이일을 해 오시는 분들이 다른 어떤 생계를 찾아서 떠나시는 걸 보면서 깊은 상심을 겪기도 하고 그랬어요. 저도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평생 해오던 도자기를 접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헤매 도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오픈스튜디오는 올해가 5년째인데요. 2015년부터 쭉 진행을 하다가 2018년 한해를 건너뛰었어요. 그러다보니깐 올해가 5회가 되었는데 연례행사로 진행을 해오던 이 행사를 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진행을 하게 되었어요. 도자문화라는 것을 사람들은 결과물인 도자기만 보거든요. 도자기 만드는 사람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그 지점도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아 이렇게 해서 도자기가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것까지 알게 되는 좀 더 도자문화에 근원적인 모습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기능을 하는 그런 행사가 중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도자문화라고 하는 고급문화를 그 사람들한테 전달, 대중화, 보급하는 의미를 같이 누릴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때그때 조금씩 주제를 달리하기도 했어요. 장작 가마를 운영하고 있는데 장작 가마를 때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그 사람들이 장작개비를 던져보는 체험도 해볼 수 있었고 그렇게 진행한 해도 있었고 올해 같은 경우는 코로나19가 인간의 모든 것들을 규제하는 상황 또 우리가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형태이긴 한데 코로나19에 그냥 지는 걸로 우리 공동체로 끝날 수는 없어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다 싶어서 도예가인 내가 코로나19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픈스튜디오에 참여해서 오시는 많은 분들이 저와 더불어서 흙으로 만든 토장승을 만들어서 쭉 세워보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우리자신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다잡아보는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어서 올해는 오픈스튜디오는 진행했어요.

=이장호 올해 도자장승 만드는 일이 어떠셨나요?

=최창석 재미있었어요. 제가 만든 장승이 밖에 쭉 서있으니깐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흙을 도자기 만드는 사람처럼 흙을 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거든요. 흙을 만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멈칫거리다가 막상 손을 대보면 손에 끈적하고 미끌미끌한 흙이 만져지는 순간부터는 자기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죠. 자기만의 형태, 자기만의 장승, 험상궂은 얼굴로 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을 가진 얼굴로 만들어져 가는데 사실 도자기 흙을 만져보면 사람 살결만지는 것 같거든요. 부드럽고. 그것을 만지면서 어떤 아기들은 흙은 몇 시간 동안 계속 흙장난을 하면서 놀곤 하는데 그런 모습이 굉장히 좋은 거거든요. 저는 그런 것도 인간의 심성에 미치는 좋은 영향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자기 만들어보는 행사 우리가 도자기 축제하면 보통 물레체험 같은 경우는 많이 하는데 물론 겉모양의 원통형의 기다란 기본 형태는 제가 물레로 잡아들이지만 그걸 가지고 형상을 만들고 코를 만들기 위해서 일그러뜨리고 밖에로 내고 눈을 만들기 위해서 구멍을 뚫거나 그런 걸 표현하다 보면 말랑말랑한 흙은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계속 만지게 되니깐 정서에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 부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장호 요즘 관심가지고 있는 분야, 작품 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창석 요즈음 제가 천착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회령자기입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내려왔던 여진족들의 도자문화가 있었던 곳이거든요. 회령자기는 조선의 문화와 밀접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여진족들이 만들어도 결국 조선의 문화와 깊은 습합 속에서 펼쳐져왔던 문화양식이기 때문에 조선의 도자문화라고해도 맞는 말이죠. 회령자기의 전통이나 이런 것들이 지금은 회령에 가본적은 없고 회령에서 도자작업이 이뤄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남쪽에 있는 많은 작가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회령자기를 정작 일본인이라든가 해외에 도자예술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에서 정작 우리 문화인데도 많이 외면해 왔던 바탕이 있어요. 거기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굉장히 호쾌한 표현양식이 많습니다. 보라색 볏짚재가 만들어내는 보라색 향연이랄까 그런 것들이 좋아보여서 거기에 많이 심취해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 몇 년 동안은 회령자기에 빠져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장호 현실적으로 외국작가들이 우리 도자기에 관심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최창석 어떻게 보면 우리의 내부로부터 우리의 그 장점들을 키우고 키워서 세계화 시키는 그런 훈련에 익숙지 못하고 제3자를 통해서 우리의 문화를 평가받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형광등처럼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 반성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장점이 이거 말고도 굉장히 많을 거예요.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있는 알맹이들 우리가 깊은 탐구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하는 많은 반성도 갖게 합니다.

=이장호 전통예술분야 중에서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특히나 일상적인 생활자기 같은 경우 일반유통업체를 통해서 유통이 된다고 하지만 저희가 흔히 작품이라고 부르는 작업 하시는 분들은 그런 유통 경로가 별로 없고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도자기를 비롯한 문화예술 작품들이 소비자화하기 위해서 특히 도자기 중심으로 말씀드린다면 여주와 같은 경우 한국도자재단도 있고 여주시 도예를 전담하는 부서도 있고 한데 어떠한 방법론이 필요할까 그런 생각을 듣고 싶어요.

=최창석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도자기 같은 경우에 저처럼 어렵게 꾸려나갈 수밖에 없는 이런 예술가들이 살아가기에는 험난한 사회입니다. 한국사회는 묘하게도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데 있어서는 그렇게 밝지가 않아요.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습관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요. 사회분위기 영향이 큰데 국영수에 모든 것이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 아닙니까? 인문학, 문화예술 이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매개하는 것 들일 텐데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등한시하면서 기능적인 공부들에 많이 치중하는 사회분위기 예술가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드는 지형 아닌가 싶어요.

문화선진국이라는 영국이라든가 일본만하더라도 도자기 문화 쪽에서 대중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나라인데, 그런 나라들의 보이고 있는 대중들의 모습 도자문화 좀 부럽죠. 우리도 20년 30년 전에 비해서는 그런 인식이 많이 높아져가고 있는데 아직도 많이 어렸습니다. 특히나 예술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과정들이 있죠. 대중들과 접점을 찾아주게 만드는 그런 것들 즉 쇼핑몰이라든지 아트페어 이런 것들이 많이 부족해요. 그런 것들을 좀 더 넓게 만들어가는 것 근원적으로도 대중들로 하여금 문화예술 인문학적 소양들을 더 높이 쳐주는 사회 그런 것을 만들어가는 노력들이 같이 진행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주는 더구나 우리 남북한 통틀어서 여주만큼 도자문화가 깊이 스며있는 곳이 많이 않거든요. 조선시대에는 광주 분원 중심으로 도자생산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도자기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 보면 여주는 천년이 넘는 도자기 역사를 가지고 있고요. 도자산업의 전초기지로써 여주가 얼마나 대단한 지역 이였는지는 강천에 있는 부평, 북내 중암리, 도자유적들 그 산업의 흔적들 수 백기에 달하는 가마터들이 존재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대단한곳인지 알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을 여주에서 남북한을 통틀어서 대단한 도자문화를 간직한 곳인데 여주는 아직도 도자 관련한 박물관 하나 없고, 도자사도 여주중심으로 펴낸 책이 한권도 없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의 선조들의 이룩해 놓은 빛나는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 나가고 발전 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 때가 많습니다. 많은 관계요로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장호 어찌되었건 사실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 농사만 잘 지울 수 있도록 하게하고 여주로 이야기하면 도자기 만드는 분들은 도자기를 잘 만들 수 있도록 풍토를 조성하는 것... 일정부분은 행정이나 이런 부분의 몫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여주시장님이나 여주시 공무원들이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또 우수한 여주도자기를 대한민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많은 판로를 개척하는데 행정에서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평소 그런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셨던 것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창석 지금은 그야말로 시민이 역사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깐 시민의 편익을 위해서 모든 노력이 집중해야 하는 그런 시대 아니겠습니까? 여주시 행정에 해야 할 일들은 시민들의 삶을 하나하나 보듬어 안아야 일들이겠고요. 여주는 여주를 상징하는 많은 산업들이 있지만은 그중에서 도예산업의 의미는 존재론적으로 보나 의미론적으로 보나 굉장히 크거든요 도자산업에 여러 가지 어려움 난제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해소해 나가기 위한 시행정의 노력은 제가 볼 땐 너무 부족한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기자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도자기 만드는 사람은 도자기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만 만들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지금은 저희가 저한 상황은 저희가 만들고 이것들을 어떻게 팔아서 생계를 만들 것인가 하는 그런 것까지 각개전투 하듯이 전부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거든요.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작업에 올인하는 삶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여주시는 시 행정뿐만 아니라 도자재단이라는 도자기를 서포트(지원)해야 하는 조직들까지 다 해당한다고 보지만 예술행정, 지방행정들이 해야 할일이 우리 여주의 도자산업에 처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 내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자기하는 사람들이 곧 자원인데 그 사람들이 여주를 등지고 떠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업내용이 아주 우수한 사람일수록 빨리 여주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여주가 그 사람들을 등 떠미는 모습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여주의 자산들인데 그 사람들을 잃으면 여주는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이웃동네 이천으로 가길 원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천과 여주의 행정의 깊은 차이가 있어요. 그 골을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걸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천에서는 도자기를 전공한 사람,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들이 시 행정에 깊이 관여하면서 도자산업을 서포트(지원)하기 위해 기획을 하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여주는 그런 일들을 해나가는 곳이 도예팀이 있지만 순환보직 공무원들로서는 역부족입니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도자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자리, 일들을 진행해 나가야해요. 여주에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일의 체계 안으로 불러들여서 도자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앉혀서 그 일을 진행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런 것들이 안 된 상태에서 이천과 여주가 격차가 벌어지는 도자산업의 중심지가 이천인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 괴로워요. 여주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여주가 천년 도자기 고장으로 다시 제 갈 길을 잘 잡아서 갈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장호 제가 며칠 전에 여주가 좋아서 여주로 오신 예술 하시는 한분을 봤는데요. 문득 걱정부터 드네요. 그분도 몇 년 지나 고민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여주시민들께 도자기를 하시는 입장에서 도자기를 어떻게 받아드렸으면 좋겠다는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창석 여주시민들에게 당부를 드린다기 보다는 저희가 여주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주시민들이야말로 우리 공동체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장본인들이기 때문에 그분들을 대상화해서 바라볼 수는 없고요. 우리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서 시민들에게 적극 다가가는 모습을 우리가 스스로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예인들이 시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어떤 생각을 내고 실천방안들을 내고 함께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장호 오늘은 도예가 최창석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창석 감사합니다.

/정리 박헤선 기자

 

이장호 기자  yeojup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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