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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5. 내 친구의 인법(仁法)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5. 내 친구의 인법(仁法)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7.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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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세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풉니다. 맛난 음식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친구가 다소 슬픈 얼굴로 말합니다.

“내 호를 월천에서 월백으로 바꿨어.”

“에구, 저런.”

두 친구가 동시에 응답합니다. 월천과 월백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지요. 삼 년 전에 이렇게 말했거든요.

‘한 달에 천만 원을 벌겠다는 각오로 호를 <월천>이라 짓겠어. 앞으로 날 보면 그렇게 불러줘.’

친구들은 당연히 그렇게 불러줬죠. 그런데 삼 년이 지난 지금 <월백>으로 바꾼다니, 안타깝지 뭡니까. 호기가 십 분의 일로 줄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난 좋은 태도라고 봐. 내 처지를 정확하게 알고, 차근차근 다시 밟아 나가는 것도 좋지.”

내가 위로조로 말하자 ‘월백’이 피식 웃기만 하는데, 다른 친구가 말했습니다.

“하하. 마침 나도 호를 하나 새로 지었어. <일일인>이라고 해.”

“일일인?”

“그래. 한자로 쓰면 <日一仁>이지. 하루에 한 가지씩은 인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호 속에 있지.”

“호, 그래? 일일인이라, 특이하네. 근데 발음이 매끄럽진 않군.”

월백이 나름대로 의견을 말하고, 나도 한마디 했죠.

“그 실천하겠다는 ‘인’이 뭐야?”

“좋은 질문!”

일일인이 손뼉을 딱 치면서 나를 칭찬한 뒤 자기가 준비해 둔 말을 좌악 늘어놓았습니다. 줄줄줄 내놓는 말을 보니, 묻지 않았으면 엄청 섭섭할 뻔 했습니다. 그 말은 이랬어요.

“내가 실천하려는 ‘인’이란 이런 거야. 교묘한 말을 하거나 낯빛을 꾸미는 짓거리 하지 않기, 할 말이 있어도 참고 다른 사람 말을 들어주기, 내 욕망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기인데 예란 검소이며 대상 ․ 장소 ․ 시간에 따라 적절한 말과 행동을 뜻하지.”

일일인이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좀 많아서 숨 좀 쉬느라 멈췄네. 다시 시작하지. 내가 하기 싫은 건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지 않기, 내가 서고 싶은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워주기,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에 다른 사람도 도달시켜주기, 정직하기, 하나로 꿰뚫는 통찰을 가지기 위해 날마다 공부하고 사색하기,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기, 마지막으로 타자를 사랑하기인데 타자를 사랑한다는 건 말하자면 타자의 욕망, 타자의 상황, 타자의 입장을 알아주기라고 할 수 있지. 다 아는 이야기지?”

“딱 열 개로군.”

월백이 킥킥 웃는 동안 나는 이렇게 말했죠.

“말은 쉬운데 정말 실천이 어려운 것들이로군.”

“그래서 내가 호로 정했지 뭔가. 이 열 개를 하루에 다 실천해도 좋지만 적어도 한 개는 꼭 실천하겠다, 이런 각오인 셈이지.”

“왜 그런 각오를 하나?”

“음……요새 말이야. 내가 좀 못됐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네. 그러다 보니 내가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야.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거지. 하루 하나씩이라도 인을 실천하다 보면 공감력과 배려심이 좀 생기지 않을까? 내 딴엔 발악을 하는 셈이지.”

“발악이라니. 훌륭하다고 보네.”

나는 진심으로 <일일인>으로 호 지은 친구를 칭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노자의 말도 생각했죠.

“무릇 자기 삶만을 위한 집착이 없는 것이, 자기 생을 고귀하게 하려 애쓰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 친구 일일인이 내놓은 실천법이 바로 ‘자기 삶만을 위한 집착을 없애자’는 이야기이니까요. 내 생애를 고귀하게 만들려고 내 삶에만 집착하다 보면 타자와 함께 가는 일들에 소흘하기 십상입니다. 내 친구 일일인은 그것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내 친구의 인법, 멋지지 않습니까? 내 친구가 이 인법을 잘만 지켜간다면 아마도 그 친구 주변은 늘 평화로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노자 도덕경 75장 : 民之饑(민지기)는 以其上食稅之多(이기상식세지다)하니 是以饑(시이기)로다. 民之難治(민지난치)는 以其上之有爲(이기상지유위)하여 是以難治(시이난치)로다. 民之輕死(민지경사)는 以其上求生之厚(이기상구생지후)하므로 是以輕死(시이경사)로다. 夫唯無以生爲者(부유무이생위자)가 是賢於貴生(시현어귀생)하나니라.>

 

사람들이 굶주리는 건 상위계층에서 다 거둬 먹기 때문에 굶주리게 된다. 사람들을 다스리기 어려워지는 건 상위계층에서 자기들만을 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건 상위계층이 자신들 삶만을 두텁게 하기에 사람들이 살맛을 잃어 죽음을 가벼이 여긴다. 무릇 자기 삶만을 위한 집착이 없는 것이, 자기 생을 고귀하게 하려 애쓰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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