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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임진강(연천·파주)①

한국의 강-임진강(연천·파주)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7.0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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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강, 유빙도 얼어붙은 임진강

임진강이 이렇게 긴 강인 줄 몰랐다. 273km,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나라 9번째인 강, 남한 구간이 90km 남짓하니 2/3가 북녘땅에 흐른다. 분단의 상징 임진강은 기어이 건너야 할 강이다.  DMZ를 한반도의 대동맥으로 만들자는 구호도, 임진강 적벽 너머에 국제평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해마다 남북의 신년사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통일을 말한다. 이 겨울, 흐르지 못하는 강이 유빙으로 솟아올라 분단의 충돌로 얼어붙어 있다. 그래도 강바닥엔 봄마중 물이 흐르리라.

=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 임진강

임진강을 이 겨울에 찾은 것은 순전히 새해라는 희망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오랜 분단에도 가시지 않은 긴장은 이 겨울 철조망을 지나오는 바람으로 더욱 분명하다. 차가울수록 명징해지는 머릿속, 임진강 북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 땅은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가 아니다. 우리 지도에도 빼버린 땅을 우리나라라고 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다. 그래도 임진강의 뿌리를 더듬는다.

임진강은 순수한 우리 이름으로 ‘더덜나루(다달나루)’다. ‘다닫다’는 뜻을 가진 ‘臨’자도 여기서 유래한다. 일명 ‘더덜매’라고도 하는데 ‘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이니 골짜기 깊이 절벽을 이루면서 흐르는 임진강의 지형을 제대로 꿴 이름이다.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과 아호비령산맥, 두류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니 오늘날 북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강원도 법동군 룡포리다. 남으로 내려오면서 강원도 이천군 안협면 포촌(浦村)이 수운의 종점이고,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서 휴전선을 넘는다. S자를 그리면서 휘감아 도는 물줄기는 왕징면 강내리에서 남한의 물이 되어 군남댐에서 잠시 휴식한다.

임진강을 따라 군남댐으로 가는 길은 굴비 두름같이 철조망으로 엮은 초소의 행렬이 길다. 갈 데까지 가 본다. 그 끝에 군남댐이 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선 전망대는 쓸쓸하다. 가로 막힌 물길이 북녘 산협(山峽)으로 사라진다.

=서둘러 만든 군남댐의 서글픈 숙명

군남댐의 역사는 서글프다. 높이래야 26m, 길이 658m에 홍수 조절량이 7,100만t(평화의 댐 최대저수량 26억t)에 불과한 작은 댐이다. 2009년 9월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로 야영하던 주민 6명이 사망하면서 주춤거리던 공사는 피치를 올려 2010년 6월 본댐을 조기에 완공하였다.   어쨌든 수공(水攻)의 위력을 단단히 본 셈이다. 원래는 북의 수공에 대비하여 물을 가두지 않는 마른 댐으로 만들었으나 가뭄에도 물을 가두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을 가두고 보니 하류 쪽 파주에는 바닷물의 역류로 염해(鹽害)와 철새 생태계의 변화까지 우려하는 환경론자들의 목소리까지 논란에 가세했다. 2007년 북은 원래 '4월5일댐'이 있음에도 10배나 저수용량(3~4억t)이 큰 황강댐을 더 상류에 건설했으니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자원의 공동이용 등 다양한 합동 조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국제법적인 문제까지 ‘산 넘어 산’이다. 남북관계 경색에서 진도는 개점휴업이다. 

휴전선에 접한 철원, 연천, 파주의 자치단체는 DMZ를 소재로 관광 활성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흔적은 군남댐에서 왕징교에 이르는 구간에 만들어진 자전거 길에서도 보인다. 

겨울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자전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왕징면 소재지에 이르자 정미소의 기계음이 조용한 마을에 생기를 돌게 한다. 오래도록 나는 ‘징(澄)’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일까 북쪽 끄트머리 DMZ가 점선으로 처리된, 지도 속 왕징면이 늘 궁금했다. ‘맑을 징’이라는 훈독(訓讀)이 주는 청아함 때문에 고교 시절 접한 불문학자 오징자(吳澄子)교수의 이름마저도 오래도록 머릿속에 살아 있다. 

임진교부터 어느 쪽도 강을 끼고 갈 수 있는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적어도 숭의전이 있는 미산면 아미리까지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다. 대단한 높이는 아니어서 두 어 차례 가쁜 숨을 몰아쉬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숭의전(崇義殿), 고려를 기리는 조선의 사당

지리적으로도 북방의 외진 곳에 자리 잡아서일까. 숭의전(국가사적223호)은 그 깊은 뜻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안 알려진 사당이다. 한탄강이 전곡 읍내를 지나 임진강과 합류하여 아미산 자락 누에머리 같다는 잠두봉(蠶頭峰) 아래에 숭의전은 지어졌다. 임진강의 주상절리 절경 중 하나다. 이곳에 모신 위패가 고려조의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16공신(복지겸, 신숭겸,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정몽주 등)이니 예사롭지 않다. 멸망시킨 고려의 왕과 신하를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모셨으니 이채롭다. 고려 유민들의 선왕조에 대한 그리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위로의 사당이니 말이다. 그 시절에도 민심은 칼의 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도도한 물결이었나 보다.

=신라 경순왕릉과 더 갈 수 없는 장단

비룡대교에서 371과 372번 지방도로를 따라 장남면을 지나면 호로고루성과 경순왕릉이 있는 상고랑포에 이른다. 호로고루(瓠蘆古壘)성은 옛 부족국가 시절부터 치열한 격전지였고, 신라와 대치하는 고구려의 국경방어사령부 격이었다. 임진강은 원래가 주상절리가 심해 물 한 방울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을뿐더러 아예 기어오를 수는 없는 천연의 요새다. 그러나 임진강의 옛 성들은 물길이 느슨해지면서 퇴적이 심해 사람이 절벽으로 올라붙기 쉬운 장소에 어김없이 만들어졌다. 소위 적을 확인해 무찌르기도 수월코 자신들도 강을 건너 공격하기 좋은 곳에 만들어진 것이다. 장파나루, 고랑포나루, 임진나루 근처의 풍광이 그렇다. 북으로 난 도로는 모두 ‘민간인통행불가’다. 확인하고 싶었다. 병사들이 막아선다. “더 갈 수 없습니다” 절도 있고, 단호한 금지다. 경순왕릉으로만 길이 트여 있어 발길을 돌린다. 신라왕이 천 리 먼 경기도 땅에 와서 초라하게 묻히다니. 사연이 이러하다. 이미 저물어버린 신라의 패망을 몸으로 안은 경순왕은 고려의 도읍 개경에 볼모로 잡혀 살다 생을 마감한다. 죽어서라도 신라의 경주에 묻어 주어야 한다는 장례행렬은 도성 밖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막힌다. ‘개경 100리 이내를 벗어나지 말라’는 어명에 따라 이 외진 산골에 묻혀 천년을 보낸 거다. 신라 천년에 유일하게 경주 밖에 육신을 누인 유일한 왕의 유택이라 더 스산하다. 

=두지나루 황포돛배와 임진강 어부가 잘나가던 시절

장남교로 나와 강을 건너면 임진강 황포돛배가 운행되는 두지나루다. 물론 이 겨울 임진강의 배는 그대로 동결이다. 두지나루는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었다. 대대로 내려오던 임진강 어부의 생업도 제약을 받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어업허가를 받은 이는 임진강 1호 어부 임종수씨다. 25사단의 허가 구역인데다 허가된 배도 87척(2007년 기준) 5개 선단의 배들 가운데 유독 5선단 16대는 무동력선이었다. 모터를 달 수 없어 손으로 노를 저어 조업할 뿐이었다. 북이 지척이라 눈 깜짝하면 북쪽으로 붙을 수가 있어서다. 그들의 배는 관측초소의 통제를 받았다. 조금이라도 허용선을 넘으면 “돌아오라”는 경고 방송이 영락없이 강안에 울려 퍼지곤 했었다고 한다.

임진강의 명물은 역시 참게와 황복이다. 황복이야 워낙 귀해 ‘회 한 점이 금 한 돈‘일 지경이다. 황복철(4~6월)에 선택받은 입만 맛볼 정도니 논외로 하자. 임진강 참게는 자고로 이름 날리는 특산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전국 7개도 71개 고을에서 참게가 나지만 섬진강 곡성의 참게와 함께 임진강 참게를 가장 알아주었다고 전한다. 오늘날 임진강 참게장맛을 제대로 보려면 파주군 적성면 두지리와 화석정 인근 문산읍 임진리, 반구정 근처인 문산읍 사목리에 가면 된다. 암케 게딱지 안에 생긴 노란 내장인 ‘장(腸)’이 게 맛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별미다. 게장이 밥도둑의 원조임에도 디스토마의 원인이라 판매가 전면 중단되었던 것은 일제 때인 1924년이다. 물론 1934년에 다시 먹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오면서는 바다 꽃게로 담근 게장이 식탁의 주연으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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