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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안성천(안성·평택)②자존의 강 안성천, 평택들판을 적시다

안성이라는 이름은 ‘안성맞춤’이라는 명사로 우리 곁에 자리 잡았다. 조선의 3대 시장이라는 안성장의 자존이 안성에 ‘배타적’이라는 굴레를 씌운 것도 사실이다. 차령산맥이 맥을 죽인 언덕 삼죽에서 안성천은 출발한다. 이야기가 무성한 고장 안성을 거쳐 평원과 소택지가 주류라 산이 귀한 평택을 지나간다. 한강권역이라 그 휘하에 있다 해도, 한강과는 몸 한번 섞지 않는 오만한 강이다. ‘안성천 수계’라는 혼자만의 물길을 뽐내며, 국가하천인 황구지천, 오산천, 진위천의 물까지 모아서 아산만 방조제까지 뒷짐 지고 흐른다.

시인 고은이 살던 안성, 그 아쉬움의 뒤끝

공도읍 대림동산 근처에는 또 한 사람, 시인 고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인은 벌써 떠나고 없다. 안성 시대 이후의 고은은 불행하다. 움직일 때마다 화제를 만들고, 강연 때마다 사자후를 토해내던 그의 소식은 후배 문인과의 법적 다툼에서 패했다거나, 떠도는 비난이 전부다. ‘미투’의 토네이도 속에 고은은 송두리째 뽑혀나가 버렸다. 그의 문학적 성취를 아끼는 사람조차도 그를 드러내놓고 말하기에 ‘고은의 통행금지’는 엄혹하다. 그래도 미투전선이 펼쳐지기 몇 해 전에 썼던 고은의 행보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 옮겨 본다.

//중앙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이던 부인 이상화가 정년 퇴직을 하고 고은의 안성 시대는 막을 내렸다. 날아 갈까봐 놓지도 못하던 딸 이름을 ‘차령’으로 붙인 것도 미양 벌판을 건너 바라다 보이는 차령산맥에서 따왔다. 평생 민초의 삶과 애환을 시로 써온 시인에게 장길산과 남사당패 바우덕이의 무대 또한 차령산맥이니 너무나 자연스럽다. 시인이 떠나려 했을 때, 안성이 붙잡았어야 했다. 파주·김포·철원 등도 시인을 모시려했으나 수원시의 열정에 광교산 자락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2013년의 일이다. 해마다 겨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그 영예가 대한민국에 돌아온다면 그건 ‘고은의 몫’이라고 기다리다 지친 지도 오래다. 수원이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모셨지만 떠돌던 노시인의 삶이 오래 안착한 곳도 안성이 아니던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 시인을 모실 연고가 있었던 안성은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안성에 대한 애착은 그의 고별시에 절절하다.

(전략) 안성 30년은 시의 30년 이었습니다/ 상화의 교수 생활 30년은/서울 시절의 강단 10년을 이었습니다/ 이로부터 상화는 명예교수이고/ 나는 어제 그제 그대로/ 그냥 시인입니다(중략) 아기 자라나서/ 해외의 학생 시절 마치고와 백호, 오십호 그림을 그립니다/ 안성 30년 안성의 햇빛과 물/ 안성의 바람/ 안성의 더위와 추위/ 우리 삶의 절정은 길었습니다/ 날마다 절정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해설픈 시작을 위하여/ 이 절정의 안성을 하직합니다/ 안성이여 안녕/ 안성이여/ 안성이여 안녕  (무제 시편 ‘안성이여 안녕’ 중에서)

하지만 수원으로 모신 시인은 정작 편치 못할 것이다. 광교저수지 근방의 원주민들이 상수원보호구역에 자신들은 수십 년을 규제로 묶여 있는데 시인의 거소만 특혜를 받고 있다고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수원시는 절차와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육당 최남선 등 1세대 문인들과도 교류한 그가 “50년 한국 문단을 지켰으니 나는 ‘한국문화유산’이다.”라고 말하는 자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사실 안성을 떠나야 했을 때 시인의 행선지는 군산이어야 했다. 그가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근저는 누가 뭐래도 ‘만인보’다. 장장 25년에 걸쳐 4001편의 시, 30권의 시집으로 탄생한 인물 한국사의 열정과 시혼에 있다. 그 무대의 상당수는 그의 고향 군산 이야기다. <미제방죽>,<째보선창>< 나운리방앗간집> 이야기의 판권은 군산이 가진다. 더구나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살아있는 박물관 그 자체가 아닌가. 거기에 고은 문학의 궤적과 문향이 더해진다면 더 없는 완결편이다. 군산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그때 모셔가야 했다. 자연인으로서도 인생을 정리해야하는 시인에게 고향보다 더 좋은 ‘영혼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

 

=산이 귀한 평택, 구릉에 넘치는 활기

평택은 이름 그대로 평평한 들판이고, 소택지(沼澤地)이다. 높다는 산이 진위면의 무봉산(208m) 정도이니 말이다. 원주지역 방송 주파수가 잡힌다. 대전지역 방송이 잘 들리는 것도 멀리 보이는, 독립기념관 뒤 흑성산 중계소 가청권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송탄지역은 유선방송이 발달해 있다. 평지와 비행기로 인해서 지상파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송탄과 합해진 평택은 두 개 시의 통합으로 거대한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 삼성반도체 평택공장이 가동되고, 고덕국제도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데다 SRT의 분기점인 지제역은 간이역 수준을 단박에 뛰어넘었다. 어떤 토박이는 이렇게 발전해 나가면 조만간 ‘평택 100만 인구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기도 한다.

꿀꿀이죽 구루마(수레) 위에 드럼통을 덜컹거리며 언덕을 오르던 쑥고개의 풍경도, 카키색 4각 종이 봉지에 캔맥주와 우유, 치즈를 담아 퇴근하던 흑인 병사들의 발걸음도 사라졌다. 오키나와에서 한국행 배치 교육을 받는 미군들은 “송탄에 가면 ‘가져와! 폴리스’를 주의하라”고 말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다. 미군업소를 포함하여 1,000여 개의 유흥업소가 흥청거리고, 양키물건을 경찰이 단속하던 시절의 뒷거래 이야기다.

=세계최대 해외 미군기지가 된 팽성

평택 군문교를 지나면서부터는 아산방조제의 영향으로 물길은 유속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팽성대교에 이르면 북쪽 강둑길로 가야 하지만 이제 막 ‘용산시대’를 접고 평택으로 이사를 시작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직접 보고 싶어 그대로 직진한다. 강둑은 길고도 길다. 포크레인으로 깊이 판 도랑은 철조망 너머로 접근을 어렵게 하는 해자(垓子)가 되었다. 해무의 저쪽에 잠긴 미군 막사에 이르기까지 아득한 지평이다. 여의도 면적의 5.5배(1467만7000㎡, 440여만평)에다 4만3천여 명이 거주할 공간(513개 건물)이니 미니 신도시가 하나 만들어진 셈이다. 기지 둘레가 18.5km이고, 노양리까지 강둑길 이정표만 해도 10km라고 표시되어 있다.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 중 최대 규모다. 건설사의 부도 등으로 완공이 1년여 늦어졌다. 미군기지의 한 가운데가 된 대추리는 한 때 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세력과 충돌로 100여 개 중대가 넘는 기동경찰이 고전하던 현장이었다. 풍성한 가을걷이를 뜻하는 대추(大秋)리는 가을 들판 대신 든든한 국방의 지원군을 얻었다. 대추가 연상케 하는 ‘가을 대추’, 벼락 맞은 대추나무 ‘벽조목’이 제일 단단한 재질이라 하지 않는가. 지구촌의 이단아 김정은 체제와의 대치, 4강의 눈치를 보며 살길을 찾아야 하는 숙명의 한반도에서 한·미상호방위의 보루가 더없이 견고하게 버티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산호’든 ‘평택호’든 아무래도 좋다

해는 이미 기울어 물비늘이 번쩍거렸다. 노양리에 아산호를 가로질러 313번 지방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이사한 미군기지를 보기 위해 남쪽 강둑길을 택하긴 했지만 강둑이 끊어지는 아산 둔포·인주 방향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313번 지방도를 잇는 새로 생긴 평택국제대교를 건넌다. 이내 강북 쪽 자전거길도 끊어진다. 수많은 자전거가 들판과 마을을 헤매면서 방조제까지 지나간 흔적이 조잡한 방향표시판에 남아 있다. 국민관광지개발이 추가로 진행되면 자전거길을 잇겠다고 안내한다. 평택호예술공원 주변에는 숙박과 위락시설이 들어서 있다. 계두봉 아래 원조 평택호 관광지구는 광활한 아산호를 조망하기에 유리한 구릉지다. 아산방조제 밖으로는 서해대교가 가로 놓인 아래에  직선 도형의 평택항이 배치되어 있다. 다행히 수심이 깊어 평택국제여객터미널과 해군2함대사령부까지 들어와 있고, 포승공단까지 임해공단의 조건을 제대로 갖춘 터이니 평택이 자부심을 더 갖지 않을 수 없다. 평택호든 아산호든 아무래도 좋다. 이름 하여 국민관광지라 하니 그에 걸맞게 서해의 장엄한 낙조와 함께 편안한 휴식을 주는 여백으로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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