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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3.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3.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기자명 장주식 작가
  • 입력 2020.06.2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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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 작가

‘계획(計劃)’이라는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계는 ‘꾀하다, 계산하다, 세다, 헤아리다, 의논하다’라는 뜻을 같습니다. 획은 ‘긋다, 나누다, 쪼개다, 자르다’라는 뜻을 같습니다. 꾀하거나 계산하여 나누고 쪼개어 이미지화 할 수 있는 것을 ‘계획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계가 심상이라면 획은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하여 계산된 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림이니까요. 그러니까 계는 획이 있을 때 객관화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위조한 졸업증명서를 들고 나가는 아들에게 가난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이 말은 영화를 본 관객들을 통해 퍼져나갔습니다.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특히 잘 쓰입니다. 요즘엔 “You have all the plans!” 같은 ‘영어 문장으로 말하기’가 또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획은 계획일 뿐, 실제는 많이 달라집니다. 오죽하면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 하고 사람들이 한탄하겠습니까. 차라리 무계획이 오히려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날마다 계획을 하고 또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일 할 일에 대해 계획이 끝나지 않으면 오늘 밤엔 잠을 잘 수가 없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현생인류는 ‘계획하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어요.

노자도 역시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한번 들어 볼까요?

“억지로 하는데 용감하면 죽을 것이요, 억지로 하지 않는데 용감하면 산다.”

‘억지로 한다’고 해석한 한자는 감(敢)입니다. 이 글자는 ‘감히’ 뭔가를 한다는 뜻입니다. 감히 행한다는 ‘감행하다’는 썩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획을 벗어나거나 계획은 되어 있지만 뭔가 만만치 않은 장벽이 있는데도 용단을 내려 실천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럴 경우 노자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기생충 영화에서 아들은 부잣집 과외선생으로 들어가려고 위조한 문서를 들고 갑니다. 불법이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감행하는 것이죠. 결국 문서를 위조한 여동생은 죽게 되고, 본인도 크게 다칩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남매의 문서 위조와 사용은 다양한 층위의 이야깃거리를 던져줍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하게 노자의 말에 빗대어 해석할만한 부분만 취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노자는 사람이 계획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봤을까요? 억지로 감행하면 죽고 억지로 감행하지 않으면 살지만, 이 또한 때에 따라 이롭거나 해로움이 교차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억지로 감행해도 이롭지만 어떤 경우는 억지로 감행하면 해롭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인격이 잘 닦여진 ‘성인’도 이 부분은 몹시 어려워한다고 덧붙입니다. 성인도 ‘아, 여기서는 억지로라도 해야겠구나!’ ‘아니지, 억지로 하면 안 되지.’하고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노자는 ‘하늘이 하는 계획’을 말합니다. 그것을 천도(天道)라고 하는데요, 천도는  천망(天網)을 칩니다. 천망은 하늘이 계획하고 짜서 치는 그물입니다. 이 그물은 날실과 씨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엉성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계획은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천망이 보여주는 모습은 문제가 생긴 상대와 다투지도 않고, 말도 없고, 초대를 받지도 못하고, 느슨하고 그렇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무계획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자는 단언합니다.

“하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빠트리는 것이 없다”

성긴 하늘 그물에 모든 것이 다 걸린다는 겁니다. 다투지 않기 때문에 잘 이기며, 말이 없기 때문에 잘 조화되며, 초대를 받지 않아도 갈만한 곳이면 다 가고, 느슨하고 넉넉하지만 지혜로운 꾀를 잘 낸다는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문득 정원에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가 생각납니다. 착착착착, 돌아가며 물을 사방에 뿌려 땅을 적시는데요, 최대한 골고루 물을 뿌리지만 역시 빈 곳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골고루 땅을 다 적시는 것과 다르지요. 스프링클러가 주는 물은 빈 곳이 많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빠트리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늘은 계획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계획이 다 있는’ 거라고.

 

<노자 도덕경 73장 : 勇於敢則殺(용어감즉살)이요 勇於不敢則活(용어불감즉활)인데 此兩者(차양자)는 或利或害(혹리혹해)하니 天之所惡(천지소오)를 孰知其故(숙지기고)할까? 是以聖人(시이성인)도 猶難之(유난지)하나니라. 天之道(천지도)는 不爭而善勝(부쟁이선승)하고 不言而善應(불언이선응)하며 不召而自來(불소이자래)하며 繟然而善謀(천연이선모)하나니 天網恢恢(천망회회)하여 疏而不失(소이불실)하나니라.>

 

억지로 하는데 용감하면 죽을 것이요 억지로 하지 않는데 용감하면 산다하는데, 이 두 가지는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니 하늘이 미워하는 까닭을 그 누가 알겠는가? 그리하여 성인도 그것을 어려워한다. 하늘의 도는 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고도 잘 응대하며,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며, 느슨하여도 잘 도모하나니, 하늘 그물은 넓고도 넓어 성긴 듯하지만 빠트리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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