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여강여담- 내가 옛 한국영화를 보는 이유

여강여담- 내가 옛 한국영화를 보는 이유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06.15 08:06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낡은 흑백필름 한국영화 속에는 유년의 풍경이 복원돼

부모의 시대를 실버의 초입에서 다시 보는 큰 행복

조용연 주필

2020년의 서막을 코로나에 붙잡힐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속에도 방역마스크는 대세를 넘어 의무가 되었고, 선거는 비정한 승부를 싱겁게 손들어주고 말았다. 그래도 꽃은 피고, 신록은 우거지는데 한 달포를 앞두고 날아오던 ‘실버극장’의 시간표마저 소식이 돈절했다. 무기한 휴관 공고를 냈던 실버영화관과 자매격인 낭만극장, 청춘극장도 문을 열었지만 찜찜하다. 쑈 무대도 두어 차례 무관객 공연으로 유튜브에 올리기는 했으나 ‘언 발에 오줌누기’다.

서울 낙원동 허리우드 극장을 바꾼 ‘실버영화관’은 평생 소처럼 일하다 풀려난 세대가 이제 ‘시간과의 긴 싸움’을 하며 추억으로 돌아가는 장소다. 망백을 넘어 100세를 향해 여전히 활기차게 나아가는 만능엔터테이너 송해가 ‘송해의 거리’란 영광스런 이름을 얻은 곳이다. 5호선 지하철 5번 출입구는 한 시대를 공유한 사람들의 말 없는 연대가 이뤄지는 계단이다. 실버영화관의 입장료 2,000원은 경로우대를 가장 먼저 55세로 적용하는 하한선이다. 함께 입장하는 젊은이들도 경로우대요금으로 입장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노인문화를 위한 자치단체의 지원과 민간기업의 협찬이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스토리보다 1960년대를 고스란히 보는 즐거움

실버영화관은 바랜 천연색을 복원한 외화와 1960년대의 방화(邦畫)를 번갈아 상영 일정으로 올린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때때로 일부러 시간을 내어 흑백 한국영화가 상영되는 날을 고른다.

한국 극영화의 걸작 <마부>, <박서방>,<로맨스 빠빠>,<하녀>,<서울의 지붕밑>같은 영화를 거기서 구경했다. 대개 권선징악으로 이루어지는 뻔한 내용의 줄거리보다 내가 빠져드는 것은 빠르게 지나가는 배경화면의 야외 로케 부분이다. 거기에는 1960년대 초반의 가난한 대한민국이 있다. ‘4.19 의거’가 막 지나간 이 땅, 막 국민학교 1학년에 들어가던 때, 산골 소년이던 내가 보지 못한 흑백의 서울풍경이 너무 흥미롭게 다가오고 사라진다. 한번 나열해 본다.

△1961년 김승호 주연 강대진 감독의 <마부>에는 마부 춘삼이 끄는 마차가 있는 후암동 풍경, 스웨터를 입은 아내 조미령, 붓글씨로 쓴 간판, 사라진 중앙청의 대리석 담장, 모자이크 타일이 신식인 원형 기둥, 창경원 동물원과 보트 놀이, 60년대 여대생의 원피스, 냇가에서 빨래하는 정릉 버스 종점이 펼쳐진다. △1960년 영화 <표류도>에서는 다방<마돈나>로 시발(택시)를 보냈다는 대사, 프림(크림)을 타지 않으면 커피가 되지 않는 원조 다방 커피, 남자 차장이 ‘오라잇’을 외치는 합승, 도시의 지식인들이 몰려 살던 가난한 돈암동 풍경에 반말로 일관하는 재판장의 오만한 목소리까지 시대를 보여준다. 서울의 구석구석 풍경도 고증의 연속이다. 격자형 창호의 신식 한옥이 즐비한 북촌, 백남호텔에서 내려다보는 덕수궁, 복덕방 간판과 콜타르에 절인 목재전신주, 사각의 블록담, 한복 입은 창녀, 아외에 솥단지를 걸고 삭정이를 주워 모아 불을 때 밥하는 캠핑, ‘미상불’(아닌게 아니라)이라는 한자어가 대화에 쓰이고, 김포국제공항 활주로까지 회장님의 미제 고급승용차가 들어오던 시절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상당히 진보적인 모습의 영화패턴으로 충격을 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녀’, ‘식모’가 공존하고, 방직공장 여공과 또래의 소녀를 ‘급사’라고 이름 부른다. ‘아빠’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 않았던 때라 10살 소년도 ‘아버지’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남영동 굴다리 부근의 적산가옥에 사는 가장 김진규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은 앞서도 한참을 앞섰다.

=최주봉과 전원주의 폭소잔치와 지창수의 한의 소리

실버영화관은 한 달에 두어 번은 영화판을 걷고, 추억의 극장 쑈를 벌인다. 출연자의 연령은 일흔을 넘기는 것은 기본이다. 기성 TV 무대에는 노배우가 어쩌다 구색 맞추기가 아니면 설 자리가 없다. 굼띤 움직임의 문제가 아니라 연공서열의 출연사례비는 작품 채산성에도 맞지 않으니 더욱 소외된다. 적은 출연료에도 그 시대를 공감하는 노익장들 앞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일은 유일한 탈출구다. 지창수나 쟈니리가 올라와 부르는 노래는 그들의 신산한 삶의 여정만큼이나 가슴 절절한 비가(悲歌)다. 모두 사라져 가는 풍경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흑백 화면의 자막이 올라가고, 장내에 불이 켜지면 관객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아주 느리게 빠져 나간다. 아직도 긴 여름 해가 기다리는 허리우드 골목으로 그렇게 등 굽은 그림자를 남기며 흩어진다. 어서 코로나19가 완전히 박멸되어 실버영화관이 편하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