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최종편집:2024-03-28 11:17 (목)
실시간

본문영역

여강여담-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치며

여강여담-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치며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06.08 15:36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V NO, 유튜브 검색’ 세대, 실버도 가세한 1인 영상 활짝 펴

세상은 넓고 별일도 다 많아, 말하고 싶은 본능이 여는 세계

조용연 주필 

TV를 켜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게 되었다. 공중파의 편향이 거북하던 차에 유튜브를 켜니 골라 보고 듣는 재미는 편식을 더 부추겼다.

 4.15 총선을 전후해 정치판의 돌아가는 내막을 들여다보다 보니 줄줄이 정치 관련 유튜브 꼭지만 갖다 안긴다. 

지겨워 대중가요 몇 곡으로 머리를 식히자니 이번에는 흘러간 옛노래부터 가설극장 무대에도 안 세워줄 실력의 가수들 노래까지 끝도 없이 물고 와 봐 달라고 치근거린다. 

이 과잉친절의 주범은 매일 88억 개의 뷰, 댓글 분석, 피드백의 주인공 구글 인공지능 AI의 지칠줄 모르는 성실한 추천 덕이다.

없는 게 없는 만물상 유튜브

이제 젊은 세대는 포털검색보다 유튜브 영상검색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이다. 지구촌 사용자 19억 명, 1일 조회수 1억, 하루 사용시간 10억 시간, 분당 400시간 분량 업로드, 채널수 2430만 개, 1인당 월평균 16시간 시청, 국내 이용자 4000만 명, 국내 10만 이상 구독자 보유 채널 1275개가 2019년의 유튜브의 현주소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공중파 등 기존 TV가 ‘수명이 다한 게 아니냐’고 겁먹을 만하다.

유튜브는 매달 19억 명이 들르는 콘텐츠 마트다. 마트는 필요한 물건이 다 있어야 한다.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진열해 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획, 제작, 관리, 책임 등의 여러단계를 거쳐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라고 만드는 지상파의 돈 들인 프로그램은 명품일 수는 있어도 소수의 사람이 찾는 마니아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반면 유튜브는 이게 물건이 될까 하는 것도 물건이 된다. 더구나 광통신 시대의 혜택을 타고 지구촌 어딘가에 궁금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라는 마트가 전을 펴주니 제각각의 콘텐츠를 들고 찾아오는 오픈마켓인 것이다.

몇 년 전에 서울 동묘 골동거리에서 청계천 영도교 위를 건너는 데 젊은 청년이 혼자 휴대폰을 삼각대에 설치하고는 삼각김밥 예닐곱 개에다 물 두 병을 펼쳐놓고는 먹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별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며 그 많은 양의 김밥을 한 시간 남짓 걸쳐 다 해치웠다. 이른바 유튜브 먹방, 내가 본 최초의 실시간 스트리밍의 현장이었다. 확실히 세상의 입맛은 주관식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돈이 되니 몰려들고, 말하고 싶은 본능에 딱 맞아

원래 마트의 기능이 돈이 물건과 함께 오가는 곳이다. 

유튜브 장터로 너도나도 몰려든다. 돈이 된다하니 정작 장터에 내놓을 만한 물건만 들고 오는 사람보다 허접한 물건을 들고 장터로 오는 사람까지 북적거린다. 12개월 동안 총시청시간 4000시간, 구독자수 1000명이면 5:5정도의 수익을 나눠 가진다. 조회수 1만 이상은 되어야 용돈 정도는 번다니 만만한 것도 아니다. 

수준도 천차만별이니 젊잖아서는 안 된다. ‘남대문식 골라!골라!’로는 호객행위에 한계가 있다 . 자극적인 제목으로 장꾼들을 낚는다. ‘유명 연예인 머시기의 이혼?’도 듣다 보면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교묘하게 포장해 놓은 낚시다. 

또한 유튜브는 인간의 ‘말하고 싶은 본능’이 그대로 투영된 매체다. 사람이 눈을 뜨고 꿈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모두가 경험이다. 경험은 세월과 함께 비벼져 ‘한 사람의 자기(自己)’를 만든다. 그 경험은 기억, 지식, 깨달음까지 무궁한 깊이와 넓이를 지닌다. 

그럴수록 사람은 말하고 싶어진다.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이야기를 만든다. 그 욕망이 신화와 전설이 되어 전승된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집채만 한 고래를 쇠창과 사람의 투지만으로 잡았던 감격의 순간을 암벽에 쪼아 ‘울산반구대암각화’를 남기는 게 인간이다.

유튜브는 그 자기만의 이야기를, 심지어는 시시껄렁한 이야기까지를 모두 난전에 펼쳐주는 성의(?)를 보여주기에 더 없이 매력적인 도구다. ‘동영상의 바다’를 우리에게 만들어 준다.

 유튜브 장터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나라는 말 하는 게 두려운 나라다. 숨기고 싶은 게 많은 집단에게 유튜브는 성가신 존재다. 하여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광고를 보아가면서도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유튜브는 인생의 하오 적막강산에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유튜브크리에이터’라는 말에 걸맞게 창조적인 생각을 펼치는 그 누군가에게 낚이고 싶다.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