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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경기-황구지천(의왕,수원,화성,평택)②황구지천, 효원의 도시 수원과 화성을 품에 안고

원래 수원과 화성은 한 몸이었다. 물 수(水)자가 들어가는 수원(水原)이 물이 적은 곳이라는 사실은 의외다. 그래서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확보한 물 덕분에 수원은 농업의 중심도시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인구120만 명을 넘어선 산업도시 수원의 출발이 그랬다. 황구지천(黃口池川)은 낯선 이름이지만 수원과 화성을 관통하여 안성천에 합류하는 엄연한 국가하천이다. 젖줄 노릇을 하면서도 범람을 거듭하며 속 썩이던 막내쯤 되는 안성천 제2지류 하천이다. 

용주사와 융건능, 효원의 출발

배양교는 낡은 다리다. 새로 지은 기안교에서 합류한 황구지천과 서호천은 배양교 아래를 지나면서 더 수원비행장 안으로 파고든다. 이 강둑길은 멀리 호남으로 이어지는 ‘삼남길’의 한 구간이다. 수원 지지대고개에서 서호를 거쳐 오목내를 지나온 삼남길은 융건능으로 이어진다. 강물이 국경이 없듯 황구지천은 비행장 철조망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행장 철책에 차단되고, 골프장 페어웨이에 가로막힌 길, 아무도 항변하지 못한다. 못 갈 뿐이다. 자전거는 마을로 고갤 돌린다. 미로 같은 배양리 마을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꼬불꼬불한 것은 피난민촌의 흔적이다. 6.25 직후에 이 후미진 산록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일자집은 150가구가 넘는 큰 부락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수용소 사람들’이라고 불렸다. 함경도, 평안도도 있지만 황해도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북사면 그늘진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지나 신경을 바짝 써야 용주사로 넘어가는 길로 접어든다. 

용주사는 마을 안 사찰처럼 북적인다. 사도세자의 능원이 지척이라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는 원찰로서 중건되었다. 중건 낙성식 전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꾼 정조가 용주사(龍珠寺)라 명명했다. 고승 보경당 스님이 <부모은중경>을 설하고, 단원 김홍도가 <부모은중경도>를 그렸으니 가히 효의 원천이라 할만하다.

굳이 강둑을 좀 건너뛰어도 된다면 융·건능을 들려보는 것은 역사기행 이상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너무나 극적이어서 비통하다. 당쟁과 왕권이 무엇이기에 영조 나이 마흔에 얻은 외아들을 뒤주에 못 박아 굶겨 죽인단 말인가. 열 살이던 세자 정조가 울면서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매달린 벼랑에 아비의 죽음이 있었기에 그 트라우마는 집착에 가까운 효(孝)로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희미한 근원 <존슨 동산>과 <존슨탕>

용주사에서 다시 황구지천을 만나려면 송산교로 나와야 한다. 대황교동에서 비행장을 빠져나온 황구지천은 수원천과 원천천이 합해져서 제법 넓어진다. 결국 큰 물이 지면 수원물이 모두 한곳으로 몰려든다. 비행장 유도등만 남고 온통 물바다가 되어 간신히 건너갔다는 게 토박이들의 기억이다.

송산교 건너편은 <존슨동산>이다. 린든 비 존슨 대통령이 들렀다 간 흔적을 기념한다. 기념비에는 1966년11월1일로 적혀 있다. 무슨 연유로 기념한다는 것인지도 모를 간명한 비석이다. 그의 이름을 딴 ‘존슨탕’, 이제는 ‘부대찌개’라는 말로 자리 잡았지만 내력이 모호하다. 눈 밝은 어떤 이의 시니컬한 분석이 설득력 있다. 월남전에서 수세에 몰리던 존슨 대통령은 한국군의 월남파병을 독려하기 위해 방한한다. 아시아 6개국 순방에서 재미를 못 본 그의 카퍼레이드에 꽃가루가 쏟아진다.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국민의 열렬한 환영에 감격한다. 전형적인 농촌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에게 태안면 송산리가 정해졌고, 안용중학교 교정에 흙먼지를 날리며 헬기가 내렸다. 연도에 동원된 어린 학생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멋도 모르고 흔들며 미국대통령을 환영했다. 그게 전부다. 아마도 존슨 대통령이 다시 살아와서 보았다면 태안 벌판에밀집한 아파트와 공장들에 깜짝 놀라고 말일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 꼽았었으니, 그만큼 이 땅은 발전한 거다.

독산성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흔적

존슨동산에서 건너다보이는 산 양산봉(180m) 아래에는 한신대학교가 들어섰다. 독산성과 세마대가 그 뒤에서 서쪽으로 비켜 가다 남진하는 황구지천을 바라보고 있다. 1980년 여름의 기억이다. 자연부락인 양산리(오산시 양산동)에서 평화농장은 제일 큰 목장이었다. 주인은 이규동 장군(준장 예편) 정확하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이다. 스물여섯 살 새파란 파출소장(화성경찰서 궐리파출소)이던 내가 목격한 것은 그 골짜기에 검은색 세단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것이었다. 입구 구멍가게에 부탁해서 드나드는 차들의 번호판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번이었는지 전화번호였는지 우리는 거기를 ‘43 지역’이라 불렀고 매일같이 순찰하는 일이 파출소장의 중요한 일과였다. 장군님은 경리 출신답게 꼼꼼했고, 장모님은 손이 커 명절 때 주는 격려금도 제법 두툼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재산을 환수한다면서 논란되던 항목 가운데서도 평화농장만은 그와 무관하다고 확신한다. 이미 오래전 전역한 장인이 손수 우유를 짜던 걸 직접 보았으니까.

독산성 세마대의 전설은 너무나 유명하다. 1593년(선조26년) 임진왜란 때 일이다.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가토키요마사(加藤淸正)의 군이 독산성에 진을 치고 있는 권율 장군에게 산성에 물이 없을 것으로 알고 물 한 지게를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한다. 이에 권율 군사는 말잔등에 쌀을 부어 씻기는 연출을 했단다. 멀리서 보니 영락없이 말을 목욕시키는 터라 ‘물이 많구나’ 하고 교전을 포기했다는 전설이 ‘세마대’(洗馬臺)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나는 황구지천

세마교를 지나서 아래로 내려가면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버드나무, 갯버들, 물억새, 갈대, 부들, 줄, 고랭이 같은 자연 식생이 퇴적된 천연 둔치에 골고루 퍼져 있다. 붕어, 모래무지와 왼돌이물달팽이가 살고 있어 먹이가 넉넉하니 물 위에는 원앙이 같은 텃새에다 겨울 철새들까지 합세하여 강물 위에 점점이 가득하다.

황구지천의 옛 모습은 여느 하천들처럼 참담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무분별한 경작과 최소한의 물길도 정비하지 못한 채 강 아래로 갈수록 범람이 잦았었다. 대황교보부터 귀래보까지 6개의 보는 갈수기를 대비하면서도 자연석을 경사지게 축조하여 산소를 더 만들어 낸다.

송산교에서 세마교, 용수교, 수직교를 지나는 동안 시원한 강둑길이든 둔치로 난 자전거길이든 그건 마음 가는 대로 가면 된다. 다만 용수교와 수직교 사이에 있는 군부대(전파탐지타워가 여러 개 서있는)에서는 미리 경고판을 보고 들판 길로 우회하면 된다.

살인의 추억과 그 깊은 그림자

오산~평택간 고속도로가 황구지천을 건너는 정남면 귀래리 근처, 들판은 고요하고 잡초는 무성하다. 2015년 첫 황구지천 종주에서 만났던 한 풍경이 떠올랐다.

갑자기 노란색 형광 외투를 입은 기동경찰관들이 줄지어 강둑으로 올라온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 그들은 강둑을 수색하러 올라오는 길이다. 탐침봉을 들거나 더러는 삽과 곡괭이를 들기도 했다. 발길을 멈추고 책임자에 물어본다. “일주일전에 한 할머니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수색을 하려고....” 화성동부경찰서 소속이다.

한 시절 화성은 ‘연쇄살인사건’과 등식이었고,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그 섬뜩한 이미지는 극에 달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은 없는’ 살인사건은 경찰의 고민이자 아픔이었다, 못자리 붓듯 설치해놓은 CCTV망과 IT 대한민국 덕에 살인사건은 0% 미제를 향한 행진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흔적 없는 할머니를 찾는 이 원시의 탐침은 경찰의 트라우마와 고민을 말해 주었다. 이날 강둑길 아래 우거진 갈대숲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겹겹이 쌓여 골짜기를 이룬 퇴적층 사이로 흐르는 황구지천만큼이나 우울이 깊다.

□ 황구지천의 유래 종점인 서탄대교 건너로 황구지천의 원래 주인인 황구지마을이 있다. 옛 항곶진(亢串津)이었던 나루터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용소리 뒷산 청룡사에는 본당과 요사채 사이에 내(川)가 있어 주지 황구지(黃口地) 스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도 있다. 1970년 제방축조 당시에 거대한 돌이 발견되기도 했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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