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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70. 아주 쉽지만 다들 모른다고 하다
장주식 작가

윤동재 시인은 ‘통일은 참 쉽다’라는 동시를 썼습니다.

통일은 참 쉽다
남쪽 북쪽 철조망
둘둘 말아 올리면 되지.

이렇게 시작하여 남북한 생산물을 주고받고, 겨레가 왔다 갔다 하면 되는데 어른들은 그 쉬운 통일을 왜 안 하는지 왜 못하는지 궁금하다고 묻습니다. 어린 화자 시각을 빌려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논리들을 비판하는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북이 38선으로 갈라진 건 외부세력의 이익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미국 사령관 맥아더는 일반명령 제1호로 ‘한반도 분할’을 공포합니다.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일본대신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그 뒤에 한반도는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됩니다. 친척과 형제가 서로 죽이는 전쟁이 일어나고 철조망이 쳐지고 가족들이 만나지 못하고 한 겨레끼리 서로 미워하고 욕하는 세월이 벌써 70년입니다. 외부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선 하나가 현실에선 거대한 ‘통곡의 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외부세력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받아 안아 그 선과 벽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내부세력이 당연히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세력과 이익을 같이 하는 내부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벽은 더욱 견고해진다는 거죠. 그 벽을 쌓는 온갖 논리도 생산해내고 말이죠.

바로 여기서 나는 노자의 말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지만, 사람들은 알기도 어렵고 실천할 수도 없다고 한다.>

노자가 하는 말들 그러니까 주로 ‘도’에 대한 이야기죠. 도에 대한 말들이 매우 쉽고 실천도 쉽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 반대라고 한다는 거죠. 알기도 어렵고 실천할 수도 없는 공허한 내용이다, 뭐 그런 반응이란 거죠.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는데, 그것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하는 말과 실천해야 할 일들에는 근원과 중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노자는 종(宗)과 군(君)으로 표현합니다. 종은 그 말이 나오게 된 뿌리입니다. 군은 주재하는 자이며 리더이며 중심이라고 봅니다. 종이나 군이나 거의 같은 뜻으로 볼 수 있으니 한마디로 언행을 하게 되는 뿌리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나는 노자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내가 하는 말은 그 뿌리를 알기가 쉬운데도 사람들이 모르겠다고 한다. 모르겠다는 것은 정말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너무나 쉬워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주 쉬운 것을 어렵다거나 모르겠다고 부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쉬운 말과 쉬운 실천들이 내 욕망이나 내 이익과 대립하는 것이죠.

내 욕망과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나에겐 적이 됩니다. 적은 물리쳐야 하므로 무기를 만들어 공격해야 합니다. 무기는 사물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이란 내가 만들어내는 논리에 따르는 대중을 말합니다. ‘통일은 참 쉽다’는 시처럼 통일은 매우 쉽지만, 통일을 적으로 보고 통일을 막으려는 세력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바로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죠. 이 세력들은 ‘통일이란 말은 너무나 어렵고 실천할 수도 없다’는 논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죠.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세상사가 보통 그렇습니다. 이해하지 못할 말과 실천하지 못할 일은 없지요. 다만 이해하지 못하는 척, 실천하기 어려운 척하는 것이죠. 따라서 진짜로 어려운 것은 이 ‘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봐야겠습니다.

 

<노자 도덕경 70장 : 吾言(오언)은 甚易知甚易行(심이지심이행)이지만 天下(천하)가 莫能知莫能行(막능지막능행)하니 言有宗(언유종)하고 事有君(사유군)한데 夫唯無知(부유무지)하여 是以不我知(시이불아지)하나니라. 知我者希(지아자희)하고 則我者貴(칙아자귀)하나니 是以聖人(시이성인) 被褐懷玉(피갈회옥)이니라.>

 

내 말은 매우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아주 쉽지만, 세상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다 하니,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는데 무릇 그것에 무지하므로 결국 나를 알 수 없다 하는 것이라. 나를 아는 이 드물고 나를 본받는 이 또한 귀하니 성인은 베옷을 입고 옥은 가슴에 품느니라.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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