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각나눔터 논단과기고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69. 슬퍼하는 자가 결국 이기게 된다
장주식 작가

가장 사랑하는 관계이면서도 가장 다툼이 많은 대상이 가족입니다. 부부끼리도 자주 싸우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싸우고 몇 시간이나 며칠 또는 몇 주간 서먹했다가 화해하고 또 싸우고 그런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유명한 주인공 ‘삐삐’를 창조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 변두리에 잡초가 무성한 오래된 정원이 있었다. 그 정원에는 낡은 집 한 채가 있었고, 이 집에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홉 살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삐삐한테는 엄마 아빠가 없었지만 사실 그것도 아주 잘 된 일이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작품의 시작 부분입니다. 린드그렌은 이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듭 퇴짜를 맞다가 겨우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됩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스웨덴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삐삐는 시리즈로 두 권이 더 나오고 마침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사로잡는 책이 됩니다.

그렇다면 삐삐는 어떤 아이이기에 그토록 인기가 높을까요? 사실 삐삐 책을 정독하지 않은 사람도 삐삐라는 아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잘 알려진 주인공이니까요.

엄마는 삐삐를 낳자마자 죽었고, 선장이던 아빠는 삐삐가 아홉 살 때 폭풍우 치는 바다에 휩쓸려 죽습니다. 그렇지만 삐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천사여서 하늘나라에 있고 아빠는 식인종 섬에 가서 식인종들의 왕이 되어 황금 왕관을 쓰고 있다고 믿습니다. 삐삐는 가끔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지요.

“엄마, 내 걱정은 마세요. 난 잘하고 있으니까.”

정말 삐삐는 잘하고 있습니다. 삐삐는 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황소를 잡아 뿔을 부러뜨리고 높은 지붕에서도 풀쩍 뛰어내리는 아이입니다. 이야기도 잘 지어내는 거짓말쟁이이기도 하고 요리도 잘하며 춤도 잘 춥니다. 고층건물에 불이 나서 다락에 아이 둘이 갇힌 것을 보고 어른들이 발만 동동 구를 때 삐삐는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서 아이들을 구해서 내려오기도 하지요.

그리고 삐삐는 자기 생일날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커서 해적이 될 거야!”

삐삐는 낙천적이고 거침없습니다. 모든 것을 놀이로 만들기도 합니다. 낙천성과 놀이, 이것은 바로 아이들이 가진 동심의 핵심 중의 핵심이죠. 이 낙천성과 놀이를 방해할 부모가 삐삐에겐 없습니다. 그러니 책의 첫머리에 린드그렌은 엄마 아빠가 없는 것을 “아주 잘 된 일”이라고 얘기하게 되는 것이죠.

부모가 없다는 건 사실 아주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있어서 오히려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되는 아이도 분명 있습니다. 동심이 억압당하면 언젠가는 매우 나쁜 방향으로 폭발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노자의 말을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슬퍼하는 자가 결국 이기게 된다.”

여기서 ‘슬퍼한다’는 것을 나는 ‘자비’라고 봅니다. 자비(慈悲)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할 자(慈)와 몹시 슬퍼할 비(悲)가 합쳐진 낱말입니다. 왜 어머니의 사랑과 슬픔이 나란히 놓였을까요? 지독한 슬픔도 어머니 품으로 안아준다면 조금은 덜어진다는 뜻일까요?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또 자비는 아이들이 가진 동심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린드그렌이 ‘삐삐’라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전 세계 수많은 어린이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듯이 말입니다.

 

<노자 도덕경 69장 : 用兵(용병)에 有言(용병유언)하나니 吾(오)는 不敢爲主而爲客(불감위주이위객)하고 不敢進寸而退尺(불감진촌이퇴척)이라. 是謂(시위)는 行無行(행무행)이요 攘無臂(양무비)요 扔無敵(잉무적)이요 執無兵(집무병)이라. 禍(화)는 莫大於輕敵(막대어경적)이니 輕敵(경적)이면 幾喪吾寶(기상오보)하여 故(고)로 抗兵相加(항병상가)에는 哀者勝矣(애자승의)하나니라.>

 

무기를 쓰는 일에는 전해지는 말이 있으니 “나는 감히 주인이 되지 않고 손님이 되며, 감히 한 걸음을 나아가지 않고 열 걸음을 물러 다.” 고 했다. 이 말이 알려주는 건 네 가지이니 ‘걷지 않는 걸음’ ‘팔 없이 당김’ ‘적이 없는 물리침’ ‘무기 없이 지킴’이라 한다. 재앙은 적을 가벼이 여기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적을 가볍게 보면 내가 가진 보물을 다 잃게 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겨누어 서로 다투게 될 땐 슬퍼하는 자가 결국 이기게 된다.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주식 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