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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경기-황구지천(의왕,수원,화성,평택)①효원의 도시 수원과 화성을 품에 안고

원래 수원과 화성은 한 몸이었다. 물 수(水)자가 들어가는 수원(水原)이 물이 적은 곳이라는 사실은 의외다. 그래서 곳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확보한 물 덕분에 수원은 농업의 중심도시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인구120만 명을 넘어선 산업도시 수원의 출발이 그랬다. 황구지천(黃口池川)은 낯선 이름이지만 수원과 화성을 관통하여 안성천에 합류하는 엄연한 국가하천이다. 젖줄 노릇을 하면서도 범람을 거듭하며 속 썩이던 막내쯤 되는 안성천 제2지류 하천이다. 

 

왕송저수지와 철도수송의 본거, 의왕역

의왕역으로 이름이 바뀐 부곡역이 황구지천 여정의 출발이다. 여전히 부곡역 이정표가 도심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입에 붙은 이름 하나 떼어 내는 게 그리 간단치 않나 보다. 경부선 열차가 부곡역을 지나가며 만나게 되는 시원한 호수가 왕송저수지였다. 의왕역 담장에 그려진 벽화에도 철도의 무게가 크다. 철도박물관이 그렇고 철도대학이 그렇다. 이 언저리에 어마어마한 컨테이너기지(경인·의왕ICD, 남부철도화물기지창 등)가 들어선 것은 경부선에 매달려 있는데다 인천항까지 이어지는 수도권 사통팔달의 지리적 입지 때문이다. 환경생태공원으로 사랑받는 왕송저수지가 기점인 황구지천은 서수원IC가 있는 입북동과 호매실을 지난다. 남양반도와 조암반도로 가는 길목에서는 잠시 오목내(오목천)라 불리며 흘러내린다.

녹색혁명의 보금자리 서호와 농촌진흥청

황구지천을 잠시 젖혀두고 성균관대학교가 있는 율전동으로 들어선다. 서호를 만나기 위해서 경부선 철길을 잠시 따라간다. 지금 철길은 대한제국 시절 수원사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결과다. 정조의 효심이 담긴 지지대 밑으로(터널) 철도가 지나가다니. 그래서 지금의 북수원과 수원 시내를 가로질러 오산으로 가게 되어 있던 철도는 서둔 벌판으로 우회하게 돼 버렸다. 서호엔 내 소년기의 추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서호의 풍경을 만드는 3요소는 호수에 비친 여기산(麗妓山)과 농촌진흥청, 그리고 방죽에 늘어선 노송의 멋진 여유다. 농촌진흥청에서 다리를 건너야 이르는 농민회관(현 농촌지도자회관)은 70년대를 관통한 새마을운동의 근거지였다. 초록 깃발은 힘차게 휘날렸고, 박정희 대통령은 ‘농민회관’ 휘호를 써 동판으로 걸었다. 10층이 넘는 농민회관은 엘리베이터가 귀하던 시절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 욕망의 높이였다. 새마을운동이 시들해진 만큼이나 건물은 퇴락했고, 웨딩팰리스(예식장)의 간판 또한 쓸쓸하다.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걷고, 더러는 자전거를 타고 방죽을 달린다.

60년대 후반, 중학 시절로 돌아간다. 서호에는 영화 촬영이 많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영원을 약속하고, 눈물로 헤어지는 장면엔 멋진 노송과 호수가 제대로 배경이 되었다. 영화 제목도 가물가물하다. 문주란의 <낙조>(1967년)와 <타인들>(1966년)이 테마곡이었다. 서호의 낙조가 그녀의 노래만큼이나 애조를 띤 채 수면에 붉게 일렁거렸다. 어느 여름날엔 친구들과 서호에 들어가 내 키를 잡아먹는 바닥까지 잠수하며 손바닥만 한 말조개를 잡아들고 집으로 오곤 했다. 방죽 아래 진흥청 묘포에는 다양한 벼 종자의 시험 재배가 이루어졌다. 아끼바레(秋晴)만큼이나 인기 있던 밀양23호를 거쳐, 소출이 많아 남북을 다 먹여 살리겠다는 ‘통일벼’ 덕에 잡곡 도시락은 사라졌다. 더는 ‘방바닥에 흘린 밥알을 주워 먹지 않는다’고 형들의 꿀밤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 들판으로 서호천이 흐른다. 안성천의 손자뻘 제3지류 하천이니 황구지천에겐 아들이나 조카다. 

‘샌드페블즈’와 ‘푸른지대’ 딸기밭

서둔동 일대는 온통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과대학(현 농생명과학대)의 영토였다. 오래도록 수원 시내버스 1번도 ‘진흥청~원호원’노선이었다. 농촌진흥청이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라면, 국립원호원은 6.25 전쟁의 시계로는 1950년대다. 혼자만 떨어져 있던 서울농대를 수원사람들은 그냥 ‘농대’라고 불렀다. 자전거를 잠시 멈춰 선다. 옛 교정 안 고색창연한 붉은벽돌이 반갑다. 내가 고1이던 1970년, 농대 강당엔 대학생 보컬 그룹 ‘샌드페블즈’공연을 보러 온 수원의 여고생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SM 이수만도 거기 2대 보컬이었다.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기 한참 전 일이다. 진짜 농업 한국을 위해 농대에 들어온 학생보다 서울대 배지(badge)의 위력에 휩쓸려 적성에도 안 맞은 학과를 성적 따라온 이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들 중 세칭 일류고등학교에서 문학과 예술에 심취해(?) 공부를 놓친 이들도 적잖다고 했다. 과외공부 짬짬이 농대 형들의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의 낭만과 서울 무교동의 ‘세시봉’ 이야기는 우리를 들뜨게 했다.

농대 연습림은 그대로다. 변한 것은 눈부신 서수원으로 다시 탄생한 탑동 ‘푸른지대’와 칠보산자락 깡촌 호매실이다. 여전히 연습림은 울창해서 수원의 허파 구실을 단단히 한다. 여기에 또 개발의 바리깡을 들이대지나 않을지 적잖이 걱정스럽다. 짧은 서호천은 평동을 지나 평리동을 통과하는 언저리에서 수인선(水仁線) 옛 철길을 만난다. 협궤철도의 흔적이다. 옛것의 기억이 우리를 얼마나 위로하는지 뒤늦게 눈뜬 사람들과 자치단체가 명소로 점찍어 놓았다. 사라진 수인선은 이제 8월에 3단계 공사가 완공되면 왕십리까지 연결되는 수도권환상전철로 복원된다. 자전거는 비행장 외곽 서호천을 따라가다가 잠시 길이 막히지만 이내 골목길을 돌아 확 트인 들판을 만나게 된다. ‘한집에 살아도 시어머니 성을 모른다’더니 낯선 풍경이다. 

수원공군비행장과 나의 가족사

10전투비행단으로 불리는 공군 수원비행장이다. 지도에서도 사라진 평리동과 장지동, 비행장에 들어가지 못한 자투리땅은 감자탕 돼지등뼈에 붙은 살처럼 숨어있다. 수원비행장은 우리 공군의 최전방이다. 휴전선까지 단 몇 분이면 날아가 북을 폭격할 수 있는 전략적 요지다. 문경 촌놈인 내가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도 수원비행장 덕분이다. 아버지는 미 군사고문단 산하 아메리칸합동토건(AAE)의 중간책임자였다. 소학교 졸업 학력에 어깨너머로 목수 일을 배운 아버지다.  대구파티마병원 신축, 울산정유공장건설 현장을 거쳐 제주도 모슬포비행장을 전전하던 아버지는 수원비행장에 정착했다. 아버지의 영어회화책은 한글로 적은 발음으로 행간이 비좁았다. 우리 집엔 노란색 미제 리포트용지와 두루마리 휴지가 함께 생활했다. 1리터짜리 팩 우유와 일제 라면이 주한미군의 급식에 끼어 내 입에까지 흘러들어왔다. 세상사 풍파가 많다지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 푸에블로호 사건(1968)과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습격사건(1968)에 연이은 ‘닉슨독트린’(1969)의 후폭풍은 주한미군철수로 이어졌다. 미국의 군사 전략은 우리 집에 유탄을 떨어트렸다. 아버지는 졸지에 직장을 잃고 나는 고교 1년생이 되었다. 1970년의 일이다. 

세월이 수원비행장을 밀어내고 있다. 어디나 비행장 이전은 자치단체장들의 숙원사업이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평동 사람들은 전투기가 발진을 시작하면 대화를 멈춰야 했다. 더 말해봐야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난청을 겪어도 어디다 호소할 줄도 몰랐다. 나라서 하는 일이면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 융·건능 쪽을 제외하면 아파트와 공장들이 비행장을 포위했다. 어디로 옮길지는 미지수다. 조암 반도에 붙어있는 화성호가 바닷물의 통행을 차단하자 화성사람들은 비행장이 거기로 옮겨 오는 게 아닌지 신경이 날카롭다. 오산(송탄)엔 미군비행장이 있고, 안산 시화지구 쪽은 김포공항 비행안전구역안에 드니 이리저리 봐도 갈 곳은 화옹지구로 낙착되는 추세지만 화성시의 반발로 몇 년째 주춤거리고 있다. 문제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수원시 경계에 짓고 있는 광역화장장(함백산메모일얼파크) 사업 하나도 오래도록 발목 잡았던 수원이 잔뜩 화난 화성사람들을 달래야 하는 몫이 남아있다.

□황구지천(유로연장 51.25km, 유역면적 342.87㎢)
-국가하천:32.50km 경기도 수원시 대황교동~ 평택시 서탄면 (국가하천 진위천 합류점) 
-지방하천:18.75km 경기도 의왕시 초평동 왕송저수지~수원시 대황교동
-기타지류:6개의 안성천 제3지류하천(서호천, 수원천, 원천리천, 반정천, 삼미천, 갈천)과 5개의 안성천 제4지류하천( 영화천, 광교천, 가산천, 여천, 영덕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조용연 여행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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