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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공릉천·문산천(고양·양주·파주)②북한산 뒷자락 잡고 흐른다, 공릉천인가 곡릉천인가

잃었던 공릉천의 이름을 되찾았다고는 해도 여기저기 곡릉천의 흔적은 여전하다. 장강대하(長江大河)의 용틀임에야 비할 바 못되지만 크지 않은 이 강이 똬리를 틀고 가는 건 북한산의 장엄한 기개가 흘러내린 여분의 덕이다. 곡릉(曲陵)이라 할만하다. 송추, 장흥, 일영역의 이름은 ‘청춘의 간이역’이다. 70년대를 최루 연기 속에 보낸 학생들의 낭만은 소박했다. 교외선 열차를 타고 와야 만나는 그 은밀한 골짜기에서 젊음은 포크송과 모닥불 속에 타올랐다. 공릉천과 문산천의 시·종점이 모두 철조망이듯 세월이 가도 분단은 공고하고, 긴장은 조수(潮水)처럼 들고 나는 일상일 뿐이다.

=서울의 화장터 벽제, 그리고 승화원

통일로 교차로가 벽제역 곁을 지난다. 엷어졌다고는 해도 벽제의 이미지는 화장장(火葬場)이다. ‘승화원’으로 이름을 고치고, 추모공원을 아무리 세련되게 꾸며도 화장터 언덕은 오래된 기억이다. 북망산천 가는 길이라고 홍제동 화장터를 북한산 너머 벽제로 정해 옮겨 앉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서울사람들이 죽어서 한 줌 재로 돌아가는 엄숙한 공간이다. 서울로 단봇짐을 싼 이뿐이도 금순이도, 돌담길 돌아가며 또 돌아보고 서울로 간 사람도 죽어서는 그래도 고향땅을 밟았다. 그 형편도 못 되는 사람들은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거나 한 줌의 재로 한강에 뿌려졌다. 화장(火葬)이 불경스러운 시대를 지나온 그림자다. “서울사람 뒤처리를 고양시가 하란 말이냐”고 목청 돋우는 오늘날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벽제를 지나며 공릉천은 큰 강 상류에서나 볼 수 있는 용틀임을 수도 없이 하며 깊어간다. 원래 공릉천(恭陵川)이던 강은 일제 치하에 곡릉천(曲陵川)으로 바뀌었다. 민족정기의 말살이란 배경이 깔려있던 강이 제 이름을 되찾은 것은 2009년에 와서지만 여전히 곡릉천의 흔적은 지도 곳곳에 남아있다. 연유야 어쨌든 곡(曲)자를 붙일 만한 굴절이다.

=청춘의 간이역, 일영·장흥·송추 

벽제를 돌아가면 일영유원지다. 도봉과 북한산의 맑은 물이 소리 내며 흐르다 고요해질 만한 곳에 유원지가 들어섰다. 한 시절, 청춘남녀의 보트 놀이 명소도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에서 보일 리 없다. 이제 교외선 열차마저 멎어버리고 말았으니 일영은 아는 사람들이나 찾아가는 골짜기가 되고 말았다. 2004년 적자를 견디지 못해 멎어버려 ‘녹슬은 기찻길’이 되어버린 교외선에도 드디어 볕이 들었다. 15년이나 줄기차게 운행재개를 주장하던 양주시의 노력은 ‘수도권순환철도망’의 북쪽 구간으로 이어질 예정이라 헛되지 않았다. 다시 4년 전에 섰던, 한탄에 가까운 교외선 풍경을 잠시 돌아보자.

......백마역과 애니골의 통기타를 기억하는 모닥불 세대에게 일영과 장흥은 교외선 열차의 또 다른 행선지였다. 월남 갔던 삼촌이 가져온 야전(야외전축)에 LP 레코드판을 돌리며 고고춤을 추던 열차는 낭만의 이동무대였다. 이제 간헐적으로 고양이나 양주 국군병원의 환자수송을 위한 열차가 지나갈 뿐 녹슬어가는 철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양주사람들의 소망은 지역 언론에서나 뜨겁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복선전철을 깔자”는 이도 있고, “기존 철로를 이용해 도시형 트램을 설치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제안도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능곡, 송추, 의정부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던 ‘서울야경열차’의 추억을 다시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장흥역도 그렇게 쇠락해 갔다. 도시의 욕망이 교외로 삐져나올수록 사람들이 쉬었다가는 풍경이 내밀해져 갔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산자락에 들어서던 모텔의 은밀한 분산은 도시 한가운데서 스크럼을 짜고 들어선 ‘모텔집성촌’의 불야성 앞에 힘을 잃어버렸다. 장흥의 퇴락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것이 ‘장흥 오라이’계획이다. ‘아직은 살아있다. 괜찮다’는 뜻의‘오라이’(All right!)다. 낡은 모텔이 ‘레지던스’로 바뀌고, 장흥역 앞엔 ‘역전다방’‘도깨비꽁방’‘장수사진관’등 주민 친화의 공간이 새로 간판을 걸었다.‘장흥대박협동조합’의 이름을 내건 토박이들이 교외선열차 시대의 부활을 시동 걸었지만 이 또한 힘에 부쳤다......

자전거길은 강둑을 따라가다가 자맥질하듯 강바닥으로 내려앉기도 하며 ‘국가자전거길’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내걸며 간다. 자전거길도 ‘국가 공인 의 길’이라니 가상도 하다.

송추계곡 입구에서 자전거는 말머리고개를 향해 39번 국지도(國支道)로 접어든다. 공릉천의 최장발원지인 사패산 북사면 송추 골짜기와는 헤어진다.

2001년, 사패산터널은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만들면서 마지막 남은 난공사였다. 터널공사 보다 더 큰 난관은 불교계와 환경단체까지 가세한 보성스님의 망루 위 투쟁이었다. 천성산 터널파기와 도룡뇽 멸종론, ‘지율 단식’의 복사판이었다. 2년 여의 공사 중단은 5,800억 원의 피해를 남겼다. 터널은 편도 4차선 세계 최장광폭터널로 기네스북에 올랐고, 고급스포츠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나중에 “후회스럽다. 대안 없고 행동 없는 환경운동은 실패한다.”고 고백한 보성스님은 차라리 ‘비관적 환경론’으로 먹고 살아가는 자들보다 솔직했다.

=꾀꼬리봉, 앵무봉, 개명산, 계명산 그 혼돈

모텔의 사열을 받으면서 헐떡거리며 오른 말머리고개는 제대로 된 양주 땅과 도봉·북한산의 뒷덜미를 구별 짓는다. 꾀꼬리봉, 앵무봉, 개명산, 계명산, 고령산, 이 5개의 이름은 지도마다 제각각인 같은 산의 다른 문패다. 꾀꼬리봉은 말머리재 양쪽에 다 있으니 꾀꼬리가 이 산 저 산을 날아다녔다는 것인지 도시 종잡을 수가 없다. 법원이 판결을 내려야 이름이 제대로 정해지려나. 기산저수지를 지나 마장저수지까지는 줄곧 내리막이다. 꾀꼬리봉에서 출발한 문산천은 꾀꼬리 소리만큼이나 물이 맑다. 영장교에서 목소리를 낮춘 강물은 ‘박달산휴양림’ 앞을 지나가면서는 아기자기한 강둑을 선사한다. 그것도 잠시다. 367번 지방도를 달리다 협동창만교를 지나면 비암천이 합류한다. 거기 2005년에 개원한 ‘벽초지수목원’이 있다. 한국의 미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기자기하게 배치하고 있는 데다 여왕의 정원과 유럽 스타일의 조각공원의 조화가 4계절 자연에 목마른 수도권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LG디스플레이 발 파주의 천지개벽

만장교에서 1번 국도와 만나는 월농교까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한가한 강둑길이다. 

파주역에서 건너오는 옥석교 언저리는 제방 공사를 위해 세워둔 측량 말뚝이 늘어서 있다. 파주의 운명은 물에 따라 결정되어왔다. 1965년 물난리에는 교하와 임월 들판 모두가 잠겼었다. 문산천 둑이 터진 1996년 홍수 때는 ‘강인지 들판인지 구별할 수 없는 황색의 바다’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문산읍사무소를 비롯해 저지대가 전부 잠겼었으니 이 길지 않은 문산천을 국가하천으로 관리하는 큰 이유다.

옥석교 서쪽으로 거대한 성채의 일부가 드러난다. LG디스플레이가 들어선 산업단지다. 강이 재물이라 하니 파주의 운명은 강물이 교차하는 교하(交河)에서 결판나리라. 자유로의 편리한 교통과 가까운 인천공항, 인천항이 물류를 보장한다. 이 거대한 공장을 맞아들였기에 파주는 통일시대를 한 걸음 더 다가서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산업의 위대한 파노라마 앞에 문득 이명처럼 들리는 말이 씁쓸하다. “내 딸이 그 회사에 지원했으니. 살펴만 봐 달라.”고만 말했다니. 이 지역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이가 했던 변명은 청탁 여부를 논하기 전에 이 벌판에서 공허하다.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도 문산천을 드나드는 조수처럼 밀고 썰리기를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로가 빤히 보이는 초입 임월교(臨月橋)에서 정지신호다. 보름밤 갯고랑에 번쩍이는 달빛이나 바라본다 한들 허허로울 일만 남았다. ‘더 이상 강둑길은 있어도 없는 길이다.’

조용연 여행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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