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최종편집:2024-04-24 14:35 (수)

본문영역

한국의 강-공릉천·문산천(고양·양주·파주)①

한국의 강-공릉천·문산천(고양·양주·파주)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5.11 11:06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산 뒷자락 잡고 흐른다, 공릉천인가 곡릉천인가

잃었던 공릉천의 이름을 되찾았다고는 해도 여기저기 곡릉천의 흔적은 여전하다. 장강대하(長江大河)의 용틀임은 그렇다 쳐도 크지 않은 이 강이 똬리를 틀고 가는 건 북한산의 장엄한 기개가 흘러내린 여분의 덕이다. 곡릉(曲陵)이라 할만하다. 송추, 장흥, 일영역의 이름은 ‘청춘의 간이역’이다. 70년대를 최루 연기 속에 보낸 학생들의 낭만은 소박했다. 교외선 열차를 타고 와야 만나는 그 은밀한 골짜기에서 젊음은 포크송과 모닥불 속에 타올랐다. 공릉천과 문산천의 시·종점이 모두 철조망이듯 세월이 가도 분단은 공고하고, 긴장은 조수(潮水)처럼 들고 나는 일상일 뿐이다.

=긴장의 여진이 남은 자유로

아직 떠나지 못한 미명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한강하구를 부여잡고 있다. 불안한 앞날을 닮은 색깔이다. 남북이 거창하게 합의한 긴장대치의 일단 멈춤에서 온 고요다. 송촌교는 한강의 제1지류 하천인 공릉천의 종점이다. 오늘 하루, 이 강의 아랫도리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피해 갈 수 없다. 공릉천 발원지 너머 산맥에 올라서서 문산천까지 돌아 다시 한강 줄기로 와야 하기 때문이다. 대북 확성기방송이 심장을 울리던 파장은 이제 추억 속의 음향이다. 한 번도 맑아 본 적 없는 갯물이 송촌교 아래를 거슬러 올라갔다 빠진 궤적이 움푹 팬 갯고랑이다. 적의 수중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쇠갈고리는 촘촘해서 바람이나 물이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영천 배수갑문까지 3km 남짓한 길은 일부러 포장을 사양했다. 철새를 비롯한 ‘동식물보호구역’으로 남겨놓기 위해서다. 불편을 사랑하면서 아침을 달려가는 자전거들도 명상의 느린 발걸음에 익숙해진다. 남쪽은 심학산(193.5m)이다. 높지 않아 강 자락까지 밀고 나온 신도시의 스카이라인에 가려 있지만 명산이다. 거북이 등을 닮은 자태라서 구봉산(龜峰山)이라고도 한 야산, 궁궐에서 키우던 학이 날아든 산이라 심학산(尋鶴山)이라 개명했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휴휴명당>에서, 동네 사람들이 날마다 올라다니는 뒷동산을 명산으로 꼽은 이유는 송구봉이란 조선조 숨은 거유(巨儒)도 한몫한다. ‘서인(西人)의 장자방(張子房)’이요, ‘노론(老論) 독재 300년의 숨은 왕’이란 평가를 받는 그가 이름마저 구봉으로 개명했다는 명산이다. 가난한 ‘마포신수동출판시대’를 마감하면서 ‘파주출판문화단지’는 제대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알고 잡았는지 모르고 잡았는지 배산(背山)이 심학산이요, 임수(臨水)가 한강이니 이보다 더한 명당이 있을 수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한 생각의 시작이 화두에 있고, 그 생각의 구체적 표현이 글이라 한다면 이를 널리 펴낼 출판의 본산이 명산 아래 강마을이라니 그렇지 아니한가.

벌판이 넓다. 최창조 교수는 <한국의 풍수지리>에서 일찍이 파주 교하의 이 넓은 벌을 통일 한국의 수도 이전에 최적지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교하의 너른 벌 건너편엔 김포 벌판이 마주하고 있고, 한강과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도에서 뻗어 나온 북의 관산반도가 부드럽게 물을 감싸고 있어 국도(國都)로서 손색이 없다는 바로 그 땅이다. 통일의 길은 멀고, 이 넓은 벌에 운정 신도시가 들어서 번호를 붙여가며 한강 가까이로 몸피를 불려가고 있다. 3지구까지 30만에 육박하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다. 돈 때문에 서울에서 밀려 나와서도 서울에 목매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출퇴근은 난리에 가깝다. 허나 한때 미분양의 늪을 헤매면서 멀뚱하게 벌판에 들어서던 ‘운정3지구’는 집값 마라톤의 선두에 나섰다. 2016년 1월에 쓴 첫 원고를 인용해보면 2023년을 목표로 GTX 건설이 확정되었으니 나의 예측은 맞았다. 

......강남 삼성에서 일산 킨텍스까지 추진 중인 GTX 노선을 운정까지 이어 붙이려는 파주의 필사적인 노력도 돈(국가재정) 앞에 가로막혀 있다. 하지만 GTX든 KTX든 결국 파주까지 이어 붙을 것이다. 돈 때문에 밀려난 사람들의 분노도 당당한 한 표의 힘을 갖고 있으니까......

영천배수갑문을 지나면 둔치로 난 자전거길로 내려선다. 말라가는 물은 모래톱을 지날 때 풀이 죽어 흐른다. 둠벙을 닮은 물구비를 지날 때면 물때가 낀 강은 녹색의 팩을 붙인 듯 어둡다.

=덧없는 인간사, 왕조의 그늘 삼릉

봉일천을 지나면 삼릉 입구다. 조선조 예종의 원비(妃) 장순왕후의 공릉(恭陵),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순능(順陵), 영조의 큰아들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비의 영릉(永陵)이 골짜기에 숨어 있다. 삼릉을 ‘비운의 능’이라 부르는 건 세자빈의 신분으로 아들(인성대군)을 낳다 승하한 장순왕후와 왕비 된 지 5년 만에 열아홉 나이로 승하한 공혜왕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놀랍게도 두 왕비는 자매간이다. 궁지기에서 13년 만에 영의정까지 오른 조선조 최고의 경세지략가 한명회의 두 딸이다. 친정의 족보는 자매지만 시댁의 족보는 숙모와 조카며느리로 꼬였다. 얼마나 대단한 힘이었으면 두 딸을 왕비로 만들었을까. 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구중궁궐에서 죽어간 딸들과는 달리 아비는 일흔셋까지 살아, 그즈음으로는 천수를 누렸다. 하지만 그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윤씨 복위 건’이 도화선이 된 갑자사화(甲子士禍)의 칼날 앞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면치 못했으니 참으로 기구한 인생사다.

강물이 보에 막힐수록 늘어난 수량만큼 걸음도 느려진다. 느슨한 보폭 사이에 낀 녹조는 환경론자들이 말하는 하천관리의 중요 공격 포인트다. “가물어서 그렇다. 올해는 ‘마른장마’였다.”는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지천을 비롯해 하천 정비 공사를 부실하게 해서 그렇다”는 목소리가 훨씬 더 힘을 얻고 있다. 언제 녹조가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지영교를 지나면 공릉천은 지방하천의 호적에 들어간다. 강을 건너오는 적의 탱크를 저지하기 위한 장애물 근방에서 군데군데 제방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용치(龍齒)’치료도 함께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1.9m 간격으로 박혀 차량통행도 저지하던 장애물을 강둑에 3m 간격으로 이설하는 작업이니 ‘용잇빨 임플란트’ 작업인 셈이다.

=1번 국도 ‘통일로’, ‘대박로’인가

필리핀참전기념비가 서 있다. 자전거길도 끝난다. 1번 국도가 이미 벼랑을 차지하고 있으니 자전거는 문간방 신세다. 최영 장군의 묘지가 대자리 깊은 골짜기에 있다. 70년대 미제 군복을 물들여 입고 대학을 다니던 내게 대자리까지 오는 버스는 회수권 한 장에 추가 요금을 내면 올 수 있는 유일한 데이트 코스였다. 버스 뒷자리의 소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남북의 분단은 두 번째 과제였다. 군사독재의 시간은 강고(强固)해서 대학가 위수령(衛戍令)과 탱크는 당연한 줄 알았다. 대학 진학부터 경찰을 직업으로 정 조준한 순간, 민주의 이념은 사치였고, 나는 시위를 외면했다. ‘세월이 가다 보니 그 하늘이 그 하늘 같았다.“는 서정주의 시인다운 친일 독백이 그런 심정이었을까. 번호 1번의 국도, 선조대왕의 참담한 몽진길,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며 이름 붙인 길. ‘통일로’는 <7·4 남북공동성명>의 깃발을 단 남북의 검은 세단이 오가던 시간을 겪어내며 늙어갔다. 자유로가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광폭의 여백까지를 거느리고 확장되어 가는 만큼 통일로는 비좁고 남루해져 갔다. 특급열차 ‘통일호’는 보통열차 ‘비둘기호’와 함께 사라졌다. ‘새마을’이 우선이었고, ‘무궁화’는 고급열차에서 3등열차로 주저앉았다. 은하수 담배의 연기처럼 통일호의 기적도 사라져 버린 게다. 통일의 이름이 ’대박통일‘ 앞에서 힘을 얻는듯하더니 정작 이 말을 작명한 대통령은 영어의 몸이 된 지 달력을 세 번이나 바꿨다. 흥부의 꿈은 역시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결판나고 마는 게 인간사 아닌가.

□공릉천(유로연장 45.70km, 유역면적 259.80㎢)
-국가하천(16.05km):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지영리/내유리경계~파주시 교하읍 한강합류점
-지방하천(29.01km):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공릉천 국가하천 기점
-최장발원지: 사패산 북서사면 송추계곡
* 공릉천(한강의 제1지류 하천)
-13개의 제2지류 하천(석현천, 벽제천, 고산천, 장진천, 소리천, 사표교천, 청룡두천 등)과 3개의 제3지류 하천(문봉천, 삽교천, 대위지천) 

□ 문산천(유로연장 29.06km, 유역면적 187.42㎢)
-국가하천(11.60km):경기도 파주시 광탄면과 월롱면 경계~파주시 문산읍 임진강 합류점
-지방하천(15.10km):경기도양주시 백석읍 기산리~문산천 국가하천 기점
-최장발원지: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 꾀꼬리봉 북사면
* 문산천(임진강에 합류하는 한강제2 지류하천)
-5개의 제3지류하천(보광천,비암천,분수천,갈곡천, 동문천)과 2개의 제4지류하천(삼방천,향양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