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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갈 데까지 가보자’는 유혹여야는 우선 선거판에 널브러진 말부터 주워 담아야

선거는 끝났지만 ‘절대적 힘’이 벼랑으로 갈 수도

조용연 주필

선거는 끝났다.

여권도 화들짝 놀란 ‘180석 호언’이 현실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난하던 야권은 이 아침 조용하다. 여권발 쓰나미가 덮친 대한민국의 제21대 총선 결과는 여권마저도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다. 그래도 그게 민심이고, 국민의 선택이다.

지구촌을 강타한 ‘코로나19’ 초대형 재난 앞에서 정부를 중심으로 어떡하든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당위가 그 어떤 이슈도 다 덮어 버렸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여야는 경쟁하듯 액수를 높여가며 호객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이른바 서방 열강이 다 현금카드를 꺼내 들어 면죄부는 공평하게 주어졌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선거를 연기할 때, 우리는 역병의 현실 속에서도 ‘한 표의 민주주의’를 추호도 의심 없이 치러냈다. 마스크와 신분증의 등(等) 가치, 1미터 간격 유지를 위한 인내, 비닐장갑 필수 장비화, 격리자 별도투표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코로나19 선거’의 모델을 창조해 냈다. 당연히 자랑할만하다. 그러나 180석의 힘은 ‘국정운영의 방해자’라고 비난해온 야당을 젖혀두고 개헌만 빼면 뭐든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검찰개혁 관련 법안, 국가재정부담 예산과 기채(起債) 등 현안이 쌓여 있다. 거칠 것 없는 국정의 탄력이 과신의 절벽으로 가는 유혹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력해진 야권 또한 격한 필리버스터나 장외의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열패감에 빠질까 봐 걱정이다.

선거판에 널린 말의 파편, ‘말로 떡을 하면’

사람은 우선 말로 의사표시를 한다. 생각은 말이고, 말이 글이 된다. 글은 그나마 정제되지만 말은 마구 살아서 입 밖으로 뛰쳐나온다. 선거도 ‘말’이 무기다. 포연속에서 난무하는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 후보의 가슴을 찌른다. 선거에서 위트나 촌철살인의 정곡을 찌르는 기대하기도 어렵게 되어버렸다. 싸움이 끝난 전장에는 ‘말의 파편’과 ‘말의 불발탄’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표가 된다고 생각되면 별의별 말을 다 했다. 희한한 공약까지도 했다. 거친 말의 성찬이 어느 말도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를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어릴 때 어머니는 공부하지 않고 나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내게 회초리를 들었다. 내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싹싹 빌며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성적을 올리겠다.”고 둘러대면 “야 이놈아, ‘말로 떡을 하면 조선이 먹고도 남아’. 입만 살아가지고...”라며 마저 종아리를 때렸다.

그리고 6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말로 떡을 하면....’은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경구가 되어버렸다. 이제 당선자는 당선자대로 선거판의 말을 주워 담아야 한다. 공약이라는 문서화 된 말을 실천해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상대에게 한 말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아량도 말을 주워 담는 것이다. 유권자는 당선자의 공약을 기억해야 한다. 당선자의 유인물을 다이어리에 붙여놓자. 그가 어떤 턱없는 공약을 했는지. 표만 된다면 자치단체장이 해야 할 일까지 공약하고, 국가발전 계획에 따라 집행되는 예산을 “내가 끌고 왔다”고 숫가락을 노골적으로 얹는지 그 몰염치를 감시해야 한다.

견고해진 ‘지역주의’ 철옹성, 망국적 ‘우리끼리’

이번 선거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전근대적인 지역구호가 제대로 먹혀버렸다. 달빛동맹까지 맺어가며 어깨동무를 하던 영·호남은 난공불락의 성벽이 되어버렸다. 인물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지역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저 한 사람의 우리 편을 뽑는 데 불과했다. 여주·양평 지역구는 신인들의 대결이었으니 아예 공약 이행의 성적표는 매길 수 없었다. 자연히 지연(地緣)에 호소하며 배타의 울타리를 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었다. 아들딸이 여주에서 태어나도 외지에서 흘러들어왔으니 ‘타관바치’라고 한다면 이 ‘편협과 폐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 따지면 농촌 지역에 심지어 네댓 개 군이 묶인 지역구는 저마다 다 타관 사람이 아닌가. 당선이 절박한 유세에서 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말의 파편’을 주워 담아야 한다. 유권자 앞에 엎드려 간절히 ‘한 표’를 부탁하던 그 절실함으로 매일매일 돌아가야 한다, 90도로 허리 꺾어 절하던 목마름으로 선거구민과 눈 맞추어야 한다, 갑의 금배지를 감격스럽게 달더라도 목이 쉬도록 ‘충복(忠僕)’이 되겠다던 겸손을 잊지 말 일이다.

조용연 주필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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