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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재난기본소득과 현덕
장주식 작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세계대전보다 심각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군대가 동원되어 방역을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인류를 늘 위협하는 건 전쟁, 기아, 역병이라고 합니다. 싸우다 죽고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것이죠. 일시적으로 수많은 인명을 죽음으로 물고 가는 건 전쟁이나 기아보다 역병이라고 합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을 때 원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건 총칼이 아니라 유럽인이 옮긴 전염병이었음이 이미 알려져있지요.

우리나라 예를 봐도 그렇습니다. 조선 16세기 선조대 임진왜란으로 희생된 수는 46만 명정도인데 17세기 숙종대 전염병으로 죽은 인구는 14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140만은 당시 조선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18세기로 막 넘어가는 현종대에는 경신대기근으로 굶어 죽는 인구가 거의 1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도랑과 들판에 역병에 걸려 죽은 시체가 쌓이자 숙종은 “차라리 나도 병에 걸려 죽어 아무것도 모르고 싶다.”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전염병이 온 나라를 덮친 지금 지도자들은 대책에 골몰합니다. 작은 도시를 맡은 기초자치단체장부터 좀 더 큰 지역을 많은 광역단체장은 물론 나라를 통째로 맡은 대통령까지 다양한 지도자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애를 끓입니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니 생산에 차질을 빚고 나라 경제가 기우뚱거리고 사람들 호주머니는 비어갑니다. 빈 호주머니는 소비에 나설 수 없습니다. 역시 생산이 멈춥니다. 이 악순환이 진행되면 나라 전체가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지요.

그래서 지자체나 정부에서는 국민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세웁니다. 재난을 이겨내자는 재난기본소득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를 두고 온갖 총명한 지혜들이 동원됩니다. 세금감면, 대출지원, 대출 보증, 현금지원 등등 갑론을박이 나옵니다.

하지만 크게 나누면 보편지원이냐 선별지원이냐 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선별지원은 복잡한 경제이론과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합니다. 지원이 필요한 대상, 액수를 산정해야 하고 각각 지원 대상에 따른 효과까지도 계산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보편지원은 아주 단순합니다. 대상이 단일하고 효과도 계산하기 쉬우니까요.

여기서 노자의 말을 하나 들어봅시다.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는 건 오히려 나라를 해치는 일이며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아야 나라의 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안다면 다스리는 자의 법을 헤아렸다 할 것이니, 늘 다스리는 자의 법(계식 : 稽式)을 알고 있음을 ‘현덕’이라 한다.”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다스리는 자의 법이라 불리는 계식(稽式)을 늘 갖고 있어야 한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계식이란 총명한 지혜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듯 보이는 바보스러움으로 행한다고 노자는 덧붙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재난기본소득의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이 바로 총명과 우직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별지원이 매우 총명해 보이지만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서울시에서는 중위소득 100%이하 가구에 30만원부터 5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인 가구 월 중위소득은 약 175만원입니다. 1인 가구는 30만원씩을 주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소득이 176만원 1인가구는 30만원을 못 받습니다. 175만원 가구는 이제 200만원 넘는 소득을 올리지만 176만원 가구는 그대로입니다. 이런 역전현상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을 보편지원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1300만 경기도민 개개인에게 10만원씩을 주겠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역전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기준에 맞추기 위한 불법이나, 기준에 따른 불만도 대폭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대상을 선별하기 위한 막대한 행정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선별지원은, 선별하기 위한 행정비용과 지원받지 못하는 이들의 불만까지 겹쳐지면 그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뭔가 총명하게 일을 처리하려다가 일을 망치는 꼴이죠. 단순무식하고 우직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못하게 된다는 겁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도 왜 10만원을 주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노자에게 하라고 해 봅시다.

“현덕은 깊고 아득하여 보통 사물의 이치와 상반된다고 여기지만, 현덕이 있은 뒤에 ‘위대한 순리’에 이르게 된다.”

현덕은 계식을 행하는 지도자가 가진 덕입니다. 현덕은 사물의 일반 이치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답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버는 사람에게 10만 원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일반 이치에 어긋나 보이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이 바로 현덕이라는 겁니다. 깊고 아득하고 그윽한 덕. 마치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순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겁니다. 선별지원과 보편지원을 두고 위대한 순리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노자 도덕경 65장 : 古之善爲道者(고지선위도자)는 非以明民(비이명민)하고 將以愚之(장이우지)하였다. 民之難治(민지난치)는 以其智多(이기지다)이니 故以智治國(고이지치국)은 國之賊(국지적)이요 不以智治國(불이지치국)이 國之福(국지복)이라. 知此兩者(지차양자)이면 亦稽式(역계식)하나니 常知稽式(상지계식)을 是謂玄德(시위현덕)이라한다. 玄德(현덕)은 深矣遠矣(심의원의)하여 與物反矣(여물반의)이나 然後乃至大順(연후내지대순)하나니라.>

옛날부터 도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밝고 총명함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바보처럼 하였다. 사람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내가 아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는 건 오히려 나라를 해치는 일이며 지혜로움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아야 나라의 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안다면 다스리는 자의 법을 헤아렸다 할 것이니, 늘 다스리는 자의 법(계식 : 稽式)을 알고 있음을 ‘현덕’이라 한다. 현덕은 깊고 아득하여 보통 사물의 이치와 상반된다고 여기지만, 현덕이 있은 뒤에 ‘위대한 순리’에 이르게 된다.

<!>게재 순서는 63장이나, 최근 얘기되고 있는 재난기본소득 관련 이야기를 담은 65장을 먼저 싣고 63장과 64장을 싣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장주식 작가  yeoju@yeoj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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