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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중랑천(양주·의정부·서울)①

한국의 강-중랑천(양주·의정부·서울)①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4.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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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중랑천은 익숙한 이름이다. 홍수가 나면 제일 먼저 차단되는 둔치, 도심으로 들고 나는 동부간선도로의 차량정체도 묵묵히 이겨내는 강, 이른 새벽 에어로빅으로 하루를 여는 서민들의 놀이터가 강 따라 마을마다 펼쳐져 있다. 일찍이 서울의 동부 외곽은 모두가 양주 땅이었다. 오늘날 노원구의 전신은 양주군 노해면(蘆海面)이었다. 갈숲이 얼마나 넓었으면, 갈꽃이 얼마나 지천으로 눈부셨으면 갈대의 바다라 했을까. 중랑천이 있어 서울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도봉, 수락, 불암 사이를 넉넉하게 안겨 한강으로 갈 수 있다.

중랑천, 양주 불곡산에서 출발하다

경원선 덕계역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불곡산(466m)은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양주의 진산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뒤태다. 자전거로 나서는 전철역 앞은 들판 길과 시냇물이 그야말로 휘 감돌아 나간다. 중랑천의 시발이 바로 불곡산 아래 찬우물개골 마을이다. 산북동으로 가는 3번 국도는 깎아대고 밀어내서 분수령조차 희미하다.

한북정맥이 흘러내리다 도봉과 북한산으로 이어지기 직전에 발끈 솟아올라 양주땅을(옛 주내읍)을 내려다본다. 불곡산의 또 다른 이름이 상투봉을 품고 있는 불국산이다. 부처가 있는 골짜기라면 거기가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불곡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중랑천은 냇가에 들어선 집과 공장들로 어수선하다. 원래 중랑천은 대나무 잎이 나뭇가지에 부딪는 소리를 일러 ‘죽랑’(竹浪)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짧은 여정을 산북교에서 출발한다. 냇둑으로 들어서자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이 적막하다. 수도권 전철의 경원선 종점인 소요산으로 가는 열차가 정적을 가른다. 떼를 지어 자전거 길로 달리는 사람들의 이정표도 덕계, 덕정을 지나 동두천, 소요산까지다.

겨울 자전거 타기의 가장 큰 적은 추위가 아니다. 얼어붙은 빙판이 주적(主敵)이다. 추위쯤은 가벼운 복면 한 장이면 해결된다. 모두들 얼굴을 가렸다. 이젠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용서되는 보편적 복장이다. 미이라처럼 얼굴을 싸맨 질주는 한참 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복면시위와 오버랩 된다. 확신에 차 있으나 당당하지 못한 복면, 가면의 익명성에 숨은 고집은 폭력과 친한 오만이다. 국회에서 발목 잡혔던 <복면금지법>은 무력하게 폐기되었다. 이 겨울 자전거의 복면은 자연에 대한 방어이지만, 광화문의 복면은 세상에 대한 공격이다.

부대찌개가 태어난 의정부

양주 백석 꾀꼬리봉에 내린 비는 서쪽으로 흐르면 공릉천으로, 동쪽으로 흐르면 어둔천을 따라 의정부 녹양지구 못 미쳐 중랑천에 합류한다. 양주는 도봉의 웅장한 등판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철원에서 흘러내리던 한북정맥은 불곡산(466m)에서 한번 숨 고르기를 하고, 사패산(552m)에서 뜀틀의 반동을 받아 단숨에 도봉(740m)에 올라탄다. 철원·김화 쪽에서 내려오던 포천 왕방산 줄기도 소흘읍을 지나면서는 300m 대의 천보산맥을 이루어 의정부의 북쪽 능선이 된다. 축석고개서 별내면과 경계를 이루는 200m대의 이름조차 없는 산줄기 또한 의정부를 분지로 만드는 마침표다. 의정부 본바닥은 협소하다. 신도시가 송산, 민락지구로 동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땅에 부대찌개를 낳은 미군 기지들이 시내의 군데군데를 점하고 있다 보니 의정부는 이래저래 오밀조밀해졌다. 김치찌개에 넣을 소기름 한 토막이라도 더 얻으려고 육곳간(정육점, 경상도 쪽에서는 꼭 ‘식육점’이라 한다)에 머리를 조아리던 시절 할로(미군)들이 먹다 버린 소시지와 햄 조각은 ‘꿀꿀이죽’ 시대를 넘어 부대찌개가 되어 대중 음식의 정점에 등극했다. 입맛이란 세월이 변해도 쉽게 변하는 게 아니어서 대를 이어 롱런하는 토속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의정부부대찌개골목’을 들렀다 가기엔 시간이 어정쩡하다.

갈대의 바다, 노해면이 그립다 

중랑천을 “유장한 강물에 속삭이는 갈잎의 노래라는 표제를 붙이고, 서울의 명산을 꿰고 흐르는 강북의 큰 물줄기”라고 쓴 김병훈 작가의 묘사는 정확하다. 도봉과 북한산 연봉이 서쪽 하늘에 하얀 성채의 능선을 이루고 동쪽으로는 수락산의 암벽이 노원벌을 옹위한다.

중랑천은 그렇게 한강으로 가는 물길을 넓히면서 평균 150m의 강폭을 유지한다.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긴 해도 이 갈대숲은 원적이 노해면(蘆海面)이다. 갈대 노(蘆)가 어근이다.

일제 강점기에 노원면(蘆原面)과 해등촌면(海登村面)이 합해져서 얻은 이름은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며 노해면이란 이름을 잃어버린다. 1988년에야 도봉구에서 떨어져 나와서 노원구란 본래 이름으로 되돌아 왔다.

양주군 노해면 출신의 내 직장상사는 늘 갈대밭이 펼쳐진 중랑천 변을 그리워했다. 갈대밭에 서걱 이는 갈꽃의 군무가 유년의 기억을 강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장관이었으면 ‘갈대의 바다’라고 했을까, 그 아름다운 작명은 지금 나마저도 설레게 한다.

창동, 방학동 언저리에 이르면 중랑천은 한내(한천)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건 어릴 적 이름, 아명(兒名) 갖은 것이기도 하다. 아명은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던 시절이 있었다.  새끼의 목숨을 칠성님께 빌고, 시렁 위 성주님께 올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아비와 어미는 홍역이나 견뎌야 그저 제 자식 산목숨이라 여겼었다. 새끼가 수명 장수할 수 있다면야 뭐든 못할까. 집에서 이름 따로 호적 이름 따로였다. 제 태어난 날보다 1~2년이 늦게 호적에 올라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생일을 이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기야 호적이란 이름도 가족관계부란 이름으로 한참 전에 바뀐 세상이니.

서민들이 만든 노원, 이제 변두리가 아니다.

한 시절 그다지 주변머리 없는 공무원들은 주소가 모두 노원구였다. 공무원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입주를 주선한 정부 시책의 은전(恩典)이었다. 더러는 수단을 발휘하여 좀 더 4대문 가까운 곳으로 이주했지만 한강을 잽싸게 건너 강남사람이 되는데 성공한 이는 드물었다. X자로 뻗어간 서울지하철 4호선 종점인 당고개는 서울의 숱한 지하철역 이름 가운데서도 유난히 촌스럽다. 좋게 말하면 토속적이고, 서정적이다. 당산이 있고, 당집이 있던 양주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였다. 

상계동은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민초를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이 쉬이 넘보기 좋은 큰 골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계동과 하계동은 강남을 제외하면 내로라하는 학군들도 무색하게 공부 잘하는 마을로 꼽힌다. 공무원의 밀도와 내 자식에게만은 못 배운 설움을 물려줄 수 없다는 서민들의 결연한 의지가 이곳을 강북의 사교육 메카로 만들었다. 아파트값도 학군과 학원에 따라 등락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창동 지하철 기지가 들어서고, 도봉면허시험장이 들어서던 시절, 거긴 노해면 그 이름처럼 갈대밭이었다. 이제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 거대한 공간은 도시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오래도록 이전 압력을 받은 끝에 의정부로 옮겨가기로 했다. 별내로 진접으로 밀려난 서울사람들의 연결고리를 위해 결국 수락산에 4호선 지하철 연장선 터널을 뚫기에 이르렀다.

□ 중랑천(하천연장 34.52km, 유로연장 36.44km, 유역면적447.77㎢)
-지방하천: 양주시 산북동~의정부시 하촌동 중랑천 국가기점
-국가하천: 중랑천 국가기점~서울 성동구 금호동 한강합류점
-발원지: 양주시 산북동 불곡산(불국산) 동사면
* 중랑천의 지류하천
-16개의 제2지류하천(우이천, 청계천 등)과 8개의 제3지류하천(민락천, 정릉천 등)1개의 제4지류하천(월곡천)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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