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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말을 호구로 보지 말고 톺아보라

칼럼- 말을 호구로 보지 말고 톺아보라

  • 기자명 최새힘 작가
  • 입력 2020.04.06 11:32
  • 수정 2020.04.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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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새힘 작가

 뜻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함부로 사용하다 보면 본래의 뜻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듣는 사람은 같은 이유로 대강 짐작하여 이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관련이 있는 다른 뜻으로 번져나간다. 잘못된 용법으로 말을 쓰면 무의식적으로 의미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말이 풍부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외가 생겨나는 것이니 그 말을 배우고 써야 하는 사람은 외워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결국에는 본래의 뜻을 알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범의 아가리’를 가리키는 호구(虎口)는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로 ‘호구에 들어가다’, ‘호구에서 벗어나다’, ‘호구에 걸리다’, 또는 ‘호구를 잡다’와 같이 쓴다. 하지만 이 말이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인식되면서 ‘호구로 보거나 알다’, ‘호구가 되다’와 같은 용법으로 쓰게 되었다. 사실 어떤 사람을 범의 아가리로 보거나 안다면 이는 ‘대단히 무서워하다’의 의미여야 합당하고, 또 범의 아가리가 되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는 힘을 가지다’로 이해해야 할 터인데 정작 반대의 뜻으로 널리 퍼지게 되면서 결국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격식을 갖춘 곳에서는 이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비속어나 은어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말은 온전히 언중(言衆)의 것이라서 쓰는 대로 의미를 사전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게 의미 관계를 추측할 수 있어야 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렇게 완전히 반대의 뜻을 용인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이런 경우는 뜻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용법을 바로잡는 것이 합리적이다. 호구로 알거나 된다고 하면 ‘아이고, 무서워라!’라고 응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말의 뜻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화하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죽은 말을 다시 되살려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원칙은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있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말을 번잡하게 하지 않고 생각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톺아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톺다’와 ‘보다’를 결합한 것이다. ‘톺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1) 삼 따위를 삼을 때 짼 삼의 끝을 가늘고 부드럽게 하려고 ㄷ자로 만든 금속에 나무로 손잡이를 달아 甘자처럼 만든 삼톱으로 누르고 긁어 훑다, (2) 가파른 곳을 오르려고 매우 힘들여 더듬다의 두 가지로 쓴다. 그러므로 ‘톺아보다’는 꾹꾹 눌러가며 긁어내며 보는 것이니 이보다 더 센 말을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사전에서 이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1)에서 (2)의 뜻으로 번져 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톺’ 이전에 ‘톱’이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삼톱이 없을 때에는 간단히 손톱으로 삼는 일을 했지 않았겠나! 톱은 ‘힘을 주어서 누르거나 긁을 수 있는 단단한 부분’을 뜻한다. 그래서 강원도 사투리에서 ‘톱다’는 손발톱을 자르는 것을 말한다. 나무를 자르는 톱니는 작지만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야 했으므로 기술이 발달한 후에나 만들 수 있던 공구였음이 분명하다. 또 톱이 들어가는 말 중에는 ‘모래톱’이 있는데 다른 말들을 종합해보면 모래가 쌓인 물가에 땅이 아니라 물이 모래를 긁고 흐르는 땅임이 분명하다.

 ‘톺아보다’는 정말 좋은 말이고 꼭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형성한 과정이 쉽게 이해가 된다면 ‘톺아보다’와 같은 말을 되살려 쓸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의미도 분명히 알 방법도 없고 그냥 외워서 대충 써야 하는 짐이 하나 늘어나는 꼴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언중이 쓰는 대로 말을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톱’에서 ‘톺’이 나온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말을 제대로 가꾸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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