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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최선은 없다, 차선(次善)도 없다면

여강여담- 최선은 없다, 차선(次善)도 없다면

  • 기자명 조용연 주필
  • 입력 2020.04.0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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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치허무’는 안돼, 차악(次惡)이라도 골라 투표해야

방역통을 메고 ‘쇼’를 하지만 선거 끝나면 ‘갑’이 되는 정치

조용연 주필

이제 표를 던질 날이 일주일 남았다.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면 50cm에 육박하는 투표용지의 엉뚱한 데다 도장을 누를 수 있다. 그 이름이 그 이름같이 짜깁기한 정당 이름도 중얼중얼 외우고 가지 않으면 깜빡할 수도 있다. 

이제 내 속을 스스로 다져보아야 한다. 촛불과 태극기가 제각각 옳다고 외치며 충돌한 광화문광장의 가치와 진정한 국민 ‘통합과 공존’이 얼마나 구현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최소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 한다고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으니 나는 국정지표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도 돌아보아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정책은 국민의 삶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탈원전’은 진정 우리의 미래 에너지주권을 보장하는지?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외교·국방정책은 과연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현하는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21대 국회의원선거는 이념과 이해의 첨예한 갈등에 더하여 코로나의 공급으로 인해 2m 간격으로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로 투표장에 들어서야 한다. 악수도 못 하는 비대면 선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굽실거리는 후보를 교차로에서 잠시 본 것 외에 별반 아는 게 없지 싶다.

당선되면 ‘갑’이 될 후보를 경계해야

유권자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포함해 서너 달 남짓 유권자는 ‘갑’이지만 선거판 그 축제가 끝나고 나면 민초인 ‘을’로 돌아갈 것이다. 

민주의 이름으로 직접 투표함에 한 표를 던지는 그 시간이 지나면 ‘국민신뢰도’ 꼴찌의 국회의원에게 현실의 명예와 권력은 이양된다. 그 독점적 지위를 우리는 앞으로 4년간 어쩌지 못한다. 의원님의 헌신과 열정이 발현되면 안도하지만 속을 끓이며 후회해 본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후보자의 면면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상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얼마나 요동치는 글로벌 정치, 경제, 문화, 환경인가? 역병 하나로 드러난 세계의 민낯에서 무엇을 깨닫고 있는지. 국회서 잔뼈가 굵어졌다는 선수(選數)가 문제가 아니다. △신인이라고 다 신선한 것도 아니다. 부박한 쪼가리 정치 지식이나 적대 과잉으로 뭉친 신인은 중고신인에 불과하다. △학벌이나 현란한 경력으로 분칠 한 무슨 무슨 위원회 참여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려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며 학업을 성취한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소신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자기가 한 말을 뒤집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SNS가 지배하는 세상 아닌가?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는 이 시점이야말로 철저하게 검색의 미로를 뚫고 헤쳐나가 그의 식견과 양심과 대면해야 한다. △대면 선거운동이 어렵다 보니 후보자가 만든 유튜브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돈을 들여 만든 현란한 음향과 영상기법에 취하지 말고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 봐야한다. △평소 ‘국민’나 ‘민족’이란 말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후보에 속지 말기 바란다. 상당수가 국민을 내세우면서 자기 이해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툭하면 문자를 보내 내가 우리 지역에 다리를 건설하고, 고속도로 나들목을 냈다는 둥, KTX 열차를 정차하도록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공치사하는 후보는 경계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쪽지예산’의 징표다. “당신이 우리 지역에 해놓은 게 뭐냐?”고 유권자가 줄기차게 다그친 결과다. 

국회의원은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을 위한 입법기관이지 전국 무대 브로커가 아니다. △좌파냐고 물어보면 신경질을 내고, 우파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는 후보는 필요 없다. 그의 마스크를 벗겨 볼 수 있는 기회다. 차라리 당당하게 좌든 우든 가치를 철저하게 신봉하고, 구현하겠다는 당당한 커밍아웃에 한 표를 던지시라. △선거법 개정으로 유권자가 된 ‘낭랑 18세 교복유권자’를 환영하지만 솔직히 어른들의 부끄러운 진흙탕 정치판에서 걱정이 앞선다.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기성세대의 말에 휘둘리지 말기 바란다. 당장 먹기 좋은 ‘당의정’ 공약, 포퓰리즘이 언젠가는 그대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리라는 인식을 해야 현명하다. 

“주체적 자아로서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꿈을 이뤄주는 나라를 만드는 해법을 공약하는 자”가 그대의 후보다. △여유가 된다면 ’인물 됨됨이‘를 가려낼 수 있는 관상도 잘 봐둬야 한다. ’꼼수와 반칙’에 누가 더 충실했는지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정치 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어차피 최선은 없다. 차선(次善)도 없다면 차악(次惡), ‘덜 나쁜 그’를 고르는 의식이다. 대충 찍거나 투표장에도 안 가면 다가올 4년간 ‘불평할 자격’마저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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