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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담 -공무원을 변명하다‘일하다 깬 접시’ 불문에 부친다지만 결국 본인 책임

‘동네북’ 된 공무원도 할 말은 있어, 규정 따라야 안전해

조용연 주필

몇 해 전 일이다. 막 순경 계급을 단 아들이 징계를 먹게 되었다고 아버지는 울상이었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 운전자가 하도 사정하기에 불쌍해서 범칙금 만원에 해당하는 ‘혼잡완화조치 위반’조항을 적용해 고지서를 발부했단다. 며칠 뒤 감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운전자가 경찰관의 고마운(?) 조치를 자랑삼아 SNS에 올려 사달이 난 것이다. 결국 ‘계고’를 받고 나서 그 아들은 그로부터 ‘내 사전에 국물은 없다’라고 법 집행의 원칙을 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위반 사실을 적용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하지만 세상사에 국물이 없으면 밥이 뻣뻣해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오죽하면 “너 임마, 국물도 없어”라는 말이 심한 욕이겠는가.

이렇게 공무원은 점차 딱딱한 자기만의 잣대를 지니고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다.

코로나의 공습으로 경제가 잘 안 돌아갈 때,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자, 혁신성장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는 ‘투자지원캬라반’을 만들어 현장의 애로를 방문해 해결해 준다거나 신제품, 서비스 출시 때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해 주겠다고 “규제샌드박스‘를 발표하지만 현장에서는 보신주의 공무원들의 관할 다툼이나, 늑장 대응 때문에 속이 타 죽겠다고 하소연이다.

역대 정권들도 그랬다. ’복지부동‘ 하거나 ’복지안동(伏地眼動)-바짝 엎드려 눈치만 살피기‘ 하는 공무원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직무감찰 활동을 한다. 움직이는 척은 하지만 업무처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급기야 정부는 각급 회의를 통해 ”일하다 보면 접시를 깰 수 있다. 접시를 깬 불찰을 불문에 부치겠다.”고 선언하지만 공무원들은 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시한 사람은 가고 종국에 남은 것은 서류 더미를 안고 감사원 감사관 앞에 불려가야 하는 담당 공무원 자기뿐이라는 사실을,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재난 문자, 다 이유 있어

휴대폰 화면에는 빨간 핀의 알림 문자가 뜬다. 코로나19의 발생 사실과 동선추적 내역을 낱낱이 알려준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강풍주의보를, 날씨가 조금 건조해도 산불주의보를 시도 때도 없이 날려 보낸다. 경상도에서 발생한 진도 2의 지진을 수도권까지 일일이 알려 준다. 어떡하라고? 그러나 공무원들은 안다. ’메르스사태‘ 때 방역 소홀로 징계를 먹은 동료의 통증을, 강풍주의보를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날려 놓으면 욕이야 잠시 먹으면 그만이지만 부작위에 대한 책임만은 면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은 어떤가. 국토개조의 전선에 섰던 공무원들은 지금껏 두고두고 시달린다.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막연하다 못해 뜬구름 같고, 당장 중죄의 원흉이 되어버린 사실을 공무원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그러니 국회 답변에도 ’4대강‘ 이름을 댔다가는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해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일일이 나열하는 한심한 장면도 공무원의 생존본능에서 비롯되었다.

직권남용죄는 또 어떤가. 직권남용죄는 원래 기소율 0%대 (2019년 14,599건 고소·고발 중 19건만 기소)의 사문화 직전의 조항이었다.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직권과 남용은 판단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개념이다. 전 정권의 고관을 포함해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까지 줄줄이 직권남용죄로 법정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생긴 적폐청산 트라우마에 일선 실무자까지 이미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일 좀 한다는 것은 직권남용죄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라는 법정의 진술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환난에 빠진 국민을 구휼(救恤)하는 보조금, 그것이 현금이든 현물이든 이 시대에 이루어지는 긴급한 조치 모두가 ’포퓰리즘‘의 범주에 들어 언젠가는 다시 감사의 도마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현장 공무원의 후각은 각종 신청서에다 꼼꼼한 증빙 서류까지 더 많은 요구를 해 올 것이다. 그들도 살기 위한 방책으로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적기집행, 신속조치는 물 건너 가기 쉽 다.

‘걸면 걸린다’는 이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 주어야 공무원이 스스로 ’창발적 행정‘을 찾아 나서게 된다.

조용연 주필  yeoju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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