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와생활 여주초대석
장주식의 노자와 평화 60.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장주식 작가

청소년소설 한 대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일어서는데 입안에 벌써 피 맛이 돌았다. 바닥에 부딪칠때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코너는 몸을 일으키면서 못 먹을 게 입에 들어왔을 때처럼 바로 뱉고 싶게 만드는 낯선 쇠 맛에 정신을 집중했다. (중략) 새 학기 첫날, 해리는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코너의 발을 걸어 바닥에 고꾸라뜨렸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계속되었다.>

 

미국 작가 페트릭 네스가 쓴 작품 『몬스트 콜스』의 발단 부분입니다. 

주인공 코너는 굉장히 약한 존재입니다. 몸집도 작고 육체적인 힘이 약할 뿐 아니라 가정환경도 불안합니다. 이혼한 아빠는 다른 도시에 가 있고 같이 사는 엄마는 암에 걸려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해리를 두목으로 한 패거리들은 끊임없이 코너를 괴롭힙니다. 넘어뜨리고 때리고 ‘대머리 엄마’는 잘 있냐고 놀리기도 합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코너의 엄마를 대머리라고 놀리는 것이죠.

 

코너는 변변하게 저항조차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단짝 친구인 릴리가 도와주려하지만 코너는 오히려 릴리에게 화를 냅니다.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들키니 더욱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코너는 자주 악몽을 꿉니다. 그런 코너에게 어느 날 몬스트가 찾아옵니다. 거대한 나무괴물 말입니다.

 

노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한다.”

 

여기서 작은 생선에 주목을 해 봅시다. 작은 생선은 몸집이 작은 만큼 잘못 요리하면 상처가 나기 쉽습니다. 

상처가 나지 않게 정성을 들여 요리해야 생선이 가진 진미를 오롯이 간직할 수 있겠지요.

 

인용한 소설에서 주인공 코너는 ‘작은 생선’과 같습니다. 상처 입기 쉬운 대상이죠. 그런데 해리 일당은 코너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한 대상, 상처를 입어도 잘 견디는 대상에게는 오히려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약한 대상, 작은 상처에도 큰 위협을 받아 넘어지기 쉬운 대상에게 더 집요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자에 따르면, 그런 행위들은 서로를 망치는 길입니다. ‘덕이 서로 사귀어 평화로 돌아가는 것’과 아주 반대로 가는 길이죠. 약한 대상을 계속 괴롭히는 행위는 ‘귀신에 씌인 듯’하여 타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타고난 선한 본성은 억누르거나 잃어버리고 악한 본성은 극대화하여 타인에게 상처 주는 행위는, 마침내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약한 대상을 계속 괴롭히는 행위는 자신을 해치는 행위와 다를 바 없습니다.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느끼는 쾌감은 반드시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그 행위가 정당하지도 않고 사람다운 바른 길이 아니기에 불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하여 폭력 행위는 지속되어야 하고, 강도는 점점 세어집니다.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되돌아올 수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바른 길로 세상에 임하면, 귀신조차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사람답게 사는 바른 길이란 무엇일까요? 타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타자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타자의 행위를 내 행위로 받아들이는 공감력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공감하면 누군가도 나에게 공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서로가 덕으로 사귀게 되어 함께 평화로워질 테고요.

 

인용한 소설에서 해리가 코너의 슬픔을 공감한다면 행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약한 코너를 괴롭히는 폭력은 언젠가는 해리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노자도덕경 60장 : 治大國(치대국)도 若烹小鮮(약팽소선)하니 以道莅天下(이도리천하)하면 其鬼不神(기귀불신)하나니라. 非其鬼不神(비기귀불신)이며 其神不傷人(기신불상인)하나니 非其神不傷人(비기신불상인)이며 聖人亦不傷人(성인역불상인)이라. 夫兩不相傷(부량불상상)하니 故德交歸焉(고덕교귀언)하나니라.>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작은 생선을 요리하듯 하나니, 제 길로 천하에 임하면 귀신도 신령한 힘을 부리지 않는다. 

사실 귀신이 신령스런 힘을 부리지 않음이 아니라, 신령한 힘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며, 아울러 귀신이 신령스러움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인 역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귀신과 성인이 서로 사람을 해치지 않으므로 덕이 서로 사귀어 평화로움으로 돌아가게 된다.

편집국  yeoju5@daum.net

<저작권자 © 여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