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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북한강(화천·춘천·가평·남양주·양평)②

한국의 강-북한강(화천·춘천·가평·남양주·양평)②

  • 기자명 조용연 여행작가
  • 입력 2020.03.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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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명경수, 분단 넘어 천리 길

북한강은 금강산 비로봉에서 발원한다. 그야말로 금강(金剛)의 물이다. 북한 땅 강원도 창도의 금강산댐을 지나 휴전선을 넘고, 파로호, 춘천호, 의암호에 이르러 또 한줄기 북녘에서 출발하는 인북천의 물줄기를 이어받은 소양강과 합류한다. 거대한 물줄기다. 안개에 싸인 호반 도시 춘천과 세계의 명소가 된 남이섬이 풍요로운 수변 풍경으로 탄생했다. 이 물을 가두어 아끼지 않으면 서울이, 수도권의 목이 탄다. 두물머리에서 껴안는 남·북한강의 포옹이야말로 가슴 벅찬 하나됨이다.

김유정역을 만든 새 경춘선, 소설과 영화 ‘만무방’

강촌교에서는 자전거길에서 올라붙어 다리를 건넌다. 나이롱 굴로 지나가는 옛 경춘선은 폐선이 되어 레일바이크 놀이터가 되었다. 강변 풍치를 더 망가트릴 수 없어 춘천행 복선 경춘선은 백양리역을 기점으로 더 내륙깊이 터널을 빠져 나간다. 춘천시 신동면 방향이다. 이즈음 핫한 정거장 ‘김유정역’을 떠올리는 것이 쉽다. 1930년대 소설가가 나풀거리는 문체로 나른한 봄과 산촌의 서정과 사랑을 노래한 것은 드문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실레마을이 그 무대다.

그의 대표작, <봄봄>,<동백꽃>,<산골나그네>는 고교교과서 단골 용도다. <만무방>은 색다르고 낯선 이름이다. ‘체면도 염치도 없이 막 되먹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내 기억의 만무방은 1994년 작 동명 영화<만무방>에 있다. 김유정과는 상관이 없다. 오유권의 소설<이역의 산장>이 원작이다. 그럼에도 6.25 전쟁과 눈 덮인 산골 오두막에 숨어든 네 사람의 본능과 갈등이 지금도 청백색 눈 언덕과 어둠 속에서 일렁거린다. 

만무방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이 영화를 만든 엄종선 감독이 나의 고종형(큰고모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영문과를 다니다 서라벌예술대로 건너가 영화판에 뛰어든 형, 강대진, 김수용 감독 아래서 고되고 오랜 조감독 생활을 했다. 이대근, 원미경이 주연한 ‘변강쇠’가 히트해 그나마 집 장만도 했으나 대종상 6개 부문 수상, 마이애미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작인 만무방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어 했던 그는“영화는 상을 받았지만 관객에겐 외면 당했다.”고 흥행 참패를 한탄했다. 백양리역, 옛 경강역을 지나는 동안 강변 자전거길은 그냥 무심하다. 방해받지 않은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도 무방하다.

섬의 변신, 자라섬과 남이섬

경강교를 건너면 가평 읍내다.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하면 경기도내 막내급에 속하는 군이다.   자라섬을 들른다. 자라섬도 20만평이나 되어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이다. 초입만 찍고 간다.

자라모양이라서 이름 붙였다고 하나, 실은 직선으로는 8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남이섬에 대항하기 위해서 작명한 것이다. 남이섬은 도선장이 가평 쪽에 있지만 춘천시(옛 춘성군)에 세금을 내는 섬이다. 남이섬은 이미 1965년에 개인 땅으로 나무를 심어 경춘관광이 관리해 왔지만 자라섬은 1990년대만 해도 버려져 있던 섬이었다. 중국 사람이 땅을 붙여먹어 ‘중국섬’이라고 불렀고, 군청에서 허가해주어 준설업자들은 모래섬을 쥐 뜯어 먹은 듯이 군데군데 파 헤쳤다. 섬도 아니었다. 덤프트럭이 드나들던 곳을 파내 다리를 놓고 섬을 만들어 2004년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을 열었다. 올해로 17회째를 맞으면서 누적 144만 명을 불러들였으니 대박이다. 자라섬은 2008년엔 가평국제캠핑캬라반대회까지 열 정도로 수도권 최대의 오토캠핑지이다.

조금 아래 남이섬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류의 폭발로 성지가 되어 버린 섬이다. 반달 모양의 손바닥만한 섬(14만 평)도 한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

공식홈페이지를 열면 강우현의 양팔 벌린 환호가 인상적이다. 그는 ‘독립선언문’를 선포한다. 

동화(同化)되고, 동화(同和)하고, 동화(童話)쓰고, 동화(童畵) 그리며 동화(動畫)처럼 살아가는 동화세계를 남이섬에 만듭시다. 

‘나미나라공화국’의 건국 선포다. 그의 상상력과 이유 있는 좌충우돌의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국기, 국가, 패스포트, 나미짜(글짜), 남이통보(화폐), 우표까지 상상을 현실화한 극치다. 사람들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10여 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 울창한 숲속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 된다.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메타세쿼이아 길은 한류 폭발의 심지 역할을 했다.

사람 하나의 힘이 이리 대단하다. 그는 2015년 ‘나미나라공화국’ 초대대통령직을 내려놓고 제주로 떠나 또 다른 나미나라공화국을 세우기에 이른다. 역시 열혈 강우현이다. 그를 만나면 늘 붉게 상기되어있는 혈색에 놀란다. 그의 상상력과 뒤집어보기는 실행력까지 더해져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그의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출발했다. ‘제51회 프랑스칸영화제공식포스터 공모전’에 당선되자, 주최 측은 그에게 한글 싸인을 영문으로 고치라고 주문한다. 당선 취소의 협박(?)에도 그는 “나는 못 한다. 취소 할테면 하라.”고 싸워 이긴 뱃심이다. 오지랖 넓게 관여하는 곳도 많고, 그의 기발함을 찾는 곳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본 강우현의 정수(精髓)는 팔순에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받은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조문객들은 그가 일일이 삽화를 그린 <울 엄마>라는 작은 책자를 받았다. 의식도 혼미한 어머니를 간병하며 머리맡에서 쓴, 유년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작별의 인사로 묶어 조문객과 공유한 것이다. 이게 보통 사람 머리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해가 많이 기울었다. 금대리 방향으로 가야 강물을 놓치지 않는다. 복장리에 이르면 호명산 정상에 물을 퍼 올렸다가 낙차를 이용하는 ‘청평양수발전소’로 가는 길이 나온다. 벚꽃이 피는 철이면 이 구불구불한 산길은 천국으로 가는 꽃길을 선사한다. ‘쁘띠프랑스’가 이 청평호반에 자리 잡은 것도 어쩌면 남이섬과 이어지는 391번 지방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진작 눈썰미 있게 호반에 별장을 지은 이들은 문 앞에서 바로 보트에 시동을 걸고 호반을 가로질러 호쾌하게 달려가는 호사를 누린다. 

청평 배터, 그 쇠락한 현주소와 가마우지 떼

청평댐에서 일부러 배터로 내려간다. 배터는 2000년 팔당댐 하류 정비에 따라 이곳으로 옮겨 올 때만 해도 5가구였으나 이제 2가구 배 20척만 남았다. 견지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살이 빨라지는 곳을 찾아야 했다. 청평댐이 수문을 닫고 발전을 안 하면 견지낚시는 꽝이다. 그나마 댐이 발전을 낮 동안 충분히 해 다행이었는데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가마우지 떼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 2,000여 마리나 되는 가마우지들의 날쌘 사냥 솜씨에 물고기들이 깊숙이 잠수해 버렸다. 천적이 나타난 걸 용케 아는 터였다. 어획량이 턱도 없이 줄었다. 배터 주인들의 고민도 깊어 보였고 날도 저물어 고글을 벗는다.

주란 꽃 ‘문주란’ 영원히 시들지 말기를

청평대교를 건너 문호리, 양수리 방향으로 접어든다. 카페와 라이브, 모텔, 장어구이, 먹거리와 잠자리의 배열이다. 낭만의 강변 드라이브에 빠질 수 없는 삼박자다. 망한 모텔은 헐리어 요양원으로 리모델링 했다. 강물의 허무와 인생의 종점이 조화를 이루기는 하는 것일까.

‘문주란 뮤즈’카페가 없어졌다. 그녀가 북한강변에 살고 있어서 위로받았었다. 세월은 피할 수 없어서였을까 매주 하던 토요 라이브도 격주에서 다시 월1회로 줄더니 2019년 6월 철거되어 버리고 말았다. 열혈 팬클럽 ‘문사모’가 입구에 세웠던 <동숙의 노래>비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의 옛 노래도 늙어가는 성대를 어쩌지 못해 연륜으로 서서히 커버할 때 가슴이 먹먹하다.   그래도 옛가요 팬들은 그녀의 디너쇼를 기다린다. 우리 시대에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남자도 여자도 아닌, 동굴에서 울려나온다 경탄했던 중저음의 이별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녀의 신작 <양재동 거리>나 <나야 나>는 어쩐지 안쓰럽다. <백치 아다다>, <동숙의 노래>, <돌지 않는 풍차>, <공항의 이별>같은 서러운 여인의 이야기가 바로 그녀의 노래이고 내 곡조다. 문주란이 “나는 슬픈 사람입니다. 인생의 실패작이지요.”라고 말할 때 가녀린 몸을 훑고 나오는 노래는 더 절절하니 무슨 조화인가. 이 또한 추억이 되었지만 무시 날 그녀의 카페에서 만원 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이유는 문주란의 체온이 있는 공간에 함께 있어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입리를 지나 문호리로 접어들자 완전한 어둠 속이다. 하루에 서둘러 북한강을 마무리하는 것은 저 강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안다. 자연과 예술이 함께 있는 마을, 면 단위에서 BI(Brand Image)를 만들 수 있는 힘도 예술가들이 몰려 사는 탓이다. 뚝딱 공연 하나, 음악 무대를 열고, 전시회를 기획할 수있는 힘이 서종면에 있다. 정배리, 노문리, 명달리, 서후리 골짜기마다 창작에 몰두하는 사람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까지 가진 풍요로운 강변마을이 부럽다. 멀리 북한강철교를 건너가는 밤 열차의 등불이 강물 위에 일렁인다. 북한강은 이미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두물머리가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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