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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미 사무국장“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마음이 저를 여기에 머물게 했어요”

“버팀목 장애인 야학 통해 자립 교육 실현”

우연히 구한 직장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의 사무실에 평소 생활할 때 자주 접하지 못한 장애인들과 일을 하는 장애인단체였다. 처음에 많은 것들이 낯설어 어색하고 막막했지만, 16년째 장애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그녀는 이젠 장애인들의 누이, 동생 그리고 장애인들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미 사무국장(51)의 이야기다.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미 사무국장(왼쪽)과 ‘버팀목 장애인 야학’ 황석우 교장(오른쪽)

이제 세월이 지나 장애인들의 사회참여와 활동이 많아진 시대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장애인들이 ‘자립적’으로 살아가기엔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처음엔 지금 여주시장애인복지관 자리에 사무실과 식당이 있었는데 아주 열악한 환경이어서 처음 3개월은 갈등도 했죠”

그랬던 그녀가 장애인들을 떠나지 못한 것은 지금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인 조정오 소장과 그녀가 회원이라고 부르는 장애인들 때문이다.

“동기요? 돈을 벌자고 생각했으면 벌써 그만 뒀을 거예요. 제가 여기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장애인을 접하지 않은 내가 돈을 떠나서 봉사와 함께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있게 되었어요”라는 그녀의 말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이상미 국장이 장애인들을 매일 만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일부 장애인들은 본인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본인은 모르고 있을 때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생각이 바뀌고, 또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바뀐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이나 집에만 갇혀 지내지 않고 사회에 나와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볼 때 감사하다고 한다.

“제가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많이 못 봤어요. 여주는 장애인이 별로 없나보다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한걸음 건너면 장애인분을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가정에 있는 분들이 밖에 나와서 생활을 많이 한다는 것이죠. 센터의 이름처럼 ‘자립’이 조금씩 실현되는 것이죠”라는 이상미 국장은 요즘 학교형태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버팀목 장애인 야학’  때문에 가뜩이나 바쁜 일정이 더 바빠졌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버팀목 장애인 야학’은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올해부터 지역 장애인에게 평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초·중등 교육, 문화·예술 교육 등 장애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기 때문이다.

=자립을 위한 교육시설 ‘버팀목 장애인 야학’

 “‘깍두기’처럼 다 잘 어울리고 꼭 필요한 사람”
“부르는 곳 마다하지 않고, 언제든지 무조건 오케이”
-황석우 버팀목 야학 교장

장애인활동가로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버팀목 장애인 야학’의 교장을 맡고 있는 황석우 씨(52)는 이상미 국장의 역할을 ‘깍두기’라고 한다. “옆에서 사무국장님을 보면 진짜 헌신적으로 일을 해오시고, 부르는 곳마다 마다하지 않고, 언제든지 무조건 오케이 해주시는 분”이라며, 어떤 밥에도 ‘깍두기’처럼 다 잘 어울리고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본인은 깍두기를 싫어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황석우 교장은 ‘버팀목 장애인 야학’이 출범하기 전에는 장애인인권강사단을 꾸려서 5년 정도 인권강사로 활동해 오면서 이상미 사무국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장애인인권강사로 활동하며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버팀목 장애인 야학’ 교장으로 일하는 황석우 교장은 여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던 소위 ‘시설장애인’이었다고 한다.

시설에서의 갑갑함과 억압된 생활환경을 벗어나고자 시설에서 나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생활을 하던 황 교장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던 기관이 부정수급으로 해체돼 다시 시설로 들어가 생활해야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가 다시 사회로 나와 활동하게 된 것은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인 탈시설을 희망하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시설에서 다시 나왔지만,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황석우 교장은 “지금도 활동지원시간이 24시간이 안돼서 많이 힘든데 그 당시 시간이 아예 안 되니깐 더 많이 열악”했다며 “자유가 없고 답답하게 갇혀만 있어야하는 것, 그게 너무 싫어서 너무 나오고 싶었다”고 한다.

이상미 사무국장은 “대부분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무슨 목적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억압된 시설에서 벗어나서 나가서 사회에 공헌 하겠다는 것 보다는 나도 자유롭게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먹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하고,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대부분 그런 이유로 탈시설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탈시설 법과 정책, 예산을 세우고, 광역자치단체는 계획을 세우고, 기초지자체는 장애인의 지역정착을 위한 서비스연계와 지원, 예산 배정 등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와 능력을 감안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설에서 나와 특별히 할 것이 없으니 공부를 하게 됐다는 황석우 교장은 평생교육사 등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지난 2014년부터 자연스럽게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중심으로 장애인뿐 아니라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문해교육과 여가 활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황석우 교장은 “조정오 센터장과 이상미 사무국장이 정말 열심히 선도적인 역할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여주에 장애인 자립이라든지 편의시설 증진 등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이상미 사무국장이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일부장애인들은 스스로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정오 소장과 이상미 사무국장, 황석우 교장이 선택한 것은 장애인평생교육센터다.

=보도블록 같은 작은 것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불편 없어

그동안 여주시청과 여주시의회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장콜(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이 생기고, 여주장애인복지관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외부활동을 지원할 ‘여강빛 버스’가 생기는 등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는 집에서만 생활하던 장애인들이 불편은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점차로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지만, 이상미 사무국장이 생각하는 현실은 더 많은 것들이 고쳐져야 한다. 한 예로 보도블록의 경우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이 제대로 설치돼야 하고, 평탄하게 블록이 깔려야 휠체어뿐 아니라 유모차나 보행기를 이용하는 비장애인과 어르신들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 여주 시가지의 많은 곳은 비장애인 보행자도 위험한 지경이라는 것.

큰 시설, 좋은 장비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부딪히는 보도블록 같은 작은 것부터 제대로 설치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이 이상미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이상미 사무국장은 “저희가 버팀목 야학을 만드는 것부터 많이 힘들었어요. 조정오 센터장님이 교육청 가서 1인시위도 했고, 야학을 열기까지 너무 길고 힘들었어요”라며, 야학이 2020년부터는 잘 활성화돼서 운영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요즘 이상미 사무국장의 걱정은 코로나19 때문에 버팀목 야학 개강이 늦어지는 것과 컴퓨터나 미술, 음악과 같이 교육기자재가 필요한 부분에 예산을 사용할 수 없어 프로그램에 필요한 교구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여주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인식개선 교육과 정책적인 면에 치중하고, 버팀목 야학은 교육과 훈련 등에 집중하면서 두 기관이 서로 도우며 성장하길 바란다는 이상미 사무국장과 황석우 교장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복지와 평생교육에 관심을 가져주면 큰 힘이 될 것 이라며, 지역사회의 관심을 부탁했다.

이장호 기자  yeojup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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